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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Sep 20. 2020

옛생각을 끊어야지...

- [태사공자서] / [015B] / [무한궤도] / [푸른 하늘]



"그로부터 7년 뒤 태사공(사마천)은 '이릉의 화'를 당하여 감옥에 갇혔다. 나(사마천)는 '이것이 내 죄란 말인가! 이것이 내 죄란 말인가! 몸은 망가져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구나!' 하며 깊이깊이 탄식하였다. 그러나 물러나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깊이 생각하여 보았다.
[시](시경)나 [서](서경)의 뜻이 함축적인 것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표출하고 싶어서였다. (주나라) 문왕은 갇힌 상태에서 [주역]을 풀이하였고, (춘추시대) 공자는 곤경에 빠져 [춘추]를 지었다. (초나라) 굴원은 쫓겨나서 [이소]를 썼고, (노나라) 좌구명은 눈을 잃은 뒤에 [국어]를 지었다. (제나라) 손빈은 발이 잘리는 빈각을 당하고도 [병법]을 남겼으며, (진나라) 여불위는 촉으로 쫓겨났지만 세상에 [여람(여씨춘추)]을 남겼다. (한나라) 한비는 진나라에 갇혀서 [세난]과 [고분] 편을 저술하였다. [시경] 300편의 시들도 대개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에 그 무엇이 맺혀 있었지만 그것을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일을 서술하여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볼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요 임금에서 획린에 이르는 긴 역사를 서술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황제부터다."
- 사마천, [사기], '권130 태사공자서', / 김영수 옮김, <알마>, 2010.





기원전 1세기에 중국사의 '족보'를 [사기(史記)] 130권으로 처음 작성한 사마천(司馬遷)은 한무제 당시 상대부 호수라는 사람과의 문답형식을 통해 본인이 아버지 사마담을 이어 '긴 역사'로서의 '대(大)역사(빅 히스토리)' 서술을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사기]의 <서문>격인 이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는 <본기> 12권, <표> 10권, <서> 8권, <세가> 30권, <열전> 69권에 이어 마지막 130번째 권인 <태사공자서>를 통해 '태사공(太史公)' 사마(司馬)씨의 유래와 천문과 역술을 너머 역사 서술을 가업으로 삼은 배경을 밝히고 '백가쟁명'의 유가, 법가, 묵가, 명가, 도가, 음양가 등을 일별하면서 상대부의 질문에 춘추시대 공자로부터 전국시대 한비자까지 이르는 '역사서술'의 그 '역사적' 이유를 스스로 논한다.
문답형식을 빌지만, 굳이 '스스로' 논하고 있어 '자서(自序)'이며 모름지기 [사기]의 <서문>이다.

'획린(獲麟)이란 기원전 481년 춘추시대 노나라 애공이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잡은 일인데, 당시 역사서 [춘추]를 쓰고 있던 공자는 '성인군자'가 나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신비로운 동물'이 잡힌 상황을 상서롭지 못하다 여겨 [춘추(春秋)] 저술을 중단했다.
흉노에 중과부적으로 맞서다가 항복한 한나라 장수 이릉을 변호하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사기] 저술을 이유로 자존심을 꺾고 궁형을 받은 '이릉의 화(이릉지화/李陵之禍)'를 겪은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하면서 던진 화두는 "과연 하늘의 도는 무엇인가?"였다. 한무제의 절대권력을 중심으로 이때다 싶어 반대파 이릉을 헐뜯고 비난하면서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려던 정치모리배들과 소인배들은 [사기]를 통해 인류 역사서술에 크게 기여하게 될 사마천을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으며, 그러거나 말거나 절대독재자 한무제는 '기린'을 잡아 '성인군자'가 되려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사마천의 눈에 비친 한무제 대의 당시는 공자가 붓을 꺾던 '획린'의 시대였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역사'를 기술했고 인류의 역사서술에서 큰 '기린'이 되었다.




한편,
인류의 역사고 뭐고,
중년이 꺾어지고 또 꺾어지는 이 가을에,
오랫만에 듣게 된 내 어릴적 대중가요를 기화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부질없고 찌질한 내 옛 시절이 자꾸자꾸 떠올라 끊었던 담배를 사러 그 새벽에 기어이 뛰쳐나가고야 말았다.


1. 'Santa Fe' - [015B] 3집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효종이와 우리집 반지하 방에서 함께 살았다.
등교 10분 거리라 같이 거의 지각하면서.

대입이 끝난 후 효종이는 구리 돌다리 사촌누나 집으로 홀연히 떠났고,
나는 내 '서정의 기원' [015B]의 '세번째 물결' 뒷면 첫곡 'Santa Fe'를 들으며 망우리 공동묘지를 넘어 친구를 찾아갔다.

형들이 많아 조숙했던 효종이는 '비틀즈' 밖에 모르던 내게 '팝송'이 뭔지 가르쳐주었고, '개그욕심'을 일깨워 주고는 기약없이 떠난 터였다.

그렇게 다가올 스무살에는 오로지 나 혼자 '개그'를 해야했다.

(이문동에서 마지막까지 살던 옛집과 골목)


이 곡을 떠올리면,
92년 말 93년 초 그 겨울길과,
새로 시작될 우리들의 불안한 청춘과,
겨울입김을 담아 내뿜던 담배연기에 실린 우리들의 농담이 짙게 배어온다.

https://m.youtube.com/watch?v=j5qg9w51qqA


2. '여름 이야기' - [무한궤도] 1집



"잊어버렸던 첫사랑의
설레임과 떨려오는
기쁨에 다시 눈을 감으면
너는 다시 내곁에 예쁜
추억으로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드네~"
- '여름 이야기', [무한궤도] 1집, 1989.

고등학교 때 친구 철호네 집에서 처음 알게 된 [무한궤도] 1집 '여름 이야기'를 들으면,

동대문구 이문동 영남수퍼 앞 횡단보도와 그곳에 서 있는 여자아이가 왠지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혼자 좋아했던 오미나랑 고등학교 때까지도 우연히 마주치면 뒷모습까지 계속 눈으로 쫓던 김화영이 생각난다.

물론,
찌질하고 못생겼던 나는 말 한마디 붙여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무한궤도]의 '여름 이야기'를 흥얼거리면, 그 여학생은 "예쁘게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들었다."

(나의 모교, 청량국민학교도 상전벽해~)


아울러,
내게 [무한궤도] 뿐만 아니라 너무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면서 초딩때부터 줄곧 붙어다녔던 내 오랜 친구 철호가 늘 건강하게 나랑 오래오래 붙어서 놀아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https://m.youtube.com/watch?v=Edh3PKj5u6A


3. '눈물나는 날에는' - [푸른 하늘] 2집



"나에게 올 많은 시간들을
이제는 후회없이 보내리
어두웠던 지난날을 소리쳐 부르네
아름다운 나의 날을 위하여~"
- '눈물나는 날에는', [푸른 하늘] 2집, 1989.

중학교 때는 큰 누나가 이선희, 셋째 누나가 전영록에 빠져 카세트 테이프를 사댔는데 나는 레코드점 한 번 못 가봤다.
그 때는 '좀 놀아보이던' 키 큰 친구 민상이가 멀리서 놀자고 불러도 삥뜯길까봐 도망가던 내 인생의 '중세 암흑기'였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 내 인생은 '근세'에 접어들었는데, 친구들 생일선물 사려고 레코점을 몇 번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생일이 세 개나 되던 민상이로부터 '푸른 하늘'과 '윤상'을 알게 되었다. 특히 [푸른 하늘] 테이프는 민상이에게 한 번 빌리면 반납 안하고 '존버'하다가 수차례 독촉을 받고 거의 절교 전 결국 테이프 다 늘어진 다음에 돌려줬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달동네'는 흔적없이...)


1981년에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던 '이오사' 높은 구석집과 여인숙 단칸방에서, 일요일 아침 KBS에서 하던 [디즈니]와 MBC '명작만화'를 누나들과 옹기종기 보던 어린시절도 흐리게 떠오른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마 그 여인숙에서 잠깐 본 것 아니었을까.

(친구의 옛집과 함께가던 오락실 옛터)


아무튼,
가세가 펴본 적이 없던 어린 나와 민상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꼭 남들처럼 풍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https://m.youtube.com/watch?v=0HqVADjk_Mg


4. ...
담배를 안 피우려면,
옛생각을 먼저 끊을 일이다.


(나의 모교2~3, 경희중고와 오래된 우리들 등교길)



***

1. [사기(史記)], 사마천(司馬遷) / 김영수 옮김, <알마>, 2010. /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2011.
2. [015B] 3집, <The Third Wave>, 1992.
3. [무한궤도(無限軌道)] 1집, 1989.
3. [푸른 하늘] 2집,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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