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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bia Feb 15. 2017

관계의 본질을 향한 몸부림, 아노말리사

비교영화: 'Her(그녀)'  & '더 랍스터(The Lobster)'


    한 개인의 퍼스낼러티( personality)는 타인과는 구별되는 그 사람만이 지닌 고유한 성격이나 성질을 의미한다. 이러한 퍼스낼러티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정체성, 즉 타인에 의해 그들과는 다른 '나'라는 한 사람을 확인(Identify)시켜주는 고유의 아이덴티티(Identity)에 의해 정의되는 사회적 영역이다. 그래서 타인이 없으면 그런 타인과 구별되는 '나'라는 한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퍼스낼러티나 아이덴티티의 개념은 수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개성과 정체성은 바로 타인과 구별되는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사회적 개념의 일종인 셈이다.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정체성의 위기 사회


   유대계 덴마크인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1940년대에 오늘날 흔히 쓰이는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라는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것은 그 자신이 유대계 덴마크인으로서, 특히 나중에 독일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심각하게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야만 했던 그의 개인적 이력 때문이다. 그 자신은 스스로를 독일인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학교 친구들은 그를 유대인이라고 멸시했다.

아이덴티티가 가지는 의미는 이처럼 사회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규정되는 한 개인의 신분에 대한 정의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증명서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에릭 에릭슨이라는 인물이 유대인이었기에 처한 특수한 상황일까?

사회가 산업화되고 전문화될수록 인간의 개성이나 정체성 역시 몰개성과 익명성의 무덤에 함몰되기 쉽다.

사람 또한 공장에서 찍혀나오는 공산품들처럼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표본이나 가치를 강요받거나 굳이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익명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이 사회가 이제는 수많은 가짜와 가면들 뒤에 숨은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로 굴러가는 사회가 되었음을 의미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나누어야할 대화는 컴퓨터나 sns같은 수많은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대신하고, 사람이 처리해야할 일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일상을 보고 듣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은 아니다. 닉네임이라는 애칭이 이름을 대신하고, 자신의 이름보다 자신을 지칭하는 직함들에 더 익숙한 세계...

그리고 그것은 마치 수화기 너머,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처럼 고객님이라는 보통명사로 치환된, 고유성을 상실한 개인들이 존재하는 세계와 다름 아니다.


수화기 너머 고객과 상담원으로 존재하는 개인은 고객 1,2,3일 뿐이거나 상담원1,2,3일 뿐인 존재들이다.

그 속엔 개인의 역사나 아픔과 같은 삶의 이력, 고유의 이름이나 성격 등 타인과 구별되는 '나' 라는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나 퍼스낼러티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세계 속에 내던져진 개인에게 공허와 환멸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교한 스톱 모션 기법으로 만들어낸 실사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허무와 권태, 환멸로 인한 인간 실존의 위기



    영화 <아노말리사>는 이런 실존의 위기에 봉착한 한 중년 남성의 짧은 하룻밤을 따라간다.

'변칙', '이례'라는 뜻을 지닌 'Anomaly'와 이 영화 속 여주인공인 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일종의 합성어인 아노말리사는 제목 그대로 노멀한 일상성을 벗어난 한 남성의 이례적이고도 변칙적인 일상의 단면을 통해 실존의 위기에 처한 인물의 환멸과 삶의 공허를 들여다보기한 영화이다.

어찌보면 모럴이 파괴된 정신적, 육체적 일탈 쯤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이 한 편의 애니 속에는 사실 보다 진중한 인문학적인 화두들이 숨겨져 있다.


십 만 이상으로 된( 정확히는 118,089)테이크의 정교한 스톱 모션(Stop motion)으로 완성해낸 이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인형들은 인간의 피와 살을 지닌 것처럼 사실적으로 행위하며 마치 고뇌와 환멸에 몸서리치는 인간 그 자체로 보일 정도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자 의미심장한 대목은 주인공 남자인 마이클과 여주인공 리사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한 얼굴, 한 목소리로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자도, 남자도, 호텔 프론터의 직원도, 벨보이도, 비행기 안 옆좌석에 앉은 낯선 이방인도, 심지어 리사의 친구나 마이클의 아내, 마이클의 과거 연인조차도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것은 일종의 메타포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How may i help you help them'이란 고객만족 서비스에 관련한 책의 성공한 저자이기도 한 마이클에게 있어 인간관계란 어떤 의미였을까?

훌륭한 고객만족 서비스에 관한 연설을 하기 위해 LA에 거주하는 그가 신시내티로 출장을 가는 모습에서 출발하는 이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은 의도적으로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수많은 인물들의 목소리가 믹스되어 있다.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마이클에게 있어 고객1,2,3이고 독자1,2,3일 뿐, 한 사람의 고유성을 지닌 개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의 고독과 허무가 여기에서 파생한다. 수많은 이들과 관계 맺음을 하고 있지만 정작 누구와도 진정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는 역설은 마이클로 대변되는 현대인들의 자아이자 초상과 다름 아니다. 마이클에게 있어 그들은 한 사람의 개성을 지닌 고유명사가 아니라 다 같은 얼굴, 다 같은 목소리를 지닌 보통명사이자 일반명사일 뿐이다.


    마이클이 호텔 객실에서 우연히 만난, 스스로를 못생겼으며 뚱뚱하고 마지막 연애를 해본 지는 8년이나 되었다는 리사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던 이유는 그녀로부터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그녀만의 얼굴과 목소리를 발견한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낀 이 특별함은 그들의 하룻밤 동침으로까지 이어진다.

애니메이션 속 그것이라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이들의 정사장면은 존재론적 위기에 봉착한 인물의 내면을 담은 묵직힌 주제와 함께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리얼리티로 똘똘 뭉친 19금 애니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다.


마이클의 이런 텅 빈 내면과 자신의 삶에 대한 환멸은 여러 방식으로 표출 된다.

10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 벨라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는가 하면, 호텔 방에 투숙할 때도 흡연이 가능한 조용한 객실을 찾는다. 그리고 친구를 찾는다면서 같은 층에 투숙하고 있는 낯선 투숙객들의 방문을 무작위로 사정없이 두드리기도 한다.


처음 만난 리사와의 알 수 없는 끌림에 하룻밤 동침을 하기도 하고, 악몽을 꾸기도 하는가 하면, 다음날 낭독할 연설문을 연습하다 수시로 욕설을 내뱉으며 연설문 종이를 내동댕이 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 반쪽이 떨어져나가는 환각에 시달리기도 한다.

허무와 권태, 환멸을 넘은 실존의 위기에 처한 인물의 몸부림이 무책임한 one night라는 형태로 표출된 듯 보이는 이 영화는 실상 진정한 사람과 사랑을 만나지 못한 인간의 그 근원적 허무에 가닿는다.



영화 Her(그녀)와 더 랍스터(The Lobster), 실존의 이유는 관계의 본질, 그 1%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


    그래서 아노말리사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느낌은 이런 인간관계의 본질과 실존적 위기를 다룬 또 다른 영화 <Her>나 <더 랍스터(The Lobster)>와 많이 닮았다.

인간에게서 느끼지 못한, 어느날 사랑과 소통의 대상이 되어버린 컴퓨터 운영체계와 사랑에 빠진다는 독특한 설정을 지닌 영화 <Her>속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의 모습이나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그래서 어떻게든 제 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더 랍스터> 속 남자 주인공 데이비드의 모습에서 유사함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또한 이들 세 편의 영화들이 다 소재와 그 표현방식에서 신선하고 독특하다는 점도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다.



    국내에선 <이터널 선샤인:감독_미셸 공드리>의 각본가로 잘 알려진 '찰리 카우프먼'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아노말리사는 전세계 47개국 영화제에서 61개 부문 노이네이트, 18개 부문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성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19금 애니의 신화를 써내는데 성공 했다.

특히 수많은 조연과 엑스트라 인형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마이클(목소리 연기:데이빗 듈리스)과 리사, 그리고 리사(제니퍼 제이슨 리)를 제외한 마이클이 만나는 모든 등장 인물들의 목소리를 연기한 '톰 누난'의 목소리 연기와 수많은 등장 인물들의 한결 같은 얼굴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얼굴 없고 목소리 없는 인간 관계의 핵심을 단적으로 상징화한 의미 있는 메타포이다.  


러한 허무와 권태, 환멸로부터의 탈피는 본질에 기반한 관계맺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 관계의 본질은 결국 소통이자 사랑이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들 틈에서 나만의 얼굴,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 1%의 가능성을 향해 노크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위의 아노말리사와의 비교 영화 <Her>와 <더 랍스터>에 대한 개별 칼럼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m.blog.naver.com/iris7756/220857047840


http://m.blog.naver.com/iris7756/22085137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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