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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Jun 14. 2023

반평생 깨달은 세 가지

한 달 뒤면 마흔넷, 고령사회에서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래도 여든이 조금 넘는 우리나라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반평생 살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중 40%는 일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또 깨닫고 있다. 


물론 이런 깨달음은 단번에 얻어지기보단 얼마 지나 뒤돌아봤을 때 느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 그땐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보단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고,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힘을 주는 깨달음이다. 그중에 정말 남기고 싶은 깨달음 세 가지를 꼽았다. 




하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진 않지만 계획하고 실행하면 기회가 찾아온다


인생의 순간순간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린 적이 여러 번 있다. 예로 2005년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고 세웠던 첫 계획은 2010년까지 해외 MBA를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정확히 2010년 9월 일본으로 MBA 유학을 떠났다. 이후 커리어에서 여러 계획을 세웠고 또 이뤄냈다. 언뜻 보면 계획대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 인생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2019년 당시 독일계 글로벌 회사인 지멘스에서 8년 가까이 전략 기획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지멘스로 왔을 때 내 계획은 나이 마흔 전에 해외로 나가 일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글로벌 본사가 있는 독일과 아시아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 적합한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리가 생겨도 대부분 내정자가 있는 경우가 많았고 쉽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직을 통해서도 해외 근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거의 합격이라고 믿었던 아시아 지역 매니저 포지션이 막판에 어그러지는 등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커리어가 정체된 것 같은 불안함이 생길 무렵,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길이 열렸다. 글로벌 회사에서 전략 기획 매니저로 경력이 쌓이면서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겼다. 그리고 해외 근무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 구사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됐다. 이때 활동하던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영어 토론 진행자를 맡게 됐는데, 그곳에서 한 스타트업 창업자 대표님을 만났다. 비록 영어 토론이었지만 회사 관련한 토픽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핏이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대표님은 인수 합병 등 회사의 성장통을 함께 감당할 리더가 필요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충분한 경험이 있고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던 나를 적격자로 판단한 대표님 덕분에 속전속결로 이직이 진행됐다. 해외 근무라는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달성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될 줄 알았는데, 다른 기회가 찾아왔고 이를 통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또 다른 성장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고 보면 지금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것 역시 계획한 것이 아니다. 반평생 살면서 한순간도 캐나다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해외 근무를 계획했을 때도 캐나다는 선택지에 없었다. 미국, 호주, 유럽 등 일하기 더 좋은 선택지가 많았다. 하지만 해외 채용이나 글로벌 본사로 이직이 쉽지 않았고 결국 이민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상황이 변하자 선택지가 거의 없었고 그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다름 아닌 캐나다였다. 


사실 해외 발령이나 해외 채용이라는 형태로 나왔다면 삶이 훨씬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계획과 달리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채 캐나다로 와서 매일 같이 좌충우돌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이 또한 인생 2막의 도전으로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해외 근무를 계획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원했던 형태와는 다르지만 덕분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둘, 좋은 선후배보다는 좋은 동료 관계가 좋다


스무 해 가까운 커리어를 통해 좋은 선후배를 정말 많이 만났다. 누군가 내게 했던 말처럼 참 인복이 많았던 커리어였다. 얼마 전 3주 정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들과 점심, 저녁을 꽉 채워 만났다. 그런데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 좋은 선후배라는 개념이 희미해졌다. 대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좋은 동료 관계로 발전해 갔다. 


주니어가 언제까지 주니어가 아닌 것처럼, 지금 후배가 언제까지 후배가 아니다. 그들이 꾸준히 성장해 어느 지점부터는 오히려 내가 그들의 경험과 지식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관계를 맺을 때 선후배를 강조하기보다는 최대한 동료 관례로 마주하는 것이 좋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전 직장 후배와 티타임을 했다. 내가 임원이었을 때 직접 면접관으로 들어가 채용했던 까마득한 후배였다. 당시 내가 뽑고자 했던 이유도 정확히 기억한다. 데이터 분석 관련해선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지만 하얀 도화지와 같이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3년 넘게 지난 지금 후배는 대기업 프로젝트를 리딩해 성과를 낼 정도로 성장했다. 티타임의 대부분은 앞으로 커리어 진로에 대한 고민 상담이었다.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해줬다. 그런데 대화가 일방적이진 않았다. 후배도 이젠 본인 분야에서는 나보다 더 풍부한 인사이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업계 동향, 기술 트렌드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그와 팀을 이루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후배, 아니 훌륭한 동료로 성장해 줘서 고마웠다. 


작년 말까지 CBO로 일했던 스타트업에서 블록체인 리드(Lead)였던 직원이 있었다. 서로의 실력은 인정하면서도 함께 일할 접점이 적어 아쉬웠다. 그런데 오히려 둘 모두 퇴직 후에 연결 고리들이 생겨났다. 지인이 창업한 회사의 투자 유치 준비를 위해 블록체인 전문가가 필요했다. 나는 바로 그 직원을 소개해줬고 그는 투자 유치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번 한국 방문 때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특히 내 경우에는 최근 ChatGPT 등과 관련한 여러 사업 아이디어가 있었고, 그는 개발 쪽으로 전문가다 보니 내가 쏟아낸 아이디어들이 그를 통하면 실현 가능한 사업 아이템이 되었다. 아직 시작하진 않았지만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좋은 동료로서 그와 함께 작은 프로젝트를 론칭할 계획이다. 


2005년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한번 후배는 영원한 후배,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였다. 당시 시스템 자체가 그러했다. 승진도 연공서열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후배가 선배를 앞서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물론 아직도 그대로인 곳도 있지만 이제는 실력이 뛰어나면 인정해 주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리더십 역시 나이순으로 평가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지멘스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했을 때 팀에 마케팅 담당 막내가 있었다. 마케팅 직원만 네 명이었는데 다른 선배들 텃세에 힘들어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본인 목소리를 내고 책상에 앉아 일하는 대신 현장을 뛰면서 일했다. 그 결과 실력만큼은 모두가 인정하는 직원이 됐다. 당시 한국은 이러한 직원들을 담기엔 성숙하지 못했다. 그 직원은 회사를 그만두고 싱가포르로 날아가 페이스북에 입사했고 다시 지멘스 아시아지역 본사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미 연차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문화였기에 승승장구해 결국 독일 본사에서 일하게 됐다. 본사에서 선발하는 글로벌 인재에 선발됐고 지금 뉴욕에서 일하고 있다. 이젠 한국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들이 비빌 수도 없는 레벨이 된 것이다. 이 친구가 한국에 남았으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 후배는 중요한 결정이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내게 종종 조언을 구했다. 물론 그때마다 내 일인 양 최선을 다해 조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후배가 링크드인에 올리는 글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인사이트를 얻고 때로는 도전을 받기도 한다. 시니어가 되어가면서 조금은 몸과 마음이 나태해진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그를 보며 나 역시 심기일전하게 된다. 



셋, 적당히 말고 끝까지 파야 한다


사람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달릴 순 없다. 페이스 조절도 해야 한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 끝까지 파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도전 자체가 의미 있고,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내 모습에서 완전히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선 끝까지 파야하고 결과를 내야 한다. 


처음으로 스타트업 이직했을 당시 회사는 인수합병(M&A)이 진행 중이었다. 정확히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에 합병되는 과정이 막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회사엔 대표, 부사장, 그리고 이사(Director)로 합류한 나까지 세명의 임원뿐이었다. 이직 전부터 대강의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실사(Due diligence)부터 인수 후 통합(Post-Merger Integration)까지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기존 조직이 동요할 수밖에 없었고 직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또 그들이 우려하는 것들을 불식시키는 역할을 맡아서 진행했다. M&A 이후에도 회사가 안정화되기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결국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성공적인 인수합병이 이뤄졌다. 힘든 과정이었다. 글로 다 적을 수 없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다. 그때마다 심장이 얼마나 뛰었는지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끝을 보았고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했다. 


당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한 달이 마치 1년 같다는 말이었다. 이직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3년을 보낸 것 같았다. 사실 당시 나는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임원이 된 경우였다. 임원이 되자마자 M&A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했으니 후에 돌아보니 큰 행운이었다. 당시 힘든 과정을 같이 겪었던 대표님과는 현재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든 다시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한 사람의 실력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다름 아닌 끝장을 봐야 알 수 있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나 역시 내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잠재력은 물론 한계까지도 말이다. 끝까지 파봤던 그때의 경험은 아마도 내 커리어 전체에 걸쳐 가장 강한 영향을 줄 것이다.




누구보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다름 아닌 세 가지 깨달음을 적용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여러 환경 탓 상황 탓을 하며 계획하고 실행하길 주저하고 있다. 좋은 동료가 되고자 노력하기보다 좋은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이 크다. 어느 것 하나 끝까지 파지 못하고 이 우물 저 우물을 파고 있다. 다시 도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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