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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Sep 06. 2020

[015B]를 듣는 시간 : 1990 ~ 1993.

'추억'은 돌아오지 않는 무한반복 리플레이

'추억'은 돌아오지 않는 무한반복 리플레이
- [015B]를 듣는 시간 : 1990 ~ 199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아픈 가슴 감추며 살아가지만~
한번씩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떨리는 마음
그대이길 바라며 수화길 들지~"
- [015B] 2집, 'Second Episode', <떠나간 후에>, 1991.



고등학교 3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 후 학교 쉬는 시간은 온통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로 뒤덮였고, 학력고사 전 백일주 마실 때 야밤에 우리 철봉파는 학교 철봉대 밑에서 김종서 노래를 고성방가하다가 대학생 규찰대 형들한테 검도부 죽도로 얻어맞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을 지배한 건 단연, [015B]였다.

1988년 대학가요제 금상을 받은 <그대에게>는 신해철의 '데뷔곡'인데, 그가 속한 [무한궤도]는 이듬해 공식 1집 앨범을 낸다. 2006년생인 우리 아들도 아는 불후의 명곡 <그대에게>와 내가 좋아하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가 대표곡인 1집의 [무한궤도]는 대학가요제 출전 당시의 5인이 아니라 한 명이 충원된 6인이다. 피아노 치는 서울대 컴퓨터공대생 '정석원'이 추가된 거다. 정석원은 대학가요제 출전 멤버는 아니나 가수보다는 다른 길을 선택한 다른 멤버들과 달리 음악을 본업으로 하면서 일년 후 [015B]로 [무한궤도]를 잇는다. 원래부터 연예인이 꿈이었을 신해철은 이미 솔로로 독립하여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들에게 '보컬'은 그룹의 대표이자 전부였다. 원래 김종서가 '보컬'을 했던 락그룹 [시나위]든 이승철이 노래했던 [부활]이든 보컬은 자주 바뀌었는데 [015B]는 아예 '객원보컬'을 운영하는 본격 '프로듀싱 그룹'의 시초가 된다.



정석원은 신해철이 강변가요제에 출전할 때 역시 예선탈락한 다른 팀이었던 서울대생 밴드에서 건반을 치던 동갑내기 그를 보고 일본만화 [바벨 2세]의 악당 '요미'를 닮은 '신비주의' 능력자를 떠올리며 [무한궤도] 공식앨범에 합류시켰다고 한다. 1974년생인 내게는 '철인28호'식의 로봇만화로 기억되는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바벨 2세]를 나보다 앞세대 형인 1968년생 신해철은 좀더 진지하게 읽었던 것 같다. 정석원에게서 자신과 같은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고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음악의 '신비'롭고 영적인 힘 같은 것을 떠올렸을까. 일본 전후 극우 성향의 만화가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바벨 2세]에서 그리고자 한 고대로부터 내려온 '신성(神聖)'은 아마도 군국주의 천황의 '신성(神性)'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정석원의 [015B]는 '빈 하늘에 까마귀 한 마리 날다'라는 [空一烏飛]라는 뜻을 당시 숫자와 알파벳으로 암호처럼 사용한 작명인데, 십대 후반 우리들은 [무한궤도(無限軌道)] 멤버 중 둘이 주축으로 만든 [015B]의 '0'은 '無', '1'의 '하나'는 한'과 같은 음, '5B'는 '軌道'를 뜻하는 영어 'orbit'으로 알고 있었다. 한참 후 방송이나 언론 노출 없는 '신비주의' 프로듀서인 [015B]의 정석원도 어느 인터뷰에서 작명에 관한 그 소문이 맞다고 인정했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팬인 우리에게는 오래전부터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소문이 먼저인지 사실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닌 우리들은 <그대에게> 세대도, [무한궤도] 세대도 아니었지만, [015B] 세대였다. 원래 음악을 좋아했던 친구들은 몰라도 비틀즈나 가끔 '머리로' 듣거나 2층 창가에서 저녁 6시부터 잠시 라디오를 듣고는 했던 나와 내 친구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015B] 2집 카세트 테잎으로 처음 접했다.

[015B] 2집, 'Second Episode' 중 내가 제일 좋아한 곡은 나보다 한 살 많은 객원보컬 이장우의 <떠나간 후에>다.




"짙은 눈물 흘리며 떠나보낸 네가 그리워~
쏟아지는 비 맞으며 너의 집앞에 또 다시 기다리지만~
골목 저편에 너의 모습 보일 때 쯤이면
가슴이 떨려 숨어버리지~"
- [015B] 3집, 'The Third Wave', <널 기다리며>, 1992.


고 3때 [015B]는 '세번째 물결(The Third Wave)'로 다시 등장했다. 대표곡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인기가 좋았지만, 내게 3집 하면 떠오르는 건 B면을 시작하는 연주곡 'Santa Fe'다. 외국의 케니 지(Kenny G.)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연주곡을 나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프로듀싱 그룹' [015B]의 '진보성'을 표현하는 한 사례로 기억한다. 이렇게 정석원은 자신들의 앨범에 '물결(3집)'과 '운동(4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1990년대 한국 대중가요를 선도하고자 했다.

마지막 학력고사가 끝나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망우리고개 넘어 친구집을 찾아가던 겨울, 돈은 없지만 술집에서 대놓고 술을 시켜 마실 수 있었던 친구들과의 수많았던 밤, 담배연기와 함께 찾아올 우리의 스무살과 일상를 채운 농담들, 그 시절에는 항상 [015B]가 불쑥불쑥 끼어들곤 했다. 아직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1974년생 우리들 연애의 '가상현실'은 90년대 '감수성'을 주도한 68년생 정석원 형님이 앞서서 선도적으로 이끌어 주셨다.
나는 음악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80년대 미국의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뉴 웨이브(New Wave)' 음악이 대중음악을 현대화했다면, 90년대 우리식 '프로그레시브(진보성)'와 '뉴 웨이브(새물결)'는 [015B]가 선도했다고 생각한다. 신해철의 [N.E.X.T]보다 더 '순수'한 모습으로 '연예'가 아닌 '음악'을 만들었고, 이후 이승환이나 [토이]의 유희열 같은 '프로듀싱 그룹'의 모태였다고 본다.

[015B] 3집, 'The Third Wave'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곡은 역시 객원보컬 이장우의 <널 기다리며>다.




"어디선가 듣고는 있니
너만을 위해 불러왔던 나의 그 노래들을~
어떨까, 너의 기분은 정말 미안해
어쩌면 나처럼 울고 있겠지~"
- [015B] 4집, 'The Fourth Movement',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 1993.


대학교에서는 노래방을 거의 가지 않았다. 역시 돈도 없었지만 차라리 그 돈으로 소주를 더 마시며 사회체제에 대해 논쟁을 더 해대려고 했는데 지나고 보면 새로운 선후배와 친구들을 사귀는 나의 편한 방식이었던 것 같지만, 당시의 이유는 노래방에는 '민중가요'가 없다는 거였다.
택시비가 없어 하루걸러 한 번 집에 들어오던 주중 생활이 끝나면 용돈을 더 타서 주말에는 고등학교 '철봉파'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고 매월 셋째주 토요일 '철봉파' 정기모임 때는 꼭 노래방을 찾았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민중가요'를 부를 수 없었으니 당시 노래방에서는 마음놓고 [015B]를 불러댔다. 거의 항상 '광란의 끝' 1분 정도 남긴 마지막은 친구가 부르던 노래를 강제로 끄고 [015B] 2집의 마지막 곡 <이젠 안녕>을 열댓명 친구들과 돌아가며 불렀다. 아마도 한세대 전 선배들이 나이트에서 퇴청하며 들었을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의 정확한 90년대 버전이었을 거다.

이제 우리들 스무살때, [015B]는 4집으로 '네번째 운동(The Fourth Movement)'을 전개했고,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그들의 '운동'은 90년대 음악 정서가 적어도 이후 최소 20년 정도는 영향을 끼치게끔 했다. 미국의 80년대 '프로그레시브'나 '뉴 웨이브'는 어떨지 몰라도 1990년에 나온 [015B]의 '진보'적인 음악은 20년이 지난 2010년에 들어도 촌스럽지 않았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랬다.
하긴 나는 음악의 '진보성'을 논하기엔 '똥귀'에다가 40대 중년 이후로 노래방에서는 80년대 '발라드', 변진섭의 <너무 늦었잖아요>를 가장 많이 부른다. 변진섭이 뜰 때 나는 초딩이라 세대에 맞지 않음에도 직장 동료들이 한 곡 하라고 하면 그 노래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참고로 다수의 철봉파 친구들은 이제 대거 '트로트'로 넘어갔다.

아무튼,
스무살 '광란의 노래방'에서 되도않는 '락발라드'로 목이 쉬고, 얼토당토 않는 '댄스'로 지쳤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불렀고, [015B] '4번째 음악운동'에서 제일 좋아한 노래는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였는데, 이 역시 이장우 형님이 불러주셨고, 이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 시절 나는 실제로 연애도 했고 미칠 듯한 '사랑'도 해봤다.

이십대,
어설프고 미안하며 빛나면서도 슬펐던 내 연애의 저변에도 역시 [015B]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 시절의 파랗던 꿈을~"
- [무한궤도] 1집,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1989.


사람들은 모두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생각할게다. 1990년대에 이십대를 보낸 내게 '대중음악'은 90년대 대중가요와 등치된다.

고등학교 1학년, 어린시절 동안 유일하게 집같은 집에서 살 때, 2층 내 방 창문에서 지는 저녁노을을 보며 라디오를 들으려고 '야자(야간자율학습)'를 제꼈고, 고 2때부터 형용모순의 대명사 '강제 야자(강제적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해가 지고 별이 뜰 때면 어두워진 창문을 보며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무시로 떠올렸다.
스무살을 앞두고 친구들한테 담배와 술을 배우면서 우리들의 젊은 날을 시시한 농담처럼 이야기할 때는 [015B]의 서정이 늘 함께했다. 주중에는 '민중가요'를 부르며 '체제변혁'를 부르짖고 주말에는 노래방에서 '자본주의 첨병' [015B]를 불러제낀 나는 아마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같은 386세대를 쉽게 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이들며 21세기 '대중가요'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기도 했고, 왔다리갔다리 이십대를 반성하면서 나는 삶의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깨닫기도 했고, 그렇게 저렇게 내게 '대중가요'는 [015B]가 끝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고등학교 '철봉파' 친구들, 일년에 '송년회' 한 번 하고자 만나는 대학 친구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떠오르는 우리들 '젊은날의 초상'과 어김없이 뒤따라오는 나의 [015B].
그러나 막상 만나면 그 시절의 우리는 온데간데 없고, 중년의 아저씨들만이 둘러앉아 내게 현실을 일깨워준다.

그렇게 "내 소년 시절의 파랗던 꿈"과 등이 푸르던 젊은날의 '추억'은 돌아오지 않는 흐릿한 영상과 카세트 테잎 음향으로 무한반복 리플레이된다.

***

1. [015B] 2집, 'Second Episode', 1991.
2. [015B] 3집, 'The Third Wave', 1992.
3. [015B] 4집, 'The Fourth Movement', 1993.
4. [무한궤도] 1집,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1989.
5. [바벨 2세], 요코야마 미쓰테루,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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