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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가 아닌 관객과의 대화

시사회가 끝나고 진행되는 GV, 관객과의 대화는 관객에게만 특별한 순간이 아니다. 감독 그리고 배우에게도 뜻 깊은 시간이다. 때로는 기자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을 할 때가 있고, 어떨 때는 창작자도 생각하지 못한 감정을 전해줄 때도 있다. <들꽃>으로 유명한 박석영 감독은 딸을 버린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바람의 언덕> GV 당시 한 어르신 관객 분에게 ‘어머니 캐릭터가 그래서는 안 된다’며 훈계를 들은 일화도 있다.     


창작자와 연기자는 관객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특별한 순간을 맞이한다. 영화라는 매개체를 사이에 두고 소통을 하는 순간이다. 만약 감독이 혼자 나와서 작품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한다면 이런 특별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리뷰는 두 가지 대화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관객이 되어 영화와 나누는 대화, 내 글을 매개체로 두고 독자와 나누는 대화다.     


대화는 혼자서 할 수 없다. 상대가 필요하다. 대화에는 맥락이 있다. 이 맥락이 무엇에 대해 쓰고자 하는 소재다. 작품의 주제가 될 수도 있고, 촬영이나 미술 같은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전반적인 내용으로 잡을 수도 있고, 특정한 장면을 바탕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대화에서 중요한 건 맥락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고민하고, 그 고민에 집중해야 한다.     


대화는 중간에 끝나지 않는다. 중간에 대화가 끝난다면 그건 어색한 사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글과 어색해지지 않으려면 계속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기승전결에서 ‘결’을 완성할 수 있다. 리뷰는 문학이 아니라 ‘기’나 ‘결’을 쓰기 어렵다. 대화에서 시작과 끝이 어려운 거처럼 말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어떻게 시작하느냐와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처럼 마침표를 어떻게 찍느냐가 글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도입부는 사회적인 이슈나 영화의 흥미로운 장면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게 좋다.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를 예로 들자면 사회적인 각박함이나 실업 문제를 언급하는 게 전자고, 코미디언을 꿈꾸던 아서 플렉이란 남자가 조커가 된 장면을 묘사하는 게 후자다. 결말은 주제의식이나 감정을 넣는 게 좋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문단에 정리하는 게 깔끔하다.     


글은 필자가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제공한다. 세상 모든 일이 완벽하다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 오히려 혼자 살기 너무 좋은 세상일 것이다. 불만이 있고 불행이 있으니 행복도 피어난다. 그래서 남에게 푸념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다. 독자는 좋은 리뷰를 발견하면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떨 때는 리뷰어의 주장과 생각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피어난다.     


독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리뷰는 말을 걸어준다. 내가 영화에서 느꼈던 감정을 보여주는가 하면, 새로운 생각이나 예상치 못한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 내 생각 한 점 얻고 싶은 리뷰는 대화를 이끌어 낸다. 우리는 너무 완벽한 사람이나 상대하기 싫은 결점이 보이는 사람은 피하게 된다. 반면 친근하고 감흥을 주는 사람에게는 말 한 마디 걸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좋은 리뷰는 좋은 사람을 만난 기분을 준다. 영화가 아닌 리뷰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깔끔한 기승전결은 물론 생각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이런 리뷰를 쓰기 위해서는 깔끔하게 정돈된 구성에 쉬운 단어를 바탕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친구한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주듯 말이다.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는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 좋다. 이동진 평론가의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기생충> 한줄평이 논란이 된 건 어려운 단어를 택했기 때문이다. 글이 영화보다 어렵게 느껴지면 거부감을 지니게 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쉬운 단어를 택하고 웃음을 유발해내는 유행어나 센스 있는 구성을 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대로 대화를 나누기 힘든 글은 넋두리를 하듯 쓰는 글이다. 넋두리는 불만이나 불평을 혼잣말처럼 하소연 하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정신이 없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 글을 집중해서 읽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현학적이거나 추상적으로 보인다면 좋겠지만 어린아이 투정처럼 보일 우려도 존재한다.     


넋두리처럼 쓰는 글의 특징은 두서가 없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섞고, 앞서 했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한 줄로 이해가 끝난 메시지에 부언을 덧붙인다. 문장은 10줄인데 핵심은 한 줄이 채 되지도 않는다. 말은 많은데 맥락은 없고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친구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눈앞에 내 표정이 어떤지 신경도 안 쓴다는 생각이 들 만큼 기분이 나쁘다.     


리뷰를 쓴 후에는 입으로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남에게 읽어준다는 마음으로 내려다가 보면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나 구성을 발견하게 된다. 가족이나 친구가 근처에 있다면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만 보고도 영화의 내용이 머리에 그려졌다고 답한다면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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