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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레어 Apr 04. 2021

비슷한 우리는 괜찮을까

[3] 그래도 모든 인연이 소중하다는 진리

얼마 전, 짧은 연애를 끝냈다. 연애 칼럼니스트도 아닌 내가 이렇게 지나간 연애들에 대해 자꾸 주절주절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 순간에도 나 스스로 또한 묻고 있는 질문이다. 아마도 연애라는 경험을 할 때마다 뭔가를 지독히도 배우기 때문이리라.


그와 나,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서로의 어떤 면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흔치 않은 만남이었고 그렇기에 아마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너와 내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오류에서 시작된 연애는 당시에는 몰랐으나 돌이켜보니 당연한 '기간 한정 연애'였다.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때때로 연애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나를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실망감에 상처를 받고는 한다. 반대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참 미련하게도 나와 비슷한 결의 상처를 가진 사람과의 연애는 다를 줄 알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더욱 말을 아끼게 되었고 관계는 일방적으로 흘러갔으며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줄 알았던 우리는 결국 평행선을 반대로 걷는 지독한 연애의 표본을 보여주며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은 그 상처가 생겼을 당시의 고통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였고 그 상처를 어떻게 보담아 왔는지는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다. 상처가 다시 살이 되는 동안 겪었을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 속에서 형성된 '나'는 온 우주를 통틀어 나 자신만이 헤아릴 수 있다.

짧은 연애를 마쳤다는 나에게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뭐가 그렇게 어렵냐, 너는."

아흔이 되신 할머니께 구구절절 말할 수는 없었지만 예전보다는 한결 편한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이제 어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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