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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25. 2017

누군가의 전 여친,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1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의 레베카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Crazy Ex-girlfriend)

TV 드라마 / 미국 / CW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최근 몇 달간 가장 큰 화제를 불러온 영화는 단연 '라라랜드'(La La Land)가 아닐까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그 라라랜드와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이다. 일단 뮤지컬이고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고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고 각각 개인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차이점들도 많다)


2015년 미국 CW에서 첫 방영 후, 현재 시즌2 방영 중인 이 드라마엔 예일-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최고의 로펌에서 일하는 '레베카'가 등장한다. 드라마 첫 화에서 레베카는 자신이 일하는 로펌으로부터 파트너십 제안을 받게 되고, 마침 그 날, 자신을 차 버렸던 고등학교 때의 첫사랑인 조쉬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쉬 모르게 몰래) 조쉬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웨스트 코비나로 삶의 터전을 옮겨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 이후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앞서 말했듯이 뮤지컬 형식의 로맨틱 (여기서 라라랜드와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코미디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는 성공한 변호사인 여성이, 심지어 그것도 옛날 옛적인 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을 차버린, 남자와 우연히 마주쳐서 그 남자를 따라 생판 모르는 곳으로 가버린다는 설정이, ‘뭐야.... 성공한 여성이 사랑 때문에, 다 버리고 가는 또 그런 스토리야? 지겹다..' 라는 생각을 들게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뻔한 플롯 안에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채워 넣는다.


레이첼은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사실 겉으로는 성공한 삶처럼 보였던 생활 속에서 방향성을 잃고 있었다. 올라가고 올라가도 닿을 수 없는 엄마의 기대감과 주변의 시선 속에서 숨 막혀하고 있었던 중에 조쉬를 만났고, 그 만남이, 탈출을 위한 ‘인생에 한번뿐인 위대한 사랑을 찾아서!!'라는 아름다운 명분이 되어준 것이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이자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라는 전형적이고 성차별적인 남녀 교육을 청소년 시기에 받아오다 성인이 되어서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된 20,30대 여성들의 고민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성차별 타파!! 독립적 여성!!’이라고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과의 꿈같은 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고민과 혼란,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레이첼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나 하버드 나온 여자야’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쉬의 SNS를 몇십 번씩 들락날락하면서 조쉬가 뭐하는지 몰래 탐색하는 레이첼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쟤 왜 저래.... 근데 차마 뭐라고 못하겠다'라는 복잡한 심경이 되면서 묘하게 공감이 되는 것이다.


레이첼은 드라마 제목처럼 '미친 전 여친'이 아니고 '나쁜 전 여친'도 아니고 '비련의 전 여친'도 아니고 '다시 붙잡고 싶은 전 여친'도 아니다. 당당하면서도 여리고, 확고하면서도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어리바리한, 여러 가진 모습을 지닌 여성이다. 그리고 여전히 꽤나 괜찮은, 아니 멋있고 훌륭한 여성이다. 또한 레이첼은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실수를 반복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주도하고자 자기 스스로와 계속 싸우면서 성장해 나간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한 번쯤 누군가의 전 여친으로 불린다, 그리고 때때로는 X 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건 결국 잠시, 몇몇의 타인에 의해 호명되는 것뿐이다. 우리는 단순히 '누군가의 전 여친' 이라는 존재로 고정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모습과 그 이름이 있다. 복잡하다고? 그게 뭐 어때서? 그건 우리를 풍부하게 만드는 매력들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레이첼처럼 '미친 전 여친'이라 불리는 그대를, 난 응원한다.


출처: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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