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사랑이 어렵다. 아직도 그렇다. 20대의 나의 사랑은 더했다. 20대의 내 사랑은 그저 아픔이었고 고통이었고 부정하고 싶은 기억의 연속이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한 적은 없다. 다행히도 또 뻔하게도 그 아픔들로 인해 성숙해졌고 사랑이 조금씩 덜 어려워졌다. 다음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내 예전 아팠던 사랑들을 다시 한번 마주해본다.
거의 10년 전쯤의 일이다.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귀고 나서 6개월 정도가 지났을까. 제 발로 심리치료를 받으러 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만 같다는 불안감이 계속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찾은 곳이 심리치료소였다.
왜 이곳에 왔냐는 심리치료사의 질문에 모든 것이 너무 우울하다고 대답했다. 심리치료사는 다행히도 제 발로 우울하다고 찾아온 사람들은 금방 좋아질 수 있다며 내게 여러 가지 형용사들이 적혀있는 종이를 주며 소리 내어 읽으라고 했다. 예를 들어 '행복하다'라는 단어가 있으면 '나는'을 붙여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나서 어떤 방으로 날 데리고 가서는 곰돌이 푸 인형을 주며 그 인형이 어렸을 때의 나라고 생각하며 위로해라고 했다. 심리치료사는 내가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가정환경 문제 속에서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고 당시 주변으로부터 충분히 위로받지 못했기에 그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부터 결핍이 되어있던 관심과 사랑을 남자 친구에게 모두 바랄 수는 없다고 말이다. '결핍'이 원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를 먼저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었다.
시키는 대로 곰돌이 푸 인형을 안고 내 이름을 부르며 다독이는데 사실 좀 민망한 마음이 더 컸다. 당시 내 정신 상태가 좋지는 못했기에 무엇을 하든 눈물이 났었고 인형을 다독이는데도 당연히 눈물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기억하는 그때의 내 감정은 민망함이다. 아마도 내가 마냥 슬픔에만 빠져있다라고만 생각했을 심리치료사는 계속해서 어린 나에게 해주어야 할 말들을 옆에서 일러주며 과정을 진행해나갔다. 썩 효과적인 치료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문제의 본질을 조금 더 들여볼 수 있었던 기회였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때 그 남자 친구와는 몇 번 이별을 반복했었는데 그와 처음 내가 마주해야 했던 이별의 고통은 너무나 엄청났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눈물을 참는 것이 힘들어 아무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6살 때 내가 친엄마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때 흘려야 했던 울음이 그런 울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어렸고 가족들은 내게 슬픔을 마주하게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피해 가게끔 하려고 애썼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참 신기한 게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엄마를 따르던 내가 하루아침에 엄마를 볼 수 없게 되었는데도 딱히 울지도 않고 덤덤했다. 아마 본능적으로 슬픔을 외면했던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랬기에 성인이 되어 겪어야 했던 많은 이별들이 더욱 힘들고 아팠다.
가장 최근에 한 이별 또한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이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나간 사랑이 떠났음을 외면하거나 원망하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 당시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과의 순간들이 참 감사하고 유난히 다사다난한 올해 같은 때에는 그 또한 별 탈이 없이 잘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랄 정도로 꽤 성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