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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Oct 07. 2022

부정한 거래 요구를 거절하다

  아프리카에서 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 그룹 중 하나가 바로 정부 관료들이다. 개발협력사업의 최종 수혜자는 지역주민이지만 현지에서 사업을 승인하고 관리 감독하는 권한을 지닌 주체는 정부 관계자들이다. 이들과 상호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제대로 수행해나갈 수가 없다. 그렇기에 현지 정부 관계자의 적극적인 협조 여부가 개발협력사업의 성패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잔지바르 중등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려고 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학교시설을 둘러보던 중 과학실에 들어갔더니 사용도 하지 않은 채 유통기간이 지난 화학약품이 너무 많았다. 학생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다 끝내 뚜껑조차 열리지 못한 과학실험 재료였다. 과학 교사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교육부 담당 공무원이 ‘정부의 지시사항이 하달되기 전까지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 조치가 제대로 안 되었다. 결국 화학약품에 대한 사용 재개 여부는 일선 학교에 전달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선 학교에서는 관계 당국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계속 기다렸던 것이었다. 

몇몇 중등학교에서는 뚜껑조차 열리지 않은 화학약품이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다.

  행정적 실수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할지라도 현장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식 대처를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현장의 교사들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부의 지시를 거역할 필요는 없다. 아프리카 지역사회에서 정부 관료가 갖는 막강한 권한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프리카에서 정부 관료의 막강한 힘을 처음으로 경험한 건 2003년, 20대 중반의 나이였다. 3개월짜리 관광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케냐 이민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민국 직원은 내 여권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 후 다짜고짜 내게 ‘당신은 불법체류자!’라며 고함을 쳤다. 


  요지는 케냐 입국 시에 3개월이 아닌 2개월짜리 비자를 발급받았고 비자 갱신 시기가 이미 지났다는 것이었다. 공식적인 비자 스탬프에 작성된 유효기간은 3개월이었다. 그러나 비자 스탬프 위에 손글씨로 명기된 날짜는 2개월간의 체류 기간을 부여하고 있었다. 입국 당시에 이민국 직원이 비자 스탬프 위로 직접 작성한 날짜였다. 비자 스탬프만을 확인했던 나의 크나큰 실수였다.


  “당신은 지금 당장 구속될 수 있고 내일 법정에 출두해야 한다.”

  이민국 직원은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 얼굴을 사색이 되었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기에 더럭 겁부터 났다.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의 사정은 알고 싶지 않아. 지금 당신 호주머니에 얼마가 들어 있나?”

  “저는 비자 연장비만 가지고 있어요.”

  나는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대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웬만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내일 당장 법정에 출두하도록 해.”

  그는 심리적으로 위축된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윽박질렀다. 법정 출두라는 말을 다시 듣는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사무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용서를 빌었다.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방 안에 있는 모든 소지품을 꺼내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민국 직원은 여권을 제외하고 돈이 될만한 모든 물건을 챙겼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물품은 3개월짜리 비자 연장 도장과 맞바꿔졌다. 비자는 연장되었지만 지워지지 않는 마음속 상처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너무 모르는 순수한 어린 양이었다. 비자 도장 위에 작성된 그의 서명 날인 하나는 나를 불법체류자에서 여행자라는 신분으로 쉽사리 탈바꿈시켰다. 이 사건은 내 뇌리에 아프리카 정부 관료의 막강한 권력을 각인시켜주었다.


  잔지바르 교육부와의 협의를 통해 한국 기관에서 지어준 콰라라미디어센터에 라디오 교육방송국을 설립하기로 했다. 잔지바르판 한국교육방송사 추진을 위해 교육부 관계자들과 수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다. 센터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과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언제나 사람에 대한 투자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로서는 하나씩 차근차근 라디오 방송국 개국을 준비해야 했다. 라디오 부스 하나와 오디오 장비 몇 개로 FM 교육방송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교육프로그램을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국 설립을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사무소와 교육부는 역할을 분담해서 업무를 진행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잔지바르 방송통신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라디오 교육방송국을 운영하기 위한 가용 주파수 채널을 확보하기로 했다. 우리 사무소에서는 라디오 송수신 장비를 비롯하여 라디오 방송 운영에 필요한 송출시설을 구축하고 필요한 장비를 확보하기로 했다.


  잔지바르에서 일의 시작점은 분명했다. 대통령, 국회의원 또는 부처 장관이 새로운 프로젝트 행사에 참여하는 행위가 일의 시작을 의미했다. 하지만 문제는 마침표가 언제 찍힐지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정부 관료의 개입이나 승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마침표 대신 도돌이표와 쉼표가 번갈아 가며 되풀이되었다. 프로젝트의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기도 했다. 


  교육부와 역할을 분담하기는 했지만, 사무소는 교육부의 업무 진행 속도와 상관없이 일을 진행해 나갔다. 먼저 라디오 송출시설 구축에 필요한 일을 하나씩 처리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일을 마무리하려는 심산이었다. 할 일을 먼저 끝내 놓고 교육부를 압박해나갈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첫 삽만 뜬 채 라디오 방송국 개국과는 기약 없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교육부는 이번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미완성 사업을 빌미로 다른 국가로부터 또 다른 원조 지원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잔지바르 라디오 교육방송국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한국이 장식하길 원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낸 소중한 예산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 뜻깊은 기회라고 여겼다. 먼 훗날 한국인 방문객이 콰라라미디어센터를 방문할 때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역만리 아프리카에서 힘든 생활을 이겨내고 스스로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을지도 몰랐다. 


  라디오 전파를 송신하는데 필요한 전파 송출 장비, 에어컨 등을 설치할 시설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교육부 담당 국장에게 라디오 프로그램 송출 장비를 설치하기 위한 공공시설 부지를 확보해달라고 요청했다. FM 라디오 송신소 내 부지 사용이 승인 나는 대로 장비 보관창고를 건축할 예정이었다. 담당 국장은 부지사용을 승인받았다고 통보해주었다. 

정기회의를 통해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 관료의 이해와 관심을 끌어내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부지사용 승인이 빨리 처리되었다. 담당 국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던 찰나에 그는 종이 쪼가리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종이 위에는 보관창고 시설공사에 소요되는 비용이 적혀 있었다. 총 천만 실링(한화 약 500만 원)의 공사비였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가 내게 건넨 공사비 견적서의 의미를 정확하게 간파하였다. 교육부 담당 국장과는 매주 만나서 회의를 진행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교육부 안에서 개중 그나마 양심적이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우스갯소리라도 그에게 ‘미래의 교육부 장관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노골적으로 공사비 견적서를 내게 내밀었다. 영상 콘텐츠 제작과 관련한 일로 협력할 때는 합리적인 그였지만 건축 일과 얽히자 여지없이 사익을 추구하는 야수의 본능을 드러냈다.


  그의 행동은 자신이 아는 건축업자가 보관창고 시설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담당 국장은 건축업자를 통해서 뒷돈을 챙기려는 계획이었을 것이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발등을 찍힌 것처럼 크나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직원을 통해 추가로 두세 군데의 건설업체로부터 비교 견적서를 받아오라고 요청했다. 시장 조사를 다닌 결과, 한 업체에서 담당 국장이 슬쩍 흘린 공사비의 절반 가격을 제시했다. 담당 국장이 알려준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대신 우리 직원이 알아 온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충분한 예산이 없었을뿐더러 괘씸한 마음도 들어 교육부에 통보도 없이 보관창고 시설공사를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며칠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담당 국장이 교육부 사무실로 나를 호출했다.

  “당신은 송신소가 국가관리시설이라는 걸 모르나요?”

  그가 진지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의 얼굴은 이미 차가운 얼음장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내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나요? 왜 내 지시를 따르지 않은 건가요? 국가관리시설은 정부가 지정한 업체만 일할 수 있다는 걸 몰랐나요?”

  그는 연달아서 분노가 섞인 말투로 나를 쏘아붙였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의롭고 깨끗한 아프리카 정부 관료로 남아주길 바라는 내 마음속 바람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에 나를 자책했다. 그래도 섭섭하고 배신당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가 화내는 모습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그가 화를 다 쏟아낼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그의 분노한 감정과 표정이 약간 누그러지자 나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미디어센터 직원들에 대한 교육훈련 워크숍을 추가로 몇 차례 진행하면서 계획했던 예산보다 비용이 더 발생했어요. 그렇다 보니, 라디오 교육방송국 신설을 위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최소 비용의 견적서를 제시한 업체와 일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나는 솔직하게 사무소의 예산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에게 사전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업체를 선정할 수 있나요?”

  그의 분노가 재점화되고 있었다.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이번 일로 제가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지도록 할게요. 잔지바르 라디오 교육방송국 사업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면 이 일에 책임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도록 할게요.”

  나도 그를 향해 승부수를 띄웠다. 잠시였지만 진심으로 일할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잔지바르 교육부와 지역공동체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 결과가 고작 믿었던 정부 관료의 배신과 분노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이면에는 그가 심성이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나름대로 계산된 대답이기도 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대답했다. 

  “음..... 음...... 음.....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그는 내가 예상한 대로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당신에게 매번 회의 수당도 챙겨주고 미디어센터 직원들한테는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제공해주고 지역사회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내가 잔지바르를 떠나면 그 어떤 사람이 나처럼 당신을 챙겨줄 수 있을까요?”

  한결 부드러워진 그의 눈빛을 마주 보며 내가 반문을 던졌다.


  “알겠어요.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줘요.”

  분노에 찬 그의 모습은 점차 사라져 갔다.


  “이 모든 게 다 잔지바르 사람들을 위한 거잖아요. 내가 사무소에 있는 동안은 무조건 당신이 장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게요. 내 진심을 알아주세요.”

  나는 정부 관료의 귀를 즐겁게 해 주고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한 하얀 거짓말을 살짝 동원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면야 무엇인들 못 해주랴. ‘교육부 장관을 만들어주겠다.’라고 할 때마다 담당 국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항상 미소가 번졌고 표정은 해맑았다. 

라디오 장비를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 콰라라미디어센터 직원들

  아프리카에서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내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현지 정부 관료와 절대로 각을 세우지 않는 것이었다. 행여 얼굴을 붉혀가며 논쟁을 치열하게 벌이더라도 헤어질 때는 항상 웃으면서 작별 인사를 건네려고 노력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오히려 정신적, 육체적으로 에너지를 낭비해야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예산과 관련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결국 현장 상황에 따라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인 접근 방식을 잘 접목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기본적으로 멘털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사람도 현지 문화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거나 정부 관계자와의 소통 과정에서 멘털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재밌게 일해야 할 사업 현장이 두려운 장소로 바뀌지 않도록 스스로 멘털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하루하루가 생존의 문제이기에 생각처럼 쉽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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