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자유 의지, 책임
남자 애가 대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아들이 유독 그런 건지 조금은 폭력성이 더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기분이 좋든 싫든 휙휙 물건을 잘 던지는데, 그러다가 엄마든 아빠든 그 물건에 맞아서 아프게 되는 순간이 되면 상황이 더욱 곤란해진다.
가만히 있던 사람은 물건에 맞았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맞추려고 던진 것은 아니다.
-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해야지.
- (묵묵부답)
- 맞추려고 해서 맞춘 게 아니더라도, 00가 던진 것 때문에 실수로 엄마가 맞아서 아픈 거면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 (...) 죄송합니다!
- 그래 잘했어,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지만, 실수라도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하면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잘 배웠네!
아들은 남을 해하려는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서 어떤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의 결과로 남이 피해를 봐야 본인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아들 본인이 아니어서 무슨 생각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런데,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그 사람이 던진 행동으로 인해서, 엄마가 아팠기 때문에 아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아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는 있다. 내가 아프게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런데 던진 행동 자체를 남이 시켜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어떤 행위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자유 의지'가 중요한 개념이다. 철학적으로나 법적으로 모두 중요하다. 쉽게 말해, 어떤 행동을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로 행동할 때 자유 의지에 기반하여 행동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자유 의지가 없거나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았을 거로 보이는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아래 상황들에 대해서는 정상 참작이 되는 경우를 본다.
- 납치 감금된 사람이 가해자에 의해 조종되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어떤 범죄 행위를 저지르거나 동조하는 경우
-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약에 취해, 이상한 행동을 저지른 경우
- (논란이 많지만) 음주로 인해 사고를 일으킨 경우 심신 미약으로 형량 감소되는 사례 등
자유 의지 부족/결여, 심신 미약 등 모두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 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만으로 행동했다고 보기 어려우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생각은 당연해 보인다.
자유 의지에 관한 논의를 더 심화해 보자. 유신론자들에게 특히 문제가 되는 이슈이다. (특정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개념과 관련된 내용이다.) 모든 것이 신이 예비한 바이고,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모든 게 신의 뜻이라면 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우리는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유신론자가 사람을 죽여 놓고는 신의 뜻에 따른 행동이라고 주장한다면? 신의 잘못이라고 해야 하진 않을까?
신의 잘못이 아니면서, 그 행동을 행한 인간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말에 한계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에 포함되고 포함되지 않는 것을 나눠서 설명을 해 주든(포함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신의 뜻이면서도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해 줄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한 것도 전지전능한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 인간이 범죄 행위를 저지른다면, 결국 자유 의지를 부여한 신 때문이지 않을까? 아니면, 자유 의지를 부여하는 데까지는 신의 역할이지만 그 이후에 어떤 행동을 할지는 신이 관여하지 않으므로 그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한다면, 모르는 영역이 있는 신을 전지전능하다고 할 수는 있을까? 참 쉽지 않은 문제다.
신은 모르겠고, 나에겐 자기가 실수로 한 행동으로라도 남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게 본인 잘못이라는 걸 아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