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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y 24. 2020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외 - 정도전

진정한 혁명가 정도전은 '유물론'자다

진정한 혁명가 정도전은 '유물론'자다
-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주역]에,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니, 무엇으로 위를 지킬 것인가? 바로 인(仁)이다.'...
인군(人君)의 위(位)는 높기로 말하면 지극히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매우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수없이 많은데,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민(下民)은 지극히 나약하나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으나 지혜로써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게 되고, 그들은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스럽게 얻는 것도 아니요, 도를 어기고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으로써 가능하다."
-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보위를 바룸(正寶位)>, 정도전, 1394.


고려왕조를 멸하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무리는 '유학(성리학)'을 지도사상으로 한 고려말 신흥사대부 중 '급진파'의 이념과 중앙에서 배제된 변방 무인세력의 무력의 결합이었다. 인물로 말하면, 정도전의 '머리'와 이성계의 '주먹'으로 이룬 혁명이었다.
고려말 대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던 목은 이색의 신흥사대부 사학 제자 중 정몽주는 온건개혁파였고 그 '운동권' 동아리 '동심회'의 4년 후배였던 정도전은 급진개혁파였는데, 이성계의 무력을 얻은 급진개혁파가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혁명의 길로 치닫는다.

조선 개국 2년 후인 1394년, 삼봉 정도전은 새 국가를 운영하는 '법전'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다. 오늘로 치면 '헌법'에 해당하는 문건으로 후세인 성종대에 이르러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집대성되는 조선의 '법률초안'이다. [조선경국전]은 '이-호-예-병-형-공'의 중국 국가기구의 뼈대인 '육조(六曹)' 또는 '육전(六典)'을 정리하여 '국가조직을 짠다(經國)'는 국가운영 기획서이기도 했다. 유학의 시조 공자가 '이상적 시대'로 삼았던 중국 주나라의 [주례(周禮)]로부터 유래하는 '육전(六典)'은 '치(治)전', '교(敎)전', '예(禮)전', '정(政)전', '형(刑)전', '사(事)전'으로 각각 '이-호-예-병-형-공'을 의미한다. [조선경국전]은 각 공무조직의 틀과 업무 범위를 세세하게 규정하면서 중국과 고려의 역사를 함께 인용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첫 장에 서술되는 '인사관리'의 '이(吏)조'에 해당하는 '치전(治典)'이며 주인공은 이를 총괄하는 '총재(冢宰)'다.

정도전이 설계한 '이상국가' 조선은 '천명'을 받은 군주를 앞세워 '유학(儒學)'의 군자가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세상이었다. [조선경국전]에서 '천명'을 받은 군주는 '인군(人君)' 또는 '인주(人主)'이며, 실질적 국가 운영자인 '성인군자'는 바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재상(宰相)'이다.

'경영(經營)'이란 '조직의 틀을 짜는 것(經)'과 '인력을 운용하는 것(營)'의 조화를 뜻하는데, 이로써 '육전'의 최고는 '인사관리'의 '치전'이며 '재상' 중의 '재상'은 '치전'의 대표인 '총재'인 것이다.


"총재(冢宰)라는 것은 위로 군부를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큰 것이다. 또 인주(人主)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총재는 인주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대중(大中:중용의 큰 도리)'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相)'이라 하나니, 즉 '보상(輔相: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림)'한다는 뜻이다. 백관은 제각기 직책이 다르고 만민은 제각기 직업이 다르니, 재상은 공평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자 그 처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재(宰)'라 하나니, 즉 '재제(宰制:전권을 휘두름)'한다는 뜻이다."
- [조선경국전], <치전>, 정도전, 1394.


'치전'의 '총재'가 바로 '재상(宰相)'인 바, '전권을 휘두르며(宰)' '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고 다스리는(相)' 직위이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인데 국가운영의 하나하나를 소홀함 없이 다 알아야 하고 챙겨야 하는 중책이다. 사람이 이를 혼자 다 할 수는 없으므로 여러 인재를 선별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관리'가 제일 중요하니 '치전'의 '총재'가 조선의 '재상'이 되는 것이다. 재상은 아니나 먼훗날 조선 당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간관을 임명하는 정5~6품 '이조전랑'의 요직의 발령이 된 이유도 그 연장선상 아니겠는가.

'이상국가' 조선을 운영하는데 핵심은 이러한 성인군자 반열의 '재상'과 바른 말 하고 감사하며 비위자를 탄핵하는 '대간(臺諫:대관과 간관)'이었으니, 당시의 '유일한 정치체제'였던 '세습군주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대쪽같은 '성리학(주자의 유학사상)' 이념으로 무장한 비타협적 사대부 관료들과 그들에 의해 조직된 국가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위로는 음양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서민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며, 안으로는 백성을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하고 무마하는 것이니, 국가의 작록과 포상과 형벌이 이에 관련이 있고 천하의 정치와 덕화, 가르침과 명령이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 전폐 아래에서 치도를 논하여 일인(군왕)을 돕고 묘당의 위에 서서 도견(성인의 정사)을 잡아 만물을 주재하니, 그의 직임이 어찌 가볍겠는가? 국가의 치란과 천하의 안위가 항상 이에서 비롯될 것이니 진실로 그 사람(재상)을 가볍게 고르지 못할 것이다."
- [경제문감(經濟文鑑)], <재상의 직>, 정도전, 1395.


정도전은 조선의 '헌법전'인 [조선경국전]에 이어, '재상'과 '대간(대관과 간관)'의 임무와 역할을 역시 성리학 사상에 기반하여 규정하는 '공무원 복무규정'으로서 [경제문감(經濟文鑑)]을 저술하는데 이 책은 우선 '육전'의 구성을 간략히 정리한 후, 중국 역사상 각 왕조와 고려 및 새 국가 조선에서 '재상'의 형태들을 일별하면서 위와 같은 '재상의 직'에 이어 '재상의 업'은 '자기 몸을 바르게 한다', '임금을 바르게 한다', '인재를 잘 안다',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 '임금을 이끌어 도에 도달하게 한다' 등의 47개조 항목을 들고 있다. 역시 대관과 간관도 같은 형식으로 서술한다.
또한, [경제문감]의 <별집>을 따로 지어 중국 역대 왕들과 고려의 역대 임금들에 대한 간략한 '평론'을 하고 있는데, 정도전이 인정하는 '유학 군자'로서 훌륭한 '재상'은 '주공 단'은 물론 한나라 소하와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량 등이며, 한편으로 꼽는 뛰어난 인군은 은탕, 주무왕, 한고조 유방, 당태종 이세민, 송태조 조광윤, 고려태조 왕건 등이 있다.
물론, 중국 역사에 대한 사대주의 풍조가 주를 이루고, 지배계급의 틀에서의 혁신을 논하기에 역사속 '농민혁명'과 왕안석 '신법' 등을 폄하하고 있음은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도전의 '혁명'은 단순한 왕조 교체로서 '역성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진보적이었던 사상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고자 했던 진정한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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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에서든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지도자의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착한 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밝혀라.
둘째,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라.
셋째, 자신의 착한 마음의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과 어울리며, 조화로운 사회관계를 일상에서 지속하라.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 [대학(大學)], <경문 1-1>


조선의 '건국이념'으로서 '성리학' 춘추시대 공자로부터 시작한 '유학' 북송시대 주돈이나 남송시대 주희(주자) 철학적 '이기론(理氣論)'으로 정리한 사상으로 종교와 같은 반열의 '유교' 되는데, 정도전이 말한 '군자' 유교의 '4'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완벽하게 체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의 역사는 물론 [논어]에서 말한 공자의 '()' [맹자] '()' 정치를 아우르고 [중용] 치우침 없는 '불편부당' 지도자(어른) 갖추어야  학문적 소양을 가리키는 [대학] 등에 통달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통틀어 아시아, 아니 전세계 역사 속에서 정도전에 이르러 비로서 [대학] '3강령 8조목' 현실에서 '혁명'적으로 실현된다. 공자의 '애민(愛民)정치' 맹자의 '여민(與民)정치' 기반으로 [대학] '3강령(明明德-親民-止於至善)'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관념' 아닌 현실정치에서 실현했던 유일한 시도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도 삼봉 정도전은 일체의 '관념론' 거부한 '유물론'자였던 것이다.


"()씨의 ()... 저들 스스로가 () 부리기는 하되 물에게 부림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일   푼을 주어도  그것을 어찌할  모른다면  일이 이상하지 않는가? 그런즉 하늘이  사람을 내어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고, 재성(財成), 보상(輔相) 직책을  이유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요컨대 우리(유학) 마음과 이치가 하나라고  것이요, 저들(불교) 마음이 ()함으로써 이치도 없다고 보았고, 우리는 마음이 비록 공하나 만물의 이치를 갖추고 있다고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우리 유가는 하나이고 석씨는 둘이며, 우리 유가는 연속이고 석씨는 간단(間斷:끊어짐) 것이다."
- [불씨잡변(佛氏雜辨)], <14. 유교와 불교가 같은 , 다른 점에 대한 >, 정도전, 1398.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이념' 성리학을 정치사상으로 실현함과 동시에 '철학' 이데올로기로 굳건히 하기 위해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불교' 사상 논쟁을 전개하는데,  다분히 '논쟁적 저작' 바로 [불씨잡변(佛氏雜辨)]이다. '성리학' '이기론(理氣論)' '하늘의 이치' '()' '인간의 실천' '()' 하나라는 '일원론' 주장을 통해 불교에서 속세와 내세를 구분하는 '이원론' 통렬히 논박한다.
민중의 '물질적' 욕구와 토지제도 개혁과 같은 '경제민주화' 등한시한  내세를 향한 '수양' '깨달음' 앞세워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정하게 부를 축적하는 당시 지배종교로서의 불교를 '불씨', '석씨(석가모니)' 칭하며 비판과 논박을 하고 있다. 마치 5~6백년  유럽의 혁명가 엥겔스의 [반뒤링론]이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못지 않다.
'혁명가' 정도전에 의해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 불교의 '윤회론', '인과론', '지옥론', '자비론' 등의 19 논제가 처절하게 짓밟힌다.
불교와 유교의 가장  차이는 '이원론' '일원론'이고 '관념론' '유물론'이다. 마치   이전 플라톤의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 차이와 비슷하기도 하다.
불교의 '내세' '관념론' 대비되는 유학의 '현실' '유물론' 역시 '4 5'  하나인 [주역(역경)] '과학'(또는 '음양오행설') 의해 천태만상으로 변화발전하는 객관적 세계를 토대로 한다.


물론,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다수 민중을 위한 현실정치와 격리된 '유교'로서 성리학은 '관념론' 길을 갔으나, 조선의 건국 이데올로기로서의 초기 '유학' 이념과 현실을 '일원론'으로 파악한 '유물론' 성격이 다분했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불세출의 혁명가 삼봉 정도전 선생을 감히 나는 '유물론자' 부른다.


***

1.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2. [사서(四書) - 이치를 담은  권의 (대학/논어/맹자/중용)], 신창호 편역, <나무발전소>, 2018.

3.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푸른역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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