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그리스 - 그리스어에 대한 고찰...
서론에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그리스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신화를 접한 순간이었다. 저 책들이 나의 길을 정해주었다고 생각하니 소중하게 느껴져 버리지 않고 열심히 테이프를 붙여놓았다고 한다. 근데 정말 버렸으면 화냈을 거야......ㅠㅠㅠ 기존에 그림을 그리시던 홍은영 작가님이 출판사와의 분쟁으로 19권인가부터 작가가 바뀌었다. 그림이 맘에 안 들어서 더 이상 사지 않았고 이후로는 집에서 찾은 토마스 불핀치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신화가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방대하다는 사실에 놀라 더 배우고 싶어었지만, 중학생 때 겨우 호메로스를, 대학생이 되어서야 헤시오도스를 알게 되었다. 고전 서사시인들을 접할 만큼 머리가 커지면서 그리스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더 커졌다. 그래서 배우기 시작한 그리스어지만 현대 그리스어가 다가 아니며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고!!!
이런 표현이 있다. 영어 숙어, 속담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가 발견을 했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초등학교 때여서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이 왜 저렇게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율리어스 시저의 비극'에 나오는 소절인데, 키케로가 자신의 대화를 염탐꾼이 듣더라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도록 그리스어를 사용한 데서 염탐꾼이 한 말이다. It's (all) Greek to me. 이후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의미의 관용적 표현이 된 것이다. 이런 표현이 생겨난 만큼 그리스어는 옛날부터 어려운 언어로 인식되어왔나 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기준에서 배우기 어려운 언어를 정리한 도표이다. 그리스어는 힌디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과 함께 Medium 단계에 해당된다. 'Hard' 단계의 외국어는 아랍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한국어가 차지했다. 하지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내 기준으로 그리스어는 Hard에 해당한다.
그리스어도 다른 유럽 언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알파벳에 맞추어 A,Β,Γ 과정으로 나누어져 있다. 실제로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단계는 B2부터라고 하지만 B2를 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스어를 잘할 수 없다. 정규 어학당 과정을 듣기 전, 야니나 대학교에서 여름방학 코스를 들었을 때 느낀 문화충격이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유럽 사람들이었고 같은 레벨을 배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화실력은 나보다 한참 위였다. 어휘력도 차원이 달랐다. 야니나대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아테네 대학교에서도 매년 나의 레벨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곤 한다. 지금도 Γ1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내가 대학과정을 듣는 건지 어학과정을 듣는 건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런 나에게 그리스어가 어려운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문법구조가 복잡하다.
유럽 언어의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성, 수에 따라서 동사가 변화하고 격에 따라 명사와 형용사가 변화한다. 스페인어를 잠시 배우면서 유럽 언어의 어려운 문법구조 맛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그리스어를 더 깊게 공부하다 보니 그만큼 더 많은 장벽을 만나곤 한다. 인칭에 따라 동사가 변화하는데 영어에서 s를 붙였다 떼는 수준이 아니라 나, 너, 그, 우리, 너희, 그들 모두 6단계로 변화한다. 어미는 비슷하게 끝나긴 하지만 동사가 수동태이거나 과거형이면 또... 달라서.... 동사변화가 너무 힘들었다. 아직도 조금 어려운 동사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어를 문법부터 접근해본 적이 처음이라 더더욱 이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또 왠지 모르게 한국어에서는 '씻다'가 맞는 표현이지만, 그리스어의 원형은 피동사인 '씻기다'이다. 그러므로 '내가 씻는다'는 동사 원형 Πλένω가 아니라 Πλένομαι를 사용해야 한다. 이런 피동사 형태의 단어가 그리스어에 굉장히 많아서 헷갈리는 것이 많다. 그리고 변형에는 당연히 규칙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 동사 변형도 겨우겨우 외울 즈음에 수동태 동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지금도 벽에 걸쳐있는 것 같다
2. 접근성이 떨어진다.
한국에는 현대 그리스어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없다. 그리스어 문법 책이 가끔 있긴 하지만 대부분 희랍어, 고전 그리스어 책이라 성경공부 이외의 목적으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로 된 그리스어 책을 찾을 수 있긴 하겠지만, 대학에서 사용하는 책마저 그리스어로 되어있다. 외국인 교육용으로 나와 알아보기 어렵진 않지만, 문법에만 집중하다 보니 회화실력은 바닥을 치게 되는 것.
3. 역사가 깊다.
사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고전 그리스어이다.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겠다는 초등학생의 꿈을 이루어주려면 기원전 8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자를 알면 더 쉽게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고전 그리스어를 알면 그리스어를 공부하기 더 쉬운 것 같다. 그리고 역사가 깊어 그만큼 단어가 방대한 느낌. 아랍어, 중국어 등 원래 역사가 긴 언어들이 배우기 어려운 언어로 꼽힌다고 하지 않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배워왔던 것이 있으니 끝까지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뭐든지 완벽하게 딱딱딱해내기보다는 슬금슬금 게으름을 피우며 배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도 어학당을 부지런히 다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리스 직원들의 전화통화를 엿들으면서 이런 상황엔 이렇게 말하는구나, 듣기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겠지. 히히 어찌 됐든 나중에 그리스어를 더 잘하게 되고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답사를 떠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그리스 생활을 아주 조금 담은 사진집...? 을 내기는 했지만 최소한 제대로 된 관광 가이드북이라도 내보고 싶다. 대충 가보고 주워 들어서 번역한 가이드북 말고!!! 내가 고급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그 날까지... 화이팅..ㅠㅠ Not greek to me any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