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슈퍼걸의 슈퍼걸
Supergirl (Supergirl)
TV 드라마 / 미국 / CW
SF 드라마
작년인 2015년 가을, 미국 CBS에서 첫 방송을 한 ‘슈퍼걸’(Supergirl)은 TV시리즈로 만들어진다는 발표 후 실제 방송이 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우려를 받은 작품이다. 그리고 언론사들에게 첫 에피소드의 스크리너가 공유되고 쏟아진 리뷰와 첫 에피소드 방송이 된 후의 시청자 반응은 페미니스트 쇼다 아니다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슈퍼걸’이라는 이름부터가 안티 페미니스트다 라는 이야기부터 어둡고 우울한 서사로 유명한 슈퍼맨과 달리 굉장히 밝고 발랄한 슈퍼걸의 이야기가 기존 DC 코믹스 팬들에게 반감을 사기도 했다. 시즌2가 방영되고 있는 지금도 대부분의 출연진이 백인 여성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인한 ‘화이트 페미니즘’(White Feminism) 논란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긴 하지만 난 슈퍼걸이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스트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특히 소녀들에게 말이다.
‘소녀’라는 말이 뭐가 나쁜데? 나는 소녀이고, 너의 보스이고 그리고 파워풀하고 돈도 많고 멋지고 똑똑해. 슈퍼걸이라는 말이 멋지다는 것에 맞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건 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 캣 그랜트 from 슈퍼걸
처음 슈퍼걸이라는 타이틀을 들었을 때, 슈퍼맨은 ‘맨’인데 슈퍼걸은 왜 ‘걸’이야? 여자는 슈퍼 파워가 있어도 그저 ‘소녀(걸)’이라는 거야 뭐야 라고 생각해서 그 타이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슈퍼걸을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슈퍼걸이 슈퍼걸이 아닌 그냥 인간, ‘카라’ 일 때 카라의 보스인 ‘캣’이 말한 것처럼 ‘소녀’도 슈퍼 파워를 가질 수 있어, 소녀라고 해서 여리고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는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녀’라는 말을 가두고 있던 것은 오히려 나였던 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녀도 강할 수 있다! 소녀라는 이름 안에 연약하고 미성숙하고 어리숙하고 그래서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는 그런 이미지를 구겨넣은 것 뿐이지 그게 소녀의 정체성은 아니다. 소녀도 다양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슈퍼걸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슈퍼걸은 ‘슈퍼우먼’이 아니라 ‘슈퍼걸’이기 때문에 쇼를 보는 소녀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슈퍼걸처럼 남들을 돕고 세상을 구하는 강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완벽하고 멋있는 어른 여성이 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서 고민하는 너여도 괜찮다고, 그런 너여도 강한 사람일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일에서 허둥거리고 보스에게 혼나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못 알아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모르고 언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디에서나 흔히 발견할 수 있는 20대의 모습을 한 카라가 사실은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슈퍼걸이라는 이야기는 그저 판타지 이야기의 하나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판타지 속에서도 세상을 구하는 건 대부분, 늘 남성이었다. 근육의 남성 캐릭터들이 멋진 무기를 휘두르며 말이다. 이제 그 남성 캐릭터가 여성이었으면 어땠을까?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슈퍼걸의 슈퍼걸이 그걸 보여주니까.
이제 우리에겐 이렇게, 어린 소녀들이 무한한 꿈을 꿀 수 있는 상상력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멋진 히어로가 있다.
+ 슈퍼걸을 연기하는 배우, 멜리사 비노이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 열렸던 ‘세계 여성 공동 행진’(Women’s March)에 참가해서 ‘도널드 씨, 제 음부를 만지려는 시도는 하지 마세요. 그건 강철로 만들어졌거든요!’라는 피켓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