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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이 할무니 Nov 09. 2021

집으로

람쥐와 보우네 - 다묘 가정의 시작, 람쥐 (3)

엄마 집에 오다.


람쥐가 오던 당일은 더더욱 분주했다. 아직 방묘창을 완성하지 못해서 새벽 늦게까지 작업을 하던 중, 방묘창을 고정하려고 방충망 창틀에 실리콘을 발랐다가 몇 시간 동안 닦아내는 바보짓을 한 날도 그 새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허허.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손님이 오시는데 다과상을 뭐로 차려야 하는지, 방묘창 재료가 부족한데 사러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혼자 우왕좌왕 정신이 없다. 그때, 토요일이라서 차가 밀리다 보니 예상보다 도착 시간이 늦어진다는 무겐님(인스타그램 @mugen_s)의 연락을 받았다.


오호. 다시 주어진 몇 시간의 여유. 방묘창 재료를 사러 갈까 말까 다시 가방을 들었다 놨다 갈피를 못 잡다가, 람쥐가 오자마자 세탁기 소리를 듣고 놀래지는 않을까 차라리 빨래를 해치우자 싶어 그 와중에 세탁기도 돌린다.


거실에는 이미 캣타워, 캣폴은 물론 책상, 숨숨집, 라탄 이동장, 고양이 터널, 종이 박스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빨래를 널고, 다과상까지 펼치니 손님이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 또 우왕좌왕. 손님을 앞에 두고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릴 수 없으니 미리 내려서 식지 않게 텀블러에 담아 두고, 과일을 깎고, 과자를 준비하고. 평소 서툰 살림 솜씨이기에 무겐님이 건물 1층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나는 몹시 분주하다.


건물의 입구가 열리자, 검은 옷의 무겐님이 큰 가방을 들고 환한 미소를 띤 채 들어서신다. 모든 분주함이 일시에 멈추어 버린 시간. 내 아이, 람쥐가 엄마 집에 왔다.


무겐님이 가방 안에 있던 람쥐를 거실에 내려놓으니, 이번엔 당황한 람쥐가 엄마 대신 우왕좌왕이다. 캣폴 쪽 구석으로 튀었다가 숨기에 마땅치 않은지, 다시 창가로 점프해서 창문에 몸을 부딪히고, 캣타워를 지나 책상 밑으로 숨어든다. 안 그래도 책상 밑에 숨을 수 있도록 바닥까지 닿는 커버를 씌우고 숨숨집을 숨겨 두었지만, 람쥐는 숨숨집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그 뒤편에 얼굴을 묻었다.


무겐님과 입양 계약서를 작성하고, 당분간 람쥐가 먹어야 하는 약, 앞으로 돌보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들으며 한 참 대화를 이어갈 때, 람쥐는 그렇게 책상 밑에서 숨 죽이고 있었다. 그 시간이 람쥐에겐 얼마나 기나긴 시간이었을까. 평생을 함께 할 엄마의 집이라는 것도 모른 채, 무겐님네 쉼터에서 격리장 생활도 힘들었을 텐데 이젠 어디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장소로 옮겨진 람쥐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대화가 끝나고 무겐님이 사진 촬영을 위해 책상 커버를 들추자, 잔뜩 긴장한 람쥐가 얼굴을 파묻고 그대로 얼어 있다. 손님이 가신 후에도 람쥐는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입양 첫날밤


엄마가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방에 자러 들어가자, 람쥐가 사부작사부작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엄마는 람쥐 발걸음 소리를 신기해하며 한참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거실에 울려 퍼진 우당탕 쿵쾅 소리에 얼른 달려 나간다.


람쥐는 어디론가 도망가고, 한 때는 거실 창가의 주인이었으나 람쥐의 용품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현관 옆 구석으로 밀려난 화분이 바닥에 쏟아져 있다. 다행히 뿌리가 튼튼한 선인장 화분이다. 부랴부랴 손으로 흙을 퍼서 화분에 담다가 청소 도구를 챙기러 욕실 문을 열였다. 순간, 눈에 들어온 건 변기 뒤에 겁에 질린 람쥐 얼굴. 찰칵. 지금은 재미있는 상황을 모두 영상으로 촬영하는 습관이 생겼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영상보다는 사진이 익숙했다.


람쥐가 놀래서 튀어 오르면 안 되므로 그대로 놔두고 빗자루만 챙겨서 거실로 나온다. 엄마가 흙을 마저 쓸어 담는데, 이어서 람쥐도 거실로 나온다. 창고방 문을 한번, 엄마를 한번 쳐다보길래, 엄마는 이번에도 찰칵. 람쥐에게 창가나 책상 아래 숨숨집으로 가라고 고개 짓을 해줬다. 엄마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신기하게도 창가 방향으로 가는 람쥐. 엄마는 신통하다 생각하고 마저 화분을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2021년 3월 27일 - 욕실에서 나와 엄마와 눈이 마주친 람쥐, 아직 표정도 얼어 있고 털도 꼬질꼬질

지금이야 매일같이 영상을 촬영하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댓글을 확인하고 인친님들 소식도 찾아보느라 바쁘지만, 이때만 해도 아직 고정으로 방문하는 유튜브 채널이 더 익숙했고, 그날은 마침 백만 구독자의 냥이 유튜버 하하하님이 새로운 영상을 업로드한 날이었다. 하하하님네 양어장에서 사는 고양이, 야통이가 외부 침입냥에게 쫓기는 영상이라서 비명 소리가 꽤나 컸다.


그때 느껴지는 이불속의 꿈틀꿈틀. 뭐지? 마저 영상을 보는데, 다시 느껴지는 꿈틀꿈틀. 그렇다. 람쥐는 엄마 방으로 들어와 침대 이불속에 숨은 것이다! 입양 첫날부터 람쥐랑 엄마가 한 침대에?

엄마는 아주 어린 시절을 빼고는 고양이를 가까이서 보거나 만져본 적이 없었기에, 람쥐랑 같이 있다니 좋기도 했지만 사실 떨리기도 했다. 야생성이 강하다는 람쥐이니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람쥐 화장실이 다 거실에 있는데 방에 있으면 화장실은 어찌 가지? 고양이는 오랫동안 화장실을 못 가면 방광염에도 잘 걸린다던데... 엄마는 떨린 마음을 가라앉히고 슬그머니 이불을 제쳐본다.


갑자기 람쥐가 이불에서 튕겨 나와 침대 아래로 내려간다. 허걱. 람쥐가 창가 쪽 벽으로 갔다가 막혀 있으니 다시 방문 쪽으로 돌아 나오면서 내 눈치를 본다.


영상으로 남기지 못해서 아쉬운데, 내 눈치를 보면서 통통통 걸어다디는 람쥐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방이 좁아 총알처럼 튀어나가 혼비백산할 공간이 없어서 일까, 그날의 람쥐는 통통통 귀여운 걸음과 멋쩍은 표정으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방 안을 헤매었다. 하악도 안 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엄마가 방문을 쓱 열어 주자 람쥐는 거실로 유유히 사라진다.


첫날밤 람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방에서 나간 이후에도 람쥐 발바닥이 장판에 닿는 경쾌한 발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엄마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거실은 조용하다. 화분들도 잘 있었고, 람쥐가 좋아하는 습식 파우치와 닭고기로 차린 밥상이 그대로인 게 아쉬웠지만, 야생성이 매우 강하다는 람쥐는 걱정과 달리 얌전하게 거실을 탐색했나 보다. 다시 책상 밑에 숨었나 싶어 커버를 들춰보니, 람쥐가 없다. 어젯밤에 제법 큰 소음이 들리더니 방묘창을 뜯은 건 아니겠지? 숨숨집 안과 캣타워 등 거실 여기저기를 훑어보다가 신발장 옆의 구석에서 람쥐를 발견한다. 휴.


밤새 무엇을 했을까 싶어 엄마는 찬찬히 거실을 훑어본다. 건조하기 위해서 싱크대 위에 놓아둔 원두커피 가루에 찍힌 람쥐 발자국, 어젯밤 우당당 쿵쾅을 운 좋게 피한 화분의 테이블 야자 잎에 생긴 잘근잘근 람쥐 이빨 자국, 캣폴 담요도 흐트러져 있는데 올라간 걸까? 람쥐가 이후에 한동안 캣폴을 이용하지 않은걸 보면 엄마의 착각일 수도 있고, 첫날만 궁금해서 올라가 봤을 수도 있고.


람쥐 몰래카메라


인스타그램(@larmgee.bow)에 밤사이 람쥐 소식을 전하면서 람쥐와 마주쳤을 때 찍은 사진 두장을 함께 올렸다. 커피 가루는 치워야 하며, 고양이에게 안 좋은 식물에 대한 조언 등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댓글 중에는 영상도 찍어 달라는 인친님이 계셨다. 사실 나도 방 안에서 들리는 람쥐 발자국 소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방묘창을 뜯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핸드폰 삼각대가 있으니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보기로 한다. 어제 망설이다 미루었던 방묘창 재료를 사러 나가야 하므로, 하루 종일 쫄쫄 굶은 람쥐를 위해 사료와 습식을 챙겨서 신발장 거울 앞에 차려두고, 사용하지 않는 구형 핸드폰 카메라를 설치한 후 다 늦은 오후에 집을 나섰다.


첫 몰카부터 람쥐는 저세상 귀여움으로 엄마의 마음을 녹였다. 구형 핸드폰이다 보니 심야 촬영 모드가 없어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구석에서 '빼꼼' 등장하는 람쥐가 밥을 깨작깨작 먹다가 거실을 두리번 두리번하는 모습은 충분히 귀여웠다. 그런데 람쥐가 싱크대 위로 점프를 하더니 한 시간이 넘게 머무르는게 아닌가. 싱크대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세척솔이나 건조하려고 집게로 걸어 둔 재활용 비닐류 등 람쥐가 가지고 놀게 많기는 하지.

2021년 3월 28일 - 구석에서 빼꼼 등장하는 람쥐

아지트 생활의 시작


그런데 다음날 아침, 람쥐가 또 사라졌다. 이번엔 어디로 숨었지? 숨숨집과 캣타워를 다 훑어봐도 람쥐가 없다. 그렇다면 갈 곳은 하나, 책상 아래. 엄마가 집안일을 하느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니, 신발장 옆 구석도 불안했나 싶었다. 아직 날이 쌀쌀하니 따듯하게 있으라고 미리 깔아 놓은 책상 밑 전기방석도 틀어주고, 람쥐가 불안하면 또 도망갈 테니 굳이 책상 커버를 들추지 않았다.


엄마는 지난밤 몰카 영상을 빠른 재생으로 확인한다. 그러다가 람쥐의 귀여운 모습이 눈에 띄면 해당 부분만 잘라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여 인친님과 공유한다. 그래서 선정된 영상에는 싱크대에서 빼꼼 등장해서 거실로 내려오는 람쥐도 있다.


또 하루가 지나고, 밤사이 촬영된 영상을 확인하던 엄마는 또 싱크대에서 빼꼼 등장하는 람쥐를 확인했다. 무엇이 생각난 듯 책상으로 달려간 엄마가 커버를 들추자, 람쥐는 거기에 없었다. 람쥐가 어디로 갔을까? 가출? 아니 아니. 진정하고 싱크대를 찬찬히 훑어보던 엄마는 아뿔싸,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엄마 방의 침대 밑도 펜스로 막았고 그 무거운 방묘문을 두 개나 달았는데, 정작 냉장고 후면이 오픈형이라는 사실은 놓친 것이다. 붙박이 장 안에 냉장고가 들어가 있는 형태라서 냉장고를 꺼낼 수도 없다. 기술자를 불러서 붙박이장을 분해하지 않는 이상, 람쥐가 그 안에 있으면 사람 손이 닿지 않아 억지로 꺼낼 수가 없다.


람쥐가 밤마다 빼꼼 등장해서 거실에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공간을 탐색하고 있으니, 엄마는 마지못해 당분간 람쥐가 하고 싶은 대로 맘 편히 있도록 두고 보기로 한다.


람쥐의 아지트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엄마가 방에 들어간 후 조용해지면 살금살금 나와서 해뜨기 전까지 놀다가 아지트로 들어가는 패턴은 한 참이나 이어졌다.  


영상으로만 만나는 아들내미, 람쥐


밤마다 '빼꼼' 등장하는 람쥐는 더없이 귀여웠지만, 첫 일주일은 거실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람쥐의 모습에서 긴장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처음 거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여준 게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졸릴 땐 아지트로 숨어버리던 람쥐가 조금 긴장을 늦춘 것이기에 엄마에겐 감동이었다.


인친님 조언대로 캣닢 가루를 바른 인형을 주변에 놓아서 일까, 그날은 람쥐가 발 매트 위를 뒹굴뒹굴 구르기까지 한다. 비록 엄마 앞에서 부리는 애교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아진 람쥐가 보여 준 첫 뒹굴뒹굴이다.

2021년 4월 3일 - 집에 온 후 처음으로 뒹굴뒹굴

가끔 켜지는 현관 센서등 불빛조차 없으면 밤의 어두운 조명 속에 흐릿하게 촬영되는 람쥐의 모습. 그런 영상이어도 인친님들과 공유하면 댓글로 다양한 조언과 경험담을 달아 주신다. 엄마는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그러니 엄마와 랜선집사님들이 함께 람쥐를 반려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매일같이 람쥐의 행동을 하나하나 뜯어보게 되니 람쥐가 무엇이 불편한지 보이기 시작한다. 거실 큰 창문에 매달려 밖을 내다보면 그 자리에 방석을 놓아주고, 캣폴 맨 아래의 발판이 너무 낮아서 람쥐가 지나다닐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모습을 확인한 후 캣폴을 해체해서 맨 아래에 위치한 짧은 기둥을 약간 더 긴 기둥으로 교체해서 다시 조립하기도 했다.  


아침마다 지난밤 영상을 확인하는 것은 엄마의 심리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실 만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얼굴도 보지 못하는 냥이를 위해 밥을 챙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참 외로운 일이다. 산냥이가 집냥이 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시간이 걸릴 줄은 알았지만 하루가 십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다시 달이 바뀌고.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도 충분히 지칠 수 있는 시간이다.


가끔 엄마를 대신해서 람쥐의 야속함을 서운해하시는 인친님도 계시다. 나도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괜스레 더 우울한 날이 되면, 람쥐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고 (고양이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던데 ㅋ) 지금 내가 뭐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기다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침마다 지난밤 영상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람쥐가 어느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밤새 무얼 하고 노는지, 물은 잘 마시는지, 밥은 한 번에 많이 먹는지 나누어 먹는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도 볼 수 없는 녀석이지만 이미 너무 잘 아는 녀석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람쥐처럼 손도 안 타고 조심성도 많아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고양이를 반려하는 집사님이 계시다면, 몰래카메라 촬영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나에겐 긴 기다림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비법이었다.


2021년 11월 9일


람쥐 (코숏, 남아 2세)

2019년 봄~여름 출생 추정

2020년 1~2월경 캣초딩 람쥐와 무겐 아빠의 대면

2021년 3월 27일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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