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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레어 Aug 11. 2020

이별이 너무 어려운 사람

[2] 아직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탓

사랑의 Loser(패배자)인 나의 두 번째 사랑 이야기.


가장 최근에 만났던 사람이며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준 사람. 이별 후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을 만큼 나에게 좋은 기억을 가져다준 감사한 사람.

문제는 그와 헤어졌을 그 당시였다. 1년 반 동안 함께 했던 그와의 이별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외로웠고 고통스러웠고 우울했다.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말라고 누가 그랬던가. 백 번 옳은 말이다. 그 모든 감정을 회피하고자 '아무나' 만났는데 이 '아무나 씨'는 겉으로만 보면 훌륭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려고 내가 그와 헤어졌구나라고 생각했을 만큼 아무나 씨와 몇 번의 데이트는 참 즐거웠다. 그리고 이 아무나 씨와 즐겁게 저녁을 먹으며 술을 몇 잔 마시다가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한참 듣던 아무나 씨는 어느 순간 나를 보더니 이런 식으로 말했다. "난 너한테 모든 걸 줄 수 없어. 너한테 부족한 걸 나한테서 찾으면 안 돼. 그런 관계는 힘들어." 한참 전의 일이고 취했었던지라 정확히 어떤 말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내가 다분히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 선을 긋다 못해 혼내듯이 한 이야기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아마도 주고받던 말들 속에서 아무나 씨는 나의 '결핍'을 느꼈으리라. 어쩌면 참 현명했던 그러나 얄짤없던 아무나 씨.

그리고 다음 날,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나러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핸드폰으로 당시 정주행이던 드라마 '또, 오해영'을 재생했다.  에릭과 전혜빈이 왜 과거에 헤어졌어야 했는지가 밝혀지는 부분이었는데 보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쳐다봤던 것도 같지만 이렇게 우는 내가 왜 이런지 알기를 위해서라도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같은 부분을 계속 반복하여 재생하며 그 이유를 찾으려 애쓰다가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께 어떻게든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집 앞에서 한참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갔는데도 할머니 옆에 앉자마자 폭포수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며, 그렇게 힘들 줄 알았다며 나를 따라 같이 눈물을 보이시던 할머니께 고백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에릭: 내가 사랑을 어떻게 알아? 사랑을 받아봤어야 사랑을 알지.

에릭 모: 그러니까 적어도 한쪽은 사랑을 받고 큰 애어야 될 거 아냐. 걔 7살 때부터 지 할머니 손에 컸어. 그 뒤로 걔네 부모랑 찍은 사진 한 장도 없어. 그런 애랑 잘 살아질 것 같아?

에릭: 나 걔 불쌍해서 못 버려. 지네 부모한테 그렇게 버림받고 나한테까지 버림받아야 해? 걔 사람들한테 엄청 상냥해. 미움받지 않고 버림받지 않으려고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웃으면서도 눈동자는 떨려. 자기 싫어할까 봐, 버림받을까 봐. 그런 애를 어떻게 버려?

에릭 모: 그게 사랑이야? 측은지심이지.

에릭: 측은지심이어도 된다고.


이별하면 모든 노래 가사와 슬픈 멜로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다라고들 한다. 나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저 특별한 상황들과 성격에 대한 묘사까지. 그래서 저 장면을 보고 눈물 버튼이 제대로 작동을 했다. 단순히 이별만을 떠올렸던 게 아니라 평소 내가 왜 바보처럼 웃고 다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인상이 좋다고, 항상 즐거워 보인다고, 친절하다고, 고민이 없어 보인다고, 시원시원하다고, B형 같다고 한다. 인상은 좋을 수 있지만, 항상 우울한 것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됐고 아직도 그렇고, 친절하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하고, 고민 때문에 밤잠 못 이루고, 말투만 시원시원한 극소심한 A형이 바로 나인데도 말이다.


사람들 모두 어느 정도 연기를 하고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연기는 또 버림받기 싫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를 사랑했다던 그도 내가 불쌍해서 헤어짐을 망설였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뻔한 말이지만 내가 나를 더 사랑해주어야겠다는 것. 내가 전혜빈만큼 예쁜 것도 아니고 과거를 비롯한 나 자신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태연해져서 진짜 나를 더 사랑해주어야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그 누군가도 날 사랑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매거진도 쓰기 시작했다. 제대로 돌아보고 제대로 나아가려고.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누군가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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