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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Mar 31. 2022

모든 것에 진심일 때가 있었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요즘 모든 것에 진심일 때가 있었나?" 갑자기는 아니고 얼마 전부터 계속 맴돌던 생각이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내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무기력감을 느끼고 끌려다니는 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회사 일 뿐만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진심일 때가 없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씩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나누려 한다. 




회사 일에 진심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려보자. 그때는 모든 것에 진심이었다. 팬데믹 가운데 캐나다에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한국 생활을 정리하는 것도, 캐나다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모든 것이 처음 접하는 일이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으니 하나하나 진심으로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반년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서 주변 환경에 서서히 적응해갔다. 작년 12월부터 합류한 스타트업에서도 멋진 멤버들과 합을 맞춰 나갔다. 그런데 욕심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다. 이때부터 생각했던 거 같다. 


내가 모든 것에 진심일 때가 있었나?


초기 스타트업은 정형화된 것이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그것이 정상이다. 대기업처럼 모든 것을 칼같이 정의하고 프로세스로 만들면 오히려 빠르게 적응하고 움직이는데 방해가 된다. 우리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품 출시를 앞두고 매주 채용이 진행됐고 어느새 규모가 두배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해진 것이 없었다. 채용, 입사, 협업, 커뮤니케이션, 미팅까지 규정이 없이 자율로 진행됐다. 처음에 소수 인원일 때는 그것이 편했지만 규모가 세 자릿수를 향해가다 보니 빨리 손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특히 조직도가 정해지지 않아 같은 부서여도 서로 다른 팀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직책도 제각각이었다.


조직도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초기 스타트업은 대기업처럼 트리(Tree) 구조의 조직도가 크게 의미 없다. 수평조직이기도 하고 역할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나 역시 3개월 동안 콘텐츠, 전략, 운영, 파트너십, 세일즈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여느 초기 스타트업에서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인재를 영입할 때나 마케팅이나 파트너십 같은 대외 활동이 늘면서 어느 정도 체계화된 조직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운영 전략을 수립했다. 멤버들 가운데 스타트업이나 수평 조직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아 작은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전보다 더 빠르게 돌아갔다. 특히 정보와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공유되면서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에 쏟는 시간이 줄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휴가는 생각도 못하고 주말도 없이 회사의 성공을 위해 달렸다. 운영 전략뿐 아니라 마케팅, 투자, 파트너십, 세일즈까지 회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부문에서 활약하며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과연 회사 일에 진심인 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사실 옆에서 지켜볼 때 나라는 사람은 회사 일에 진심이었다. 시차가 반대인 한국팀과 협업을 해야 했기에 늦은 새벽까지 일할 때도 많았고 이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몸이 힘든 정도로 따지면 진심이었다. 하지만 진심(心)이라는 단어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진짜일 때 사용하는 단어다. 마음이 문제였다.


진심(眞心)이라는 단어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진짜일 때 사용하는 단어다


몸이 아플 정도로 열심이었지만 성공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실수한 것은 처음부터 성공의 기준을 높게 잡은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오래 고생해도 성공을 맛볼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다시 달릴 수 있는 동기부여로 이어지지 못했다. 


스타트업에서 마음이 지친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부분이다. 대기업은 기-승-전-결에서 '결'이 성공이다. 하지만 동기부여서 중요한 스타트업에서는 꼭 '결'만 성공으로 정의할 필요는 없다. '승'도 작은 성공으로 정의하고 칭찬과 격려를 해보면 어떨까? '전'도 마찬가지다. 또 한 가지, 한 번에 열 걸음을 가는 것을 성공으로 정의하지 말고, 우선 한 걸음을 제대로 떼는 것에 집중하고 이를 달성했을 때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같이 회사 일에 진심이라는 것은 결국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에 대한 동기 부여로 시작해 직원들의 최선의 노력과 소기의 성과,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동기 부여의 선순환이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사람은 지친다. 


회사 일에 진심이지 못했을 때 무기력감을 느꼈다. 더 심해지면 우울감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진심이지 않다고 해서 무책임하거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가지 못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특히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내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방법은 간단했다. 혼자보다는 함께 해보는 것이었다. 나 혼자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혼자 하는 업무보다는 의도적으로 함께하는 업무량을 늘렸다.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작은 성공의 순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속도는 조금 더뎠지만 하나씩 둘씩 결과물이 나왔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가족에게 진심


회사 일의 영향이었을까. 가족에게도 진심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아내와 두 자녀에게 최근 진심일 때가 있었는지 생각했다. 남편이자 아빠로서 해야 할 일들은 묵묵히 했지만, 아내와 자녀들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말이나 행동은 늘 실수 투성이었고 바쁜 회사 일과 맞물려 해결되지 않은 채 흘러갔다. 


그러다 얼마 전 나를 정신 차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먼저 아내가 칼리지(college)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뜻깊게도 장학금을 준 재단이 칼리지 입학을 위해 어학 과정을 듣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국 학생의 부모님이 세운 재단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막내딸이 학교에서 '끈기상'을 받았다. 매월 모든 교실로 중계되는 발표 시간에 이름이 호명됐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들이 고등학교에서 '기량발전상'을 받아왔다. 나는 진심이지 못했지만 아내도 자녀들도 각자 위치에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가족들의 짐을 내가 다 지고 가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그만둬야겠다 생각했다.


가족에게 진심이었을 때가 있었는지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내 태도가 달라졌다. 가족들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는 노력을 하고, 성경 구절에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 눈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보려 하고 있다. 내가 너무 힘들다고 해서 옆의 사람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조언을 해줄 때 진심


스타트업 내에서는 주니어 직원들이, 주위에서는 나와 비슷한 커리어를 생각하는 후배들이 조언을 요청해온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는 화상 미팅을 잡기도 하고 통화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정말 진심으로 도왔다. 몇 시간을 상담해주기도 하고, 내가 발 벗고 나서서 사람을 소개해주거나 자료를 찾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단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누군가를 돕는 것에 쏟을 힘이 별로 남지 않았다. 그래서 조언을 해주면서 내가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문득 최근 조언을 해줄 때 진심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글쓰기를 멈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의 장점은 바로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게 되면 그 주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통해 깨닫거나 생각한 부분을 정리하기 때문에 한번 쉼표를 찍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이 넘도록 글을 쓰지 못하다 보면 온갖 경험은 쌓여가는데 그것을 소화시키지 못하니 결국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이런 사실 또한 글을 쓰면서 깨닫고 있으니 스스로가 한심할 따름이다.


조언은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다. 머리로만 계산하고 해주는 말은 큰 도움이 못된다. 그래서 경험하고, 그 경험을 정리해서 배우고 체득하고 내 것으로 만든 다음에야 조언에 힘이 실린다. 또한 조언은 내가 건강해야 가능하다. 스스로를 단속할 수 있어야 건강한 조언을 해줄 수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 힘들다는 핑계로 제대로 조언해주지 못한 회사 주니어 직원들에게 뒤늦게 죄송한 마음이다. 이제부터라도 인생의 멘토가 되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고 싶다. 



현재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을 오늘자로 그만둔다. 진심이지 못했던 순간이 아쉽지만 너무나도 멋진 멤버들과 100일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 회사 출신이라는 것이 더욱 자랑스러워질 수 있도록 남은 멤버들이 멋진 반등을 해내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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