4. 여럿이 될 때도 있는, 그런 혼자 여행을 즐긴다
학생 시절의 난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돈도 없었던 주제에 숙박비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대신 프라이버시를 선택했다. 나의 우선순위는 그거였다. 나만의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게 불편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난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때도 독채로 늘 먼저 검색을 했었다.
그러던 내가 작년 미국 여행을 하면서 게스트 하우스라는 곳에 숙박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내가 걱정했던 수만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내가 운이 좋았던 편일지도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과 방을 나눠 쓴다는 것, 그 불안감이 약간의 설렘으로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기도 하지만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하려고 한다. 한두 마디 하다 보면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혼자서는 못 갔을 곳들을, 새로운 만남과 함께 했다. 행동반경이 넓지 않은 뚜벅이인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들을 갈 수 있었고 여럿이서 떠들고 놀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큰 목소리로 웃을 수 있었고 같이 경험을 나눴고 내가 찍은 사진의 프레임에 나 아닌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런 생소한 일들이 색다른 재미가 되었다.
홀로 여행을 즐기기 시작한 지 몇 년째인 지금 그 경험들을 돌이켜 보면, 처음에는 혼자만의 고독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경계심이 높은 여행을 했던 거 같다. 해외에서 반가운 한국말이 들려와도 괜히 멀리 떨어지기도 했고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약간의 압박감이 있기도 했다.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것 같다. 홀로 여행은 꼭 혼자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둬야 한다는 걸. 여행 중 어느 순간이든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에 자유롭게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거 그게 정말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꼭, 무조건 혼자일 필요는 없기도 하다.
어떤 풍경은 혼자서 고이 간직하고 싶기도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서는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어질 때도 있고 혼자여서 재미있는 게 있고 또 여럿이어서 재미있는 것도 있다. 그걸 다 즐길 수 있는 것이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경계와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적절한 밸런스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 가지 내가 늘 생각하는 건 너무 경계를 풀어버려서 그 뒤에 불안하지 않을 것, 분위기에 휩쓸려서 무리한 것을 하는 바람에 날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조금씩 하다 보면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 나도 그런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나눠먹는 맛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풍림다방.
이번 여행에서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장소를 가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과 친분을 쌓는 것도 여행 기간 중에 꽤 도움이 된다.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된다!) 비자림이 그렇고 풍림다방도 그랬다. 덕분에 서울에서 맛보기 힘든 숲의 향기를 맡으며 그리고 신나게 웃으며 숲 산책을 했고, 명소로 뜨고 있다는 풍림다방에서 초코향이 나는 커피와 치즈 머핀, 티라미수까지 맛있게 나눠먹었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의 섭지코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섭지코지.
또 어느 날은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의, 현지인 산책 코스도 소개받아 섭지코지를 다시 갔다. (포기해도 다시 또 기회는 올 수도 있다, 이렇게. *1편 글 참고) 하얀 등대도 올라갔고, 저번과 달리 흐린 날씨를 먹은 진한 빛깔의 바다도 봤다.
이렇게 이번 나의 혼자 제주 여행은, 나의 예상보다 더 나다운, 나의 생각과 선택들로 만들어진 만족스러운 혼자 여행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원래 계획대로 혼자 책을 읽고 글도 끄적거리고 그리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도 보냈고, 계획에 없었던 새로운 곳들을 찾아갔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편안한 휴식이 되는 시간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여행에서 배운 것들을 마음에 담고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