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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Apr 19. 2020

깊고 깊은 나의 고독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1)


어렸을 때부터 유독 병치레가 잦았다. 몸이 약하게 태어나기도 했고, 천성적으로 너무 예민했다. 조금만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몸으로 증상이 나타났다. 그래도 며칠 푹 쉬면 좋아지곤 했는데, '어지럼증'은 꽤 오랜 시간 나를 놔주지 않았다.



2016년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고서 시작된 경미한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져서 나중에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 그때 썼던 일기들은 온통 약한 몸을 한탄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 때문에 하루의 시작이 두려울 때가 있다. 많이 먹고 많이 자고 운동을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바로 반응하는 몸 때문에 정말 속상하다. 왜 이렇게 지치는 건지.. 전부 다 놓아버리고 싶다.
- 17.08.09



처음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채식을 한 이후에 빈혈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여전히 어지러웠다. 이비인후과, 내과, 산부인과 진료까지 모두 정상이었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한약을 지어먹어도 힘들었다. 결국, 소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신경외과에서 뇌 MRI도 찍었다.



검사하던 날은 아직도 생생한데, 폐쇄공포증이 있는 내가 그 동그란 원통 안에 들어가야 했을 때 너무 무서웠고 검사 내내 이상한 소리가 났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찬양 가사를 계속 외워야만 했다. 검사가 끝나고 나올 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결과는 곧바로 나왔고, 의사 선생님은 깨끗한 뇌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괜찮다고 하셨다. 이렇게 모든 게 정상인 경우에는 심리적인 경우일 거라고 덧붙이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참담했다.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할 텐데 답답함과 아픔은 계속해서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 ‘어지럼증’은 한때 유행했던 피로회복제 CF 장면처럼, 엄청나게 큰 곰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서 한발 한발 떼기가 무겁고, 누가 스치기만 해도 푹 쓰러질 것만 같은 공포였다. 한 마디로 술 취한 사람처럼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넘어질 것 만 같을 때, 쓰러질 것 만 같을 때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았다.





신도림역을 환승해야 했던 출퇴근길,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환승구간에 멈춰 서서 온몸을 떨었던 날을 기억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은 느리게 지나가고, 내 호흡소리만 들렸다. 숨을 잘 못 쉬겠어서 심호흡을 계속했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처럼 한 걸음씩 힘들게 걸으며 플랫폼에 한참 앉아있다가 지하철을 탔다.



택시를 탄 날도 많았다. 그런 날은 곧장 쓰러질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불안장애를 갖고 있었고,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었다. 한참 심했을 당시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무서웠고, 집 밖으로 발을 떼는 것도 무서웠다. 회사도 울면서 다녔고, 내게 주어진 하루가 숙제나 짐처럼 느껴졌다.



상담을 공부하신 엄마는 아무래도 공황장애 증상이 보인다며, 병원에 가볼까 물으셨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약한 모습이 싫었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도 셌고, 고집도 강했다. 괜찮아질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때론 괜찮아지기도 했다. 퇴사 후 몇 달은 괜찮다가도 조금만 신경 쓰는 일이 있으면 어지럼증은 찾아왔고, 작년 여름까지 지속됐었다.





몸이 아플 때 가장 힘든 점은 감사를 쉽게 잃는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감사가 사라지면 너무 쉽게 우울이 찾아온다. 그렇게 우울에 깊이 빠져있던 나. 깊고 깊은 고독, 2018년은 나에게 광야의 시간이었다.



기댈 곳이 없었고, 의지할 곳이 없었다. 우울과 불안과 사탄이 주는 소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그때, 나는 그제서야... 무릎 꿇고 기도했다.



 "주님 도와주세요. 저를 살려주세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 아픔의 시간 동안 주님 앞에 진실되게 기도 한번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탄의 말에 쉽게 미혹되어서 그냥 그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기만 했다. 그리고 난 정말 교만했다.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광야의 시간 속에서 매일 울며 잠들었고, 1시간 예배의 자리에 나가는 것조차 내 체력으론 힘들었다. 그렇게 살려달라는 기도만 하고 있었을 때, 청년부에서 찬양팀으로 섬기고 있는 moon 오빠가 손을 내밀어 줬다.



"현희야 힘들어도 함께 찬양해보지 않을래? 찬양하면서 예수님께 나아가다 보면 네가 갖고 있는 문제들도 조금씩 해결되지 않을까?"



20대 초반 함께 찬양팀으로 봉사하며 추억이 많았던 moon 오빠는 예배가 어색해진 내게 그렇게 물어봐주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치유의 시작이었다.








Hillsong Worship - Still

잠잠히 주님만 바라보아야 했던 시간.

그 순간 나를 버티게 해 준, 시시 때때로 생각나게 해 주시던 찬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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