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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ee Jul 04. 2018

사우디는 왜 여성 운전을 허용했을까?

여성 운전 허용에 숨겨진 진실 & 현지 특별인터뷰




사우디 아라비아 여성들이 지난 6월 24일부터 운전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금지한 국가였죠. 그래서 여성들은 항상 차를 타면 남성이 운전하는 뒷좌석에 앉아야 했습니다.


다른 무슬림 나라들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었지만 사우디는 여성이 만약 운전을 하면 금지령 위반으로 체포당했는데요. 사우디 극우파는 여성이 운전을 하게 되면 성폭력에 노출된다는 이유를 들면서 여성 운전을 금지했습니다. 사우디는 매우 엄격한 보수 성향인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어 여성의 권익이나 외부 활동이 타국에 비해 더 제한됐었죠.


그래서 이번 여성 운전 허용은 이런 사우디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매우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운전을 제외하고도 올해 사우디에서는 상업영화 상영, 남녀 동반 근무 허가 등이 시행되면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잠깐 사우디 여성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지금 사우디 대학의 절반은 여성 학생인데 졸업 여성 중 약 13%만 취업을 한다고 합니다. 2000년쯤 사우디 여성 취업 비율이 5.5%에 그쳤습니다. 취업한 여성들 중 80% 이상은 대부분 교사, 간호사 등에 종사합니다. 여성들은 공학 법학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공계로는 취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사우디 여성들이 대거 해외로 유학을 떠나면서 금지됐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사우디 정부는 자국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여성도 금융이나 에너지 업에 진출하도록 조금씩 개방을 했고요.


사우디 여성 운전 허용에 대한 경제적인 이득은? 제공=아랍뉴스


이런 움직임 때문일까요? 왜 갑자기 사우디는 고집하던 여성 운전 금지령을 해제했을까요?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성장률 비교, 사우디는 파란색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타 중동국에 비해서도 저성장중인 사우디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여성 노동력을 확보하자는 전략입니다. 아랍뉴스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 여성 운전 허용으로 인해 사우디는 약 10조원의 경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여성 운전 허용에 대해 정부는 그간 업악받던 여성의 인권을 향상하려는 의도가 아닌 경제활성을 위해 여성의 노동력을 이용하자는 정부의 전략으로 보입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탈석유 시대를 대비해서 사회경제 개혁을 상징하는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비전 2030은 사우디가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첨단기술을 겸비한 투자허브로 도약하려는 정부의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돈으로 530조원을 쏟는다고 하는데요. 중동판 실리콘 밸리인 미래 신도시 '네옴'을 건설한다는 것이 주 목표입니다. 네옴 건설이 완료되면 사우디의 지정학적 조건 덕분에 전 세계 인구 70%가 8시간만에 이 도시에 올 수 있어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사우디 정부는 홍보하고 있습니다.



네옴이 만들어지면 노동력이 그만큼 많이 필요한텐데요. 이 때문에 사우디는 그동안 금기시했던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활성화해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입니다. 사우디의 주 수익원은 석유입니다. 석유 판매로만 정부 재정의 80% 정도를 채우고 있는데 석유매장량이 점점 줄어들자 사우디의 주 수입원은 없어지고 있는거죠. 이 뿐 아니라 전기차시대를 앞두고 전 세계는 친환경 에너지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석유의 수요가 떨어질수 밖에 없죠. 당장 나라의 경제가 위태해지고 있는 사우디는 앞으로 석유판매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경기를 더 탄탄하게 가져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해 사우디 정부는 비석유 부문법인을 2020년까지 민영화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민영화 규모만 110억달러(약 11조9000억원)에 달합니다. 민영화 계획이 완료되면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45%(2016년)에서 2030년에는 65%까지 늘어나게 되는 셈인데요.이 민영화된 법인에서 일할 인재들이 필요한 상황이죠. 남자로는 이를 채우기 힘들다 보니깐 여성 인력을 더 충원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우디의 ‘개혁’에 전 세계 언론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CNN방송은 사우디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현장을 보도하며 단거리에도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던 사우디 여성들이 제약에서 벗어나며 사우디의 노동력이 향상하게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는데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사우디 비전 2030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랍뉴스도 사우디 여성운전 합법화가 현재까지 이뤄진 사우디 비전 2030의 계획 가운데 ‘최고의 성과’라고 평가했습니다.


현재 사우디 여성 2000명 정도가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운전할 수 있는 연령대의 사우디 여성은 약 900만명 가운데 600만명 정도가 운전면허증을 딸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사우디 여성의 28% 즉시 운전면허를 취득하겠다고 답했고 54%가 조만간 운전면허를 취득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 통계를 보면 사우디 여성 운전이 허용되는 동시에 여성의 노동력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사우디 여성 운전 허용이 사우디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스스로 운전을 하게 되면서 거리가 있는 도시에 있는 일자리에 취직을 할수도 있고 이동성이 좋다 보니 여러 직업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여성 운전자가 대거 늘어나면서 사우디 내 자동차 회사도 여성 직원만을 배치한 대리점, 여성 전용 상담 전화를 개통하는 등 경쟁적으로 여성 운전자를 겨냥한 판촉에도 나섰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현대차 광고 : 아버지가 졸업한 딸에게 현대차 키를 선물하는 장면


잠깐 사우디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원유에 대해 알아볼까요?


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들과 산유량을 정하는데 사우디 역시 이를 토대로 하루 산유량을 정합니다. 유가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수요와 공급량으로 제한하자는 것입니다. 사우디의 원유 내수는 전체 물량의 30%를 차지합니다. 원유 내수 대부분 발전용으로 사용된다고 해요. 사우디가 신도시 건설 등 내수용으로 인한 필요한 원유가 점점 늘어나면서 사우디는 수출할 석유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사우디 정부는 각종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키라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우디는 지난해 예산안에서 유가를 배럴당 55달러로 산정했다고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유가는 30~40달러 사이를 오가며 하락했습니다. 이에 사우디는 외환보유고 27% 매각해 현금화했습니다. 2016년 말부터 유가는 점차 회복되고 있지만 지난해 사우디 예산은 수입 1840억 달러, 지출 2370억 달러로 적자만 53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블룸버그가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에 기반해 산출한 것을 보면 올해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한 OPEC 회원국은 사우디뿐 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탈석유시대'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우디의 이런 탈석유 정책에 발목을 잡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사우디 아라비아와 최대 200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 증산을 합의했다고 밝혔는데요.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해 유가가 계속 오르다보니 사우디를 압박한 것입니다. 앞으로 사우디가 이런 정치 싸움 속에서 어떻게 탈석유정책을 펼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번 칼럼부터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전 세계 이슈를 다룰 때 현지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Hyeree's 틱톡(Tic Talk)을 진행합니다. 외신이야기도 좋지만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선 그 곳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Hyeree's 틱톡: 박인식 벽산아라비아 법인장

Q. 사우디 여성들이 과거엔 운전을 하지도 못하고 조수석에도 타지 못한다고 하던데 정말 사실인가요?


사우디는 남녀유별이 유난합니다. 모든 음식점이 남자만 들어가는 Single section(싱글전용좌석)과 부녀 자가 들어가는 Family section(가족전용자리)가 따로 있습니다. 가족이나 여성을 동반할 경우에 한해 남자도 Family section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아닌 남자와 밀폐된 공간에서 나란히 앉는다는 건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아닌 사람이 운전하는데 옆자리인 조수석에 앉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가족은 무방합니다. 남편이 운전하고 곁에 아내가 앉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지요. 외국인의 경우에도 비록 무슬림이 아니라 해도 가족이 아니면 곁에 앉지 않습니다. 이를 어기면 단속 대상이 됩니다. 여기 외국인 거주증엔 가족의 경우 가장 이름이 거주증에 오르기 때문에 가족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지난달 말 여성 운전이 허용되고 난 후 현지 분위기는 어떠한가요? 여성 운전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나요?     

여성 운전이 허용되고 2주가 넘어가는데 제가 사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인구 600만, 전체 인구 3000만)에서는 보지도 못했고 봤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출퇴근길에 유심히 살펴보고 있지만 아직은 찾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한국 여성교민들도 엄두를 아직 못 내고 있고요. 다들 관망상태입니다. 뉴스들을 보니깐 현재 여성 운전 교습소가 많지 않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운전면허를 취득해서 운전을 하는 사우디 여성은 이미 외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한 경우가 대다수고요. 사우디에만 거주하던 여성이 면허를 취득해서 운전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여성 고객을 위한 자동차 업체나 서비스업체들의 마케팅이 현지에서도 눈에 띄게 보이나요?   

   

현재 사우디엔 여성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차량 마케팅 홍보는 상당합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여성이 필요한 운전용품을 선물로 주는 패키지를 개발했습니다. 신문에도 여성운전자를 주제로 하는 전면광고가 자주 나옵니다. 기사도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여성운전자를 보지는 못했다는거죠.

       

Q. 여성의 운전 허용을 기점으로 여성에게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우디의 석유매출이 감소함에 따라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우디가 여성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제한을 풀려는 것이 아닌지요?  


일단 사우디 경제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고 발전할 여지도 그렇게 크지 않아 보입니다. 여성이 경제 인구에 포함되는 건 그 중 큰 성장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 인구 중 30세 미만이 60%가 넘습니다.  앞으로 인구보너스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을 거라는 얘기지요. 젊은이들을 어떻게 경제인구에 합류시킬지가 사우디 당면한 과제 중 가장 큰 게 아닌가 합니다.                                                                                            


이곳 실업률이 10% 초반을 기록한다면서 보도되기도 합니다만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이곳엔 ‘사우디제이션’이라는 자국민 채용 쿼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직원으로 이름만 올라 있고 실제로는 일하지 않는 인원도 상당히 많습니다. 청년인력의 잠재력은 상당하나 누구도 험한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기술직이나 관리직을 감당할 능력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실질 실업률은 30% 정도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그런데 인력고용 측면에서는 여성이 훨씬 낫습니다. 교육수준이 오히려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학진학률) 업무숙련도도 높습니다. 실제로 대형마트 계산대의 경우에도 여성이 훨씬 빠릅니다. 그래서 이번 여성운전이 허용된 시점을 계기로 해서 여성취업이 촉진되고 그것이 성장 동력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Q.사우디의 재정수입의 70%가 원유로부터 나오는데 최근 원유로 인한 수익이 떨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내수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던데요?


현재 사우디 원유의 상당 부분이 발전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곳의 에너지 낭비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는 한여름인 지금도 긴팔 옷을 입고 다닙니다. 아니면 썰렁해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쇼핑몰도 그렇고 모든 곳에서 에어컨을 얼마나 세게 틀어놓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전력효율이 낮은 가전제품을 일제히 퇴출시킨 일이 있죠. 정부에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이곳 사람들의 생활습관은 제가 보기에는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유 상당 부분이 내수에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우디는 세계적으로 인구증가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하는 나라입니다. (연 2% 넘음) 이처럼 인구가 계속 늘어나니 전력 수요도 늘겠죠. 신도시 건설도 이유고요.  사우디는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고 수출할 원유 물량을 늘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원자력 발전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을 세계적인 규모로 추진하고는 있지만 아직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Q. 여성의 일자리가 늘어나면 그만큼 남성들의 기존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을까요?


 여성 진출로 남성 일자리가 위협받는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 외국인을 대체하는 상황입니다. 최근 몇 년간 상점에서 일하던 외국인 남성들이 급속하게 사우디 여성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여성 운전을 허용함에 따라 수많은 가정에서 채용했던 외국인 기사도 대체가 되겠지요. 기사가 없을 경우 여성 근로자들은 교통비로만 월급의 절반 이상 쓰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앞으로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를 큰 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지만 시일내에 이뤄지긴 힘들겁니다. 당장 전문직이나 기술직이 아닌 분야에서 외국인 남성 근로자를 대체하는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Special Thanks, 저 멀리 사우디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인식 법인장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법인장님의 페이스북 주소는 https://www.facebook.com/insik.park.5?ref=br_tf 입니다. 생생한 사우디 이야기에 관심있으시다면 추가해주세요.^^ 제 브런치도 공유 많이 해주세요.>



■참고 기사 및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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