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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감상에도 필요한 근거

조그맣게 영화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주로 오마이뉴스에 투고한 기사를 블로그로 옮긴다. 최근 연예뉴스란 댓글이 폐지되면서 댓글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블로그다.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고 피드백도 받을 수 있다. 어떨 때는 영화에 대해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던 정보를 댓글로 알기도 한다.      


블로그에 달리는 모든 댓글이 반가운 건 아니다. 답을 달기 껄끄러워 패스하는 댓글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하는 댓글이다. 상황을 설정해 보자. A라는 친구는 평소에 말투도 부드럽고 공손하다. 남이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기도 잘 도와준다. B와의 대화 중 이를 이유로 A를 착하다고 말하니 B는 그 근거가 빈약하다고 말한다.     


착한 사람이라면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데 A가 봉사를 했나, 소액기부를 했나 하며 따지고 든다. 남이 도움을 청하면 받아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반문한다. 오히려 A의 행동은 가식적으로 느껴진다며 착한 건 아니라고 단정 짓는다.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은 굳이 댓글을 달지 않는다. 저런 생각도 있구나 하고 넘어간다.     


댓글을 달았다는 건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밝히기 위함이다. 답정너라는 말처럼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되는 상황을 원하는 게 의도다. 그래서 일부러 상대하지 않는다. 내 감상과 생각의 근거를 글에 충분히 써 놨다면 상대가 동의하지 않은 거뿐이다. 국가의 중대사를 다루는 일도 아닌데 설득이나 협의를 할 필요는 없다.     


영화 리뷰에서 감상을 지나치게 개인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이 다 재미있는 영화라고, 다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간략한 서술만 붙여도 감정적으로 동의할 것이라 여긴다. 감정은 사건과 흐름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한다면 이유가 있다. 상대가 나에게 선물을 주면 좋아지고, 괴롭히면 싫어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좋아지고, 아닌 부분이 있으면 싫어진다.     


가끔은 이 근거가 너무 개인적이란 이유로 쓰기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여성의 불필요한 노출에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 이를 근거로 영화를 비판하는 걸 꺼려한다. 남들이 보기에 사소한 이유 같고,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의식이나 완성도와 연관되는 지점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안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이 영화가 불쾌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스스로의 금기를 만든다.     


리뷰는 그 자체가 개인적인 감상이다.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라는 점에서 형식과 구성에 있어 독자를 생각하는 배려는 필요하지만, 생각은 자신의 것을 담아야 한다. 기분이 상했을 때 그 이유가 너무 사소한 거라 친구한테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오해만 커지고 내가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인다.     


속이 좁고 편견을 지닌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감정적으로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 없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란 걸 보여주는 게 더 좋다. 당신의 독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영화를 보면서 당신이라면 저 부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상대에게 이해를 구하기 위한 근거를 제시해야지,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감정만 보이면 글이 추상적으로 보인다.  

   

추상적이란 단어는 문학에 어울린다. 리뷰가 추상적이라면 공감과 해석을 얻고 싶은 독자는 혼란을 겪는다. 영화보다 리뷰가 어렵다면 누가 보려고 하겠는가. 연인이 ‘내가 왜 화놨는지 맞춰봐’ 하는 거처럼 곤란한 상황도 없다.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도 피하고 싶은데 영화 리뷰가 그렇다면 다시는 그 리뷰어의 글은 읽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 감정을 상세하게 서술하거나 영화의 장면을 이유로 근거를 만들어라. 거창하거나 심오한 근거를 들 필요는 없다. 특별함을 주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사람은 서로 다르다. 내가 평범하다 여기는 감정이 타인에게는 독특함을 줄 수 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평론가도 평가에 주관이 들어간다. 사람은 누구나 주관적이다.     

내 주관을 표현하되 왜 그런 주관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작은 감정적인 부분이라도 명확한 이유라면 개인적이란 이유로 비난받지 않는다. 영화를 바라보는 깊은 시선만큼 내 마음을 바라보고 쓰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그래야 글에 마음이 담기고 마음이 만든 근거가 영화를 향한 감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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