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같지만, 부끄럽기도.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 - 2020.10.25.
- 만화같지만, 부끄럽기도.
"Because We are Great!"
( 이 무슨 '범죄와의 전쟁'도 아니고. ㅍㅎ )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청산' 등으로 지지율 기반을 다진 정치권력은 1995년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화"를 내걸었다. 그들의 슬로건 '세계화'는 우리도 이제 세계 '금융자본주의' 대열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선언이었고, 한편으로는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정글에서 국민들은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가진자들의 선포였다. 국제금융위기 'IMF 신탁통치'는 우연히 온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여전히 다수를 지배하고 있는 소수인 그들의 본질이다.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 개봉 전, 출근길에 버스 옆에 붙은 광고를 보고 "저 영화 무조건 보자!" 생각한 건 위와 같은 얘기를 담고 있을 거라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결론은,
만화처럼 유쾌하고 통쾌하다.
그러나 내게는,
다른 사람의 일을 하며 월급을 받는 회사원인 나를 돌아보면 부끄럽기도 하다.
( '문화혁명'은 재앙이었으나, '조반유리'는 진리다. )
'조반유리(造反有理)'.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뚱의 삶을 읽다가 인상깊게 남은 명제 중 하나다.
물론, 인민에게 재앙적이었던 '문화혁명'의 선동 이데올로기라 현실적으로 반가운 문구일 수는 없다.
나는 다만,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는 원래 의미만 취할 뿐이다.
영화의 내용은 직접 보면 알테고, 모든 '반란의 이유'는 '차별'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고, 1990년대 '세계화' 초기까지 대기업으로 대변되는 우리사회 뿌리깊은 '차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는 예상은 맞았으되 이야기 전개와 결말은 내 예상보다 스케일이 훨씬 커서 속으로 놀랐다.
솔직히,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하였으나 승진를 위해 업무와 무관한 '영어토익반'으로 집합당한 직장내 가장 차별받는 직원들이 조금씩 직장내 민주주의를 쟁취해 나가는 '미완'의 결말을 예상한 나의 순진함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힘없는' 직장인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내부고발'과 '고용안정 투쟁'을 그런 방식으로 그려낼지 예상 못한 '현실의 벽'에 갇힌 나 자신이 또한 부끄럽기도 했다.
억지로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한편의 '일본 만화영화'를 본 듯한 느낌.
극중 '악당'에게 영어로 "우리는 위대하니까(Because we are great)!"라고 외치며 '만화'처럼 어려운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제복입은 대기업 말단 여직원들은 감동적인 만큼 그 이상으로 내게는 비현실적이었다.
결국, '조반유리(造反有理)'와 '권선징악(勸善懲惡)', 모두를 담은 이 영화의 '만화같은' 해피엔딩은, 그러나 나같은 관객에게는 스스로 살짝 '부끄럽기도' 하였다는. ㅠ
(2010.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