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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Feb 17. 2024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 한나 아렌트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1963~1964.





1.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 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5장. 판결, 항소, 처형>, 한나 아렌트, 1963.



그 속에 내가 없기를 바랬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있었다.


거대한 사회체제 속의 부품으로 살면서,

스스로의 입신양명과 가족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해고노동자들과 철거민들을 때려잡고,

농성텐트를 철거하는 자리에 화단을 만들겠다며 열심히 삽질해대던 '성실한' 공무원들을 떠올리면서,

수십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순리에 따라' 친일을 했던 자들과 독재정권에 본의 아니게 부역한 자들까지 상기하다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결국 펼쳤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한 보고서'로 유명한 그 책 속에 평범한 내가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47



2.


"피고측이 피고로 하여금 무죄주장을 하게한 이유는 피고가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가 기소당한 내용은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행위'이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나라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피고측 변호인) 세르바티우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대에 처해질' 행위들을 했을 뿐이라는 것 등이었을 것이다(그래서 1943년에 괴벨스는 '우리는 역사책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서 기록되든지 또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장. 피고인>, 한나 아렌트, 1963.



독일 출신으로 나치의 유대인 박해 시기에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을 도왔고 1941년에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 1906~1975)는 유대인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된 독일 나치장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 1906~1962)의 재판을 기록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다.


<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 (1945~1946) >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이주와 이송전문가'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전범재판이었던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처벌할 정도의 나치정권 수괴는 아니었다. 그는 아르헨티나로 도망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던 중 이스라엘 정보국에 의해 1960년에 체포되고 예루살렘으로 납치되어 유대인의 신생국 이스라엘의 법정에서 유대인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 재판 끝에 처형당했다.


아렌트는 이 2년 간 재판의 기록을 통해 이스라엘의 재판정에 선 피고 아이히만의 '평범성'에 주목한다.

이스라엘의 "심판대에 오른 것은 아이히만의 행위에 대한 것이지, 유대인의 고통이나 독일 민족 또는 인류, 심지어는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가 아니"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장>).

그는 결코 나치 수괴들처럼 '악마적'이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착실히 승진하고 출세하려는 '평범(banality)'한 독일의 '공무원'이자 '시민'이었다.


피고인 아이히만의 변호사 세르바티우스는 전쟁 개시 전후 독일 나치정권의 법률체계는 '합법'이었으므로 그 어느 국가도 그 법률에 따른 '국가적 공식행위'를 '범죄'로서 판단할 수 없다고 일관되게 항변했다고 한다. 따라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같은 국제재판소도 아닌 이스라엘 일국의 법정에서는 아이히만을 단죄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배 행위의 불법성과 합법성을 두고 우리와 일본이 끊임없이 다투는 논리와 같다.



"요약하면, 예루살렘 재판의 실패는 뉘른베르크 재판소 설립 이래로 폭넓게 논의되고 또 충분히 인식된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 모두를 파악하지 못한데 놓여있다. 그것은, 1) '승자의 법정'의 훼손된 '정의'의 문제, 2) '인류에 대한 범죄'의 타당한 정의, 그리고 3)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새로운 범죄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필로그>, 한나 아렌트, 1963.



한나 아렌트는 결론부를 이루는 <에필로그>에서 이 기록은 '악의 평범성'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이 기록은 '악의 평범성'의 한 전형으로서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피고인에 관한 실제적 묘사라는 것이다.


악마와도 같은 수천만 유대인 대량학살의 부역자 아이히만의 '평범성'은 단지 그가 성실하고 평범한 독일 시민의 면모와 품성을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독일군 장교 아이히만은 '하사관에서 8천만 독일인들의 총통이 된' 히틀러를 존경하고 본받고자 했던 출세지향적 인물로서 어떤 점에서는 '평범'하지만은 않았고, 히틀러의 나팔수였던 괴벨스가 말한대로 '위대한 인물'이 될지 '흉악한 범죄자'가 될지 양자간 하나라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린 '유대인 이송전문가'였다. 스스로를 히틀러처럼 순수한 '이상주의자'로 규정했던 아이히만은 자신의 임무에 있어서는 한치의 타협도 하지 않았단다. 패전의 분위기가 감돌자 하인리히 힘러 같은 나치 친위대 직속상관이 히틀러의 '최종적 해결책'(유대인 대량학살)을 지연시키고 회피하려 할 때에도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정도로, 책임질 때가 되면 '웃으며 무덤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장담하는 자부심과 책임감까지 겸비했던 '평범한' 독일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평범한' 독일시민들 대부분은 히틀러의 유럽정복전쟁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의 '평범성'은 '모든 사람들이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다'(같은책, <에필로그>)라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의 평범성'의 전형이 될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가 전후 유대인의 신생국 이스라엘 법정의 '정당성' 논란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고 본다.

즉, 국제재판소도 아닌 피해민족으로서 유대인의 국가법률로 패전국인 가해국 독일인을 단죄할 수 있는가, 유대인의 민족적 보복이 아닌 보편적 '정의'를 담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첫번째 문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법정은 '정의의 집'이 되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결코 아이히만이 무죄라고 옹호할 수는 없지만, 국제재판소가 아닌 이스라엘 단독의 아이히만 체포와 납치는 '불법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번째로 민족적 복수에 불과한 예루살렘의 법정은 2차대전 당시 유대인 대량학살을 '보편적'인 '인류에 대한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데 또한 실패했다는 결론이 따른다. 유대인을 넘어 폴란드인과 집시들 같은 소수자는 물론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같은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 전반에 대한 단죄가 아닌 유대인 문제에만 국한된 민족적 보복행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번째 요소로서 유대인 대량학살의 '주범'인 아이히만의 특별한 '악마성'을 구축하지 못했다. 수백수천만 유대인이 학살되도록 만든 장본인이자 집행자임에도 아이히만은 히틀러나 괴벨스 같은 '악마'적 이미지나 '악의 화신'이 아니라 출세지향적이기는 했지만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남고 말았다.



"이 회담(1942년 1월 '반제회의') 날이 아이히만에게 잊혀지지 않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비록 그가 '최종 해결책(유대인 대량학살)'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지만 그는 여전히 '폭력을 통한 그러한 피투성이의 해결책'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의구심들이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 이 곳에서, 이 회담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제3제국의 교황들이 말씀하셨다.' 이제 그는 히틀러 뿐만아니라, 하이드리히와 '스핑크스' 뮐러 뿐만 아니라, 친위대나 당 뿐만 아니라, 착하고 연륜있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 '피투성이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갖는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7장. 반제회의, 혹은 본디오 빌라도>, 한나 아렌트, 1963.



여기에 아이히만을 그답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있다. 바로 1942년 1월 독일 반제에서 열린 회담, 이른바 '반제회의'였다.


원래 특출나지 못했던 아이히만이 그나마 독일 군부에서 출세의 길에 들어선 게, 그가 '유대인 전문가'였다는 사실 그것이었다. 아이히만은 많은 유대인 지도자 집단과 연결이 되었고 그들을 통해 다수 유대인들을 각국으로 이송시키는 전문가였다. 다수 유대인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무국적자로 만들고 대량이주시키는 대신 소수 유대인 지도집단의 특권과 기득권은 보장하는 식이다. 식민지배에서 피식민 민중들을 분리통치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 그러던 그가 나치정권의 고위층들이 모여 유대인 대량학살 집행을 결정하는 반제회의에 참석하게 되었고, 나치당 제3제국의 '교황'들이 모여 거리낌없이, 나아가 경쟁적으로 '최종적 해결책'의 주도적 집행자가 되려는 모습을 보며 죄의식 자체를 씻어버렸다고 한다. 마치, 유대인 랍비들이 예수를 고발하여 죽게 만든 과정에서의 예루살렘 로마인 총독 본디오 빌라도처럼.


예수를 죽게 만든 건 빌라도 본인이 아니라 예수와 같은 유대인 랍비들이라고 말하며 손을 씻은 본디오 빌라도처럼,

유대인을 이송만 하는 게 아니라 존경하는 총통 히틀러의 '최종적 해결책'인 대량학살을 집행할 수 있게 한 건 결정권한이 없는 아이히만 본인이 아니라 독일 나치정권의 성실하고 지적이며 선량하고 연륜있는 고위공무원 전부와 그들에 협조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소수 유대인 지도자들이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유대인 이송전문가는 성실하고 착실하게 출세를 꿈꾸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대인 대량학살의 '주범'이 되었고, 비록 직무상 한계로 인해 독일 나치정권의 고위공무원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으나 그의 자부심은 패전 15년 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국원에게 체포될 때 "내가 아이히만이다(Ich bin Eichmann)!"라고 바로 신분을 까는 당당함의 근원이 되었다.


정신이상도, 사이코패스도, 예루살렘의 유대인 법정의 의도와 달리 괴물이나 악마도 아닌, '악의 평범성'의 한 전형으로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항소심 판결 후 3일만에 집행된 사형대에서 본인의 죽음을 주재하는 식의 진부(banality)한 장례연설을 유언으로 남기는 기괴한 광경을 연출하며 생을 마감했다.


아렌트는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세뇌하고 속인 아이히만 자신의 기억이 바로, '말과 사유를 허용하지 않는'(같은책, <15장>), 철학없는 사고, 반성하지 않는 사유,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같은책, <후기>)로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두려운 교훈'(같은책, <15장>)을 남긴다고 말한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후기>, 한나 아렌트, 1963~1964.



거대한 체제에서 톱니바퀴와 나사와 같은 부품으로서 철학없는 '무지'와 반성없는 '무사유'는 '악의 평범성'의 기본조건이다.



3.


악(惡)에 대한 심판 과정을 통해 현실적으로 드러난 '악의 평범성' 속에서 '평범'한 내 모습을 얼핏 보았을 때, 사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기 전에도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입신과 출세를 위해, 가정의 안녕과 부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 시대에 따라 친일도 되었고 독재정권의 지지기반이 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유죄인 곳에서는 역시 모두가 무죄라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살았던 독일 시민 아돌프 아이히만은 결국 유대인의 법정에서 '악의 평범성'의 전형이 되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성실함이 '악(惡)'이 된 건 성실함 자체가 아니라 식민시대 또는 반민주 독재정권이라는 시대적 배경의 상대성이 있다.

아이히만의 성실함이 평범한 악(惡)이 된 것 또한 예루살렘 법정의 '정의의 집'(같은책, <1장>) 여부에 대한 논란의 상대성이 있었다.


그래서 혼자 또 묻는다.

평범한 내가 사는 이 체제는 '정의'로운가.

과연 시대의 '악(惡)'은 무엇인가.


지금, 평범한 나의 성실함 속에 '악(惡)'은 얼만큼이나 있는가.


***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1963~1964), Hannah Arendt, 김선욱 옮김, 정화열 해제, <한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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