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세 번째 클럽의 날이다. 이번 클럽은 이비자 클럽일정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암네시아 클럽의 폼파티였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폼파티! 단체로 거품 속에서 광란의 춤을 춘다는 이 유니크한 파티에는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거품이 등장하는 시간이 새벽 5시라는 점이다. 새벽 5시…그때까지 안 자고 가야 하는 걸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걸까? 물론 20대 청춘들은 밤을 새우고도 한창 팔팔한 시간이겠지만(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더랬지), 마음만 청춘인 마흔다섯 살에게는 다소, 아니 상당히 어려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전날 선셋보트파티에서 주구장창 술만 마시며 춤추다가, 9시 넘어 간신히 늦은 저녁먹고, 여자 6명이 돌아가며 샤워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였을까? 새벽 3시 모두의 방에서 기상알람이 울렸다. 하아… 피곤하다 피곤해… 알람을 끄고 내적 갈등에 휩싸인다. 티켓은 현장구매하려고 아직 사지 않았다. 그냥 자버릴까? 내 옆에 누워있는 P도, 다른 방의 친구들도 인기척이 없다. 어쩌지? 그냥 잘까? 진심 피곤하다… 근데 여기까지 와서 안 가면 후회하겠지? 깜깜한 침대에 누워 고민하는데 P가 말을 건다.
“깼어?”
“응”
“...........”
“...........”
ㅋㅋㅋㅋ 우리 둘 다 비슷한 마음이겠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입시를 앞둔 고3의 마음가짐으로 힘을 낸다. 여기서 무너지지 말자, 고지가 코앞이다!!! 안 떠지는 눈을 부릅뜨고 세수를 하고 나오니 L이 좀비의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졸고 있다. 잠시 후 좀비 Y, 좀비 G가 비틀거리며 등장했다. 모두 죽을 맛이었다. 우리는 거의 눈을 감은채 옷을 갈아입었다. 어차피 깜깜한 공간에서 거품 속에 담가질 테니 꾸밀 필요도 없었다. 화장은 스킵한 채 수영복 위에 간단히 원피스나 반바지 따위를 걸치고 비몽사몽 집을 나섰다. 전날 저녁식사 자리에서부터 꾸벅꾸벅 졸던 저질체력 K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새벽 4시 암네시아에 입장했다. 여기도 두 군데의 홀이 있었다. 그다지 신나지 않은 음악이 쿵쿵 울렸다. 잠도 덜 깬 채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ㅋㅋㅋ 바근처에 걸터앉아 다른 사람들이 춤추는 걸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한국 젊은이들도 섞여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한창때다 얘들아, 열심히 놀렴. 우리 엄마들은… 거품이 나올 때까지 힘을 비축해야겠다. 곧 우리 자식들이 저 나이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거품이 뭐라고 이 시간에 잠도 못 자고 이런 극기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일까? 러쉬제품 사서 욕조에 풀면 될 것을…. 목마른데 술이나 한잔 할까? 비싸겠지? (첫 번째 클럽에서 신나서 한잔에 2-3만 원인 술을 막 마시다 보니 금액이 엄청 나왔다) 피곤해서 술생각도 없다(엄마들은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 법이다).
드디어 대망의 5시가 다가왔다. 홀의 2층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박격포처럼 생긴 거품쏘는 기계를 앞으로 이동시켰고, 섹시한 수영복과 포니테일을 한 늘씬한 서양 언니들이 나타나 주르르 한 줄로 서서 춤을 추었다. 사회자가 나와 뭐라 뭐라 떠들더니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온 사람 환호~~~ 중국에서 온 사람 환호~~~ 인도, 일본, 한국, 과테말라 등등 환호~~그리고 정확히 10초 전부터 다 같이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3, 2, 1!! foam party~~~~”
어마어마한 거품폭격
5시 정각부터 2층 박격포에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거품포탄이 끝도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품은 무지막지했다. 거품은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가슴으로 계속 차올랐다. 예상보다 거품이 너무 터프하게 쏟아져 내려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약간 높은 곳에서 놀란 눈으로 소심하게 거품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L이 어디선가 술을 들고 나타났다. 입장권에 술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셔줘야지! (엄마들을 항상 알뜰한 법이다) 공짜술을 한 잔씩 마시고 나자 용기가 생겼다. 우리는 거품 속에 뛰어들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거품은 거의 목까지 차올랐고 한 시간 내내 계속 뿜어져 나왔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거품을 머리에 얹고 춤추는 미국, 중국, 일본, 과테말라, 한국 어른이들. 언제 또 이런 신나는 경험을 해볼까? 러쉬 거품목욕이랑 스케일이 달라. 오길 참 잘했어!
다같이 거품속에서 놀기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거품기계는 멈췄지만 한동안 즐거운 거품파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처음 발들이기가 어려웠지 일단 거품에 몸을 담고 나자 거칠게 없었다. 우리는 꺼져가는 거품을 아쉬워하며 끝까지 신나게 춤을 추었다. 즐겁게 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인원이 1/4 정도로 줄었는데 끝까지 남아서 춤추는 사람은 대부분 의지와 흥의 민족! 한국 젊은이들이었다. 너희들이 우리의 미래로구나.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한 남자아이가 가방에서 작은 수건을 꺼내 들고 신나게 방방 뛰었다. 그 천에는 “Mom, I’m fine”이라고 적혀있었다. ㅋㅋㅋ 귀여운 녀석… 다음엔 우리도 하나 만들어 오자고 했다. “Son, Mom’s okay”
Mom I'm fine
거품이 바닥까지 꺼지자 이번엔 거품 박격포대신 물대포가 등장했다. 물대포도 엄청났다. 짓궂게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휘정거릴 정도. 거품범벅이 된 사람들은 고루고루 즐겁게 강제 씻김을 당했다. 물을 뚝뚝 흘리며 집에 돌아와 5명 돌아가며 또 샤워를 하고, 배고파 컵라면을 끓여 먹고, 또 레드와인과 첫날 남긴 말라비틀어진 하몽과 치즈까지 국물에 적셔 이른 아침을 먹고 나니 어슴푸레 해가 뜨고 있었다. 오늘도 불살랐다. 9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고생했다, 자랑스러운 나의 친구들! 마지막 클럽일정은 저녁때니 그때까지 푹 자야지!
이비자 해변으로 끌려나온 친구들
그날 오후…. 우리는 3-4시간 쪽잠을 자고는 모두 해변에 끌려 나와 있었다. 전날 혼자서 푹 꿀잠 자고 일어난 K가 심심하다며 해변에 나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모두 몸을 사렸지만… 한 사람이라도 강렬히 원하는 걸 들어주자는 여행 원칙에 따라 불쌍한 K를 위해 뙤약볕에 강제소환 당했다.
막상 나와서 파라솔 그늘 밑에 누워있으니 바람도 솔솔 불고 생각보다 시원했다. 맞다, 여긴 클럽의 섬이기도 하지만 휴양의 섬이기도 했었지! 야자수 가득한 한낮의 이비자 해변은 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가족단위 여행객도 많았다. 꼬맹이들이 평화롭게 모래놀이를 하고, 아빠들이 어린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어제 우리가 타고 놀았던 파티보트들이 멀리서 음악을 쿵쿵 울리며 지나다녔다. 토플리스 차림으로 선탠을 하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늘어진 뱃살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비키니를 입은 할머니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휴양과 클럽이 공존하는, 배가 나오건, 이상한 옷을 입건, 안 입건 눈치 주지 않고 각자의 개성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멋진 섬이었다. 친구들은 해변의 파라솔 아래 누워 책을 읽으며, 와인을 마시며, K와 P가 즐겁게 물놀이하는 걸 구경하며 여유를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