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즐기면, 이 또한 '희망'을 향해 지나가리라!
오늘을 즐기면, 이 또한 '희망'을 향해 지나가리라!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많은 유럽 언어에는 '힘'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개씩 있다. 라틴어에는 potestas-potentia, 프랑스어에는 pouvoir-puissance, 스페인어에는 poder-potencia, 독일어에는 Macht-Vermogen 등이 있는 반면 영어에는 power 한 단어만 있다... 소문자 'power(활력)'와 대문자 'Power(권력)'로 구분... 수직적이고 중앙집중화된 지배권력, 자본주의 명령, 삶권력에는 '권력(Power/potestas)'이라 이름 붙이고, 저항의 수동적 과정, 산노동의 힘, 삶정치의 창조적 측면에는 '활력(power/potentia)'을 썼다."
- [Assembly](2017), '1-5 권력을 다르게 잡자',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라틴어는 문자로만 전해오는 '죽은 언어'다.
기원전 1세기경 지중해를 중심으로 뻗어나갔던 고대 로마제국의 문자로 '세계 공용어'였던 라틴어는 지금의 '영어'와 같이 강대국의 지배를 통해 널리 확산된 언어로서 '제국의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세기 미국의 패권을 표현했던 라틴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유래가 기원후 1~2세기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나타냈던 표어 '팍스 로마나(Pax Romana)'다. 즉, 제국의 힘으로 유지되는 세계 '평화(Pax)'라는 오만함이다.
언어로서 영어의 부모는 게르만어와 라틴어인데 라틴어는 영어의 엄마 격이다.
'다중'의 아래로부터 운동으로 '제국'에 저항하고 새로운 권력지형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최근 저작 [Assembly]에서 '권력'을 뜻하는 라틴어로 'potestas(포테스타스)'와 'potentia(포텐티아)' 두 개가 있는데, '포테스타스'는 물질적이고 수직적 '권력'이고 '포텐티아'는 잠재적이고 수평적 '활력'이라고 구분한다. 지배권력은 라틴어로 '포테스타스'이고 지배권력을 새롭게 구성할 '다중'의 '활력'은 '포텐티아'다. 영어로 '잠재력'인 'potential'의 어원이 라틴어 'potentia(포텐티아)'다.
"'카르페 디엠'은 원래 농사와 관련된 은유로서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시구입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 한동일 신부의 대학 강의록을 엮은 [라틴어 수업]은 라틴어 속담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인문학 이야기다. 유럽과 영미 등의 서양 언어에서 '로마제국'의 '라틴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제국'의 '한자(漢字)'와 위상이 비슷하니 [라틴어 수업]은 아시아식으로 보면 '고사성어(故事成語) 강의' 정도 되겠다.
언어는 역사적으로 다분히 정치경제적이고 사회적이다.
오래전 '죽은 언어' 라틴어는 이렇게 '살아 있다'.
우리에게 '오늘을 즐겨라'로 익히 알려진 '카르페 디엠'을 예로 들면, 이 문구는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하는데, '카르페(carpe)'는 '추수하다'는 뜻의 '카르포(carpo)'의 명령형으로 일년 동안 힘들여 지은 농작물을 '오늘 수확하라'는 말이다. 그간 고생했으니 내일 생각은 말고 오늘에 충실하라는 시구절이 쾌락주의 사조의 표제어로도 쓰이면서 '오늘을 즐겨라'로 의역되었다는 이야기다.
"신약성서 마태오복음 6장 34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Nolite ergo esse solliciti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e sufficit diei malitia sua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태오는... 기본적으로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믿음(신앙) 안에서 살아야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금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이 단순한 말 한 마디를 생각합니다.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마태오는 신앙이라는 '영원'을 믿었기에 하루하루를 버텼겠지만, 일반 '다중'에게는 기쁨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으며 '본래 얻고 잃는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이라는 [동국이상국집]의 이규보 선생이 말한 '부처님 말씀'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카톡 프로필 문구 등으로 많이 쓰이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에서 '지나가는' 'transibit'는 '변화'를 의미하는 'trans-'의 어원을 갖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과 그 축적으로서 인생은 계속 '변화'하니 오늘의 슬픔이 내일의 행복이 될 수 있다. 동양의 고사성어로 중국 전한시대 잡기록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와 비슷하다.
그러니 일희일비 말고 '평상심'으로 오늘을 보내자는 지혜의 말이다.
오늘을 버티는 힘은 '희망'이다.
'희망'은 라틴어로 '스페스(spes)'라는데 '기대하고 바란다'라는 뜻인 인도-유럽어 ''speh-s'에서 왔다고 한다. 반대로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무너지는 순간 '절망'이 찾아오는데, '희망이 거두어진 것'이라는 라틴어 단어는 '데스페라티오(desperatio)'라고 한다. 영어로 '자포자기 또는 필사적 상태(desperation)'의 어원이다.
'절망'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희망'을 향해 '지나가는(transibit)' 것이 지혜로운 인생철학이며, 이것이 바로 '변증법(辨證法/dialectic)'이다.
'변증법(dialectic)'의 라틴어원 'dia-'는 '서로 통한다'는 의미의 접두어다.
이렇게 '반대말'도 서로 통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달프고 힘들어 내일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동안의 노력을 '추수(carpe)'하는 오늘을 즐기고, 그 오늘이 별로였더라도 '지나가는(transibit)' 시간의 한 때로 담담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혜의 구절들을 소개한 후 한동일 신부는 [라틴어 강의]를 '삶'과 '희망'으로 맺는다.
"라틴어 명구에도 희망과 관련된 것들이 참 많아요.
Dum vita est, spes est,
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Dum spiro, spero.
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Dum vivimus, speramus.
둠 비비무스, 스페라무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희망한다."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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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2. [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