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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Jul 04. 2024

양귀자, [모순]; 불행의 과장법

표정 없는 세상

모처럼 두 번째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서사에 집중하느라 많은 걸 놓쳤던 것 같다. 어쩌면 두 번째 읽는 게 마치 첫 번째 읽는 것만 같았다. 막상 다시 읽으려니 그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거니와, 그때는 보이지 않던 문장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세한 줄거리보다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조금만 책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한날한시에 태어나, 거짓말 같이도 만우절에 같이 결혼식을 올린 쌍둥이 자매가 등장한다. 겉모습은 같지만 A와 B의 삶은 전혀 다르다.


A : 아들, 딸이 있다. 딸은 대학 졸업도 하지 못하고 변변치 않은 직장에 다닐 뿐이며, 아들은 대부의 알파치노를 흉내 내다가 폭력에 휘말려 감방 신세를 진다. 게다가 남편은 몇 년마다 한번 집에 찾아올 정도로 떠돌이로 지내다가는, 결국 치매가 걸린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이 세상 모든 기구함은 다 짊어진 듯하다.


B : 여기도 아들, 딸이 있는데, 둘 다 유학파에 대학 공부를 잘하고 석사, 박사 이어서 외국에서 계속 살 생각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또한 남편은 가정에 충실하고 모든 것에 빠지지 않는 면모를 갖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히려 A의 삶에 활력이 넘친다는 점이다. 작가의 의도적인 스토리텔링이겠지만 B는 '완벽한' 남편, 아들, 딸 속에서 답답해하고, 본인의 삶을 굉장히 지루하게 여긴다.


어떻게 A는 삶에 에너지가 넘칠 수 있을까? 불행한 사건들이 연이어 계속되기 때문에 지치거나 한숨 돌릴 틈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사건들이 계속된다고 해서 에너지가 넘칠까? 내가 A였다면 너무 지쳐서 힘들어 쓰러졌을지도 모를 정도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불행의 과장법'을 통해 A의 에너지틱한 면모에 개연성을 높여준다.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pp. 152-153)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면 하루 열심히 열내고 울고 슬퍼하지만, 금세 자기만의 해결책을 찾아 바로 대응책을 세우고 즉시 실행에 옮긴다.


A는 불행을 과장한 덕분에 B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물론, 무엇이 더 나은가에 대한 질문의 답도 필요하지만 소설을 한번 읽어보면 "더 낫다"라고 말한 뜻이 이해가 갈 것이다.) 어쩌면 B도 A와 (유전적으로) 쌍둥이인지라 성격적으로 타고난 삶에 대한 의지나 열의가 강했을지도 모르지만 너무나도 무료한 삶 속에 자기의 에너지를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하고 따분해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이 부분이 특히 기억났을까? 불행한 일을 겪었을 때 대응하기 좋은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기 때문은 아니다. 평소 내 인생관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좌우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다음을 가끔 생각하며 사는데, 가령 다음 두 가지 문장이다.


- 세상에는 표정이 없다. (만든 말)


개개인에게 벌어지는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 어떤 특별한 의도나 이유 같은 건 대개 없다. 단지 그냥 벌어진 일뿐 굳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봐야 답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태 인식과 해결, 진전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즉, 세상은 무표정으로 일관할 뿐이다.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해 줄 뿐이다. (니체)


정확한 출처와 맥락은 모르지만, 문장만 읽으면 꽤나 납득이 간다. 결국 지금 찾아온 어려움도 끝내 극복해 내면 다 내 자양분이 된다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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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불행한 일이 벌어지면 슬프다. 하지만 속 시원히 잠깐 울어버리고 세상이 원래 그런 무표정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금세 해결의 에너지를 얻곤 한다. 또 어떻게든 극복해 내면 성장해 있을 것이라 믿고, 그렇게 성장해 온 내가 지금의 나라고 여긴다. 그래서 나름대로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대처해 나가는 ’불행의 과장법‘에 공감이 된 듯하다.



* 참고 문헌

양귀자, [모순] (도서출판 쓰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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