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평범하고 소소한 곳에 머무는 거야
5시 45분, 알람이네. 때아닌 차가운 아침 기운이 느껴져 이불을 꼭 턱 밑까지 여미며 잠시 눈을 껌뻑 껌뻑거리다 벌떡 일어났다. 누웠던 자리의 이불을 툭툭 쳐서 밤 사이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이불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베개를 자리에 놓고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밤새 비가 왔는지 창밖 담장너머까지 걸쳐 있는 나무와 그 잎사귀가 촉촉이 젖어 있다. 아직까지 물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니, 비가 그친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다. 아 상쾌하네.
간단히 씻고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양복을 주섬 주섬 챙겨 입었다. 어제는 감색 양복을 입었으니 오늘은 회색양복을 입을까? 딥 블루칼라의 넥타이를 매면 잘 어울리겠다. 구두는 밤색 구두를 신고 벨트는 검은 벨트를 매고, 가방까지 주섬 주섬 챙겨 차고로 내려갔다. 2014년에 5천만 원인가를 주고 산 캐딜락이 오늘 아침 여전히 나를 반기네. 부우웅, 약간은 느린 반응이지만 우렁찬 시동소리가 좋네. 친구들은 전기차로 바꾸어 타는 트렌드인가 본데 나는 그냥 이 놈이 좋다. 오랜 친구 같기도 하고. 차고를 나와 골목을 돌아 큰길에 합류해 한 10분인가 갔나 보다. 맥도널드 드라이브인으로 들어가 오늘도 소시지 패티 2개, 소시지와 달걀 그리고 치즈가 들어가 있는 햄버거 한 개와 콜라 한잔을 받아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제부터 읽던 책이 오늘이면 다 읽을 것 같네. 요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세상이 시끄러운데 이 복잡한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관련 책 한 권을 읽고 있는데, 아무리 읽어도 이 책 저자의 논조가 특이하네. 이번 주 들어 3권째 책이니 이거 마치면 종류가 좀 다른 책으로 가야겠다. 지구 저 반대편에 있는 미얀마라는 곳이 궁금했는데 비서가 관련 책 한 권을 사다 놓았다고 했던 것 같다.
잠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어느새 5시간이 지났네. 배가 촐촐하다. 책상 옆에 높여있는 마시다 만 콜라를 다 비우고 전화를 걸었다. 헤이 친구, 뭐 하나? 안 바쁘면 간단하게 점심 같이 하고 브리지 한판 할까나? 그제는 자네가 한판승을 했으니 오늘은 내가 한번. 도전일세.
매일을 한결같이 지낸 시간이 어느덧 51년이네. 1972년에 시즈캔디를 인수한 이후로 벌써 51년이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참 행복하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내가 좀 답답해 보인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그냥 이 평범한 하루의 루틴이 반복되는 것이 너무 좋아. 행복해. 내 나이를 생각하면 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평범한 루틴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이 행복하다, 늘 평범한 루틴 속에서 내 자신을 깨우고 있으니.
94세의 나이에 전 세계 6번째로 많은 재산을 가진 갑부의 평범한 일상생활에 대한 단상이다. 매일의 루틴에서 얼마만큼의 행복을 느끼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단상. 나는 고민한다. 무엇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하면 다르게 살 수 있을지, 때로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얽매여서 나를 스스로 옥죄고 단죄하고 다짐하고 하면서 내 삶 속의 소소한 행복을 무시하지는 않는지. 너무 당연한 것을 너무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너무 당연한 것 속에 소중한 내 인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번에 둘째 딸아이가 간절히 바라던 인턴십 프로그램에 떨어지면서 낙심이 큰 모양이다. 초대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어쩌면 이런 불편함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내 생각보다 더 낙담하고 있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선뜻 건네기도 어려워서 괜찮다고 하고 지켜만 보는데, 마음이 짠하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도 그런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매일매일의 삶을 통해 이루어질 일들을 위해 소소한 루틴을 쌓아가는 일이, 혼자서 하루에 5시간 6시간씩 독서를 즐기며 세상에 대한 이해와 폭을 넓히는 일을 즐기며, 굳이 비싼 음식과 좋은 차를 몰지 않아도, 늘 살던 집에서 늘 타던 차를 타고 늘 들르는 곳에서 늘 먹는 음식과 함께 누리는 그 소소한 행복을 혹시 잊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삶은 그렇다. 꾸는 꿈은 늘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는데 우리는 늘 그 길 위에서 서성인다. 목표를 가는 과정에서도 서성인다. 서성이면서 우리의 삶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걱정들과 불안함을 곱씹으면서 내가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옷 입고 길을 나와 늘 먹던 음식으로 아침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세상을 이해하고 이해한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그리고 내. 주변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머물러 있음을 간과한다. 꿈을 꾸자. 그러면 그 꿈은 우리를 그 꿈으로 데려간다. 가는 와중에 즐기자 소소한 하루의 루틴도 우리에게는 즐겨야 할 행복의 소스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부터 분유를 먹는 모습에서, 몸을 뒤집어 배를 바닥에 대고 눕는 모습에서, 첫 발을 내디뎌 걸음을 걷는 모습에서, 슬링에 품고 가는 동안 잠들어 있는 그 아이를 보는 동안, 캐리어에 매면 씩씩거리며 흔들던 그 아이가 어느 날 걷고 뛰고 할 때에, 아침에 자는 아이를 깨어서 품에 안고 하루를 그리고 그 아이의 인생을 축복했던 그 시간들 가운데 내가 누린 즐거움과 행복을 생각하면 비교할 곳이 없다. 그래서 나는 둘째 딸의 성공을 응원하지 않는다. 그래야 내가 만들어 놓은 규칙에 내가 얽매여서 그 아이를 단죄하고 옥죄고 할 것 같지 않아서. 매일매일의 삶을 통해 이루어질 일을 생각하게 하고 늘 소소한 일상 속에서 꿈을 향해 가는 그 아이를 기대할 뿐이다. 행복을 찾아서 누려가는 동안 본인의 기준에 적합한 성공을 하고 있을 것이고 이루어져 가는 그 성공의 과정 또한 소중한 루틴, 행복의 소스가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롯이 둘째 딸의 행복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