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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Dec 26. 2023

전업작가로 보낸 1년

어느 하루의 이야기


작년 가을 퇴사 후, 1년 이상 돈을 벌지 않고 오직 글만 쓰며 지냈다. 나는 그것을 20년 넘게 소망해왔는데, 비로소 이룬 것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읽을 책과 참고서를 샀다. 시장을 보고, 찬 거리를 사서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용돈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과자 한 봉지라도 사 먹으려면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거리를 걸어 차비를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가난이란 말조차 사치였던 청소년 시절을 지나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전장이었다. 물러나면 문자 그대로 죽음이었다. 나는 학비도 생활비도 누구에게 받아본 적이 없다. 하루에 서너 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가 대학생이 된 것인지 알바생이 된 것인지 한탄했다. 보호종료 청년에게 주는 지원금마저 부러웠던 시절이다.


누구나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나는 일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는 감각 그 자체를 모르고 살았다. 한 번 그렇게 살아 보니 내가 견뎌온 지난 생들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직접 돈을 벌지 않아도, 먹고 마시고, 월세를 내고, 책과 음반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음 날, 다음 달이 불안하지 않다는 감각은 황홀했다. 가능하면 천년만년 이대로 살고 싶다. 누군가는 한 3-4년 정도 그렇게 살아도 아무 지장이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 기간이 평생이어도 괜찮을 것이다. 오히려 통장에 든 예금이 주는 이자가 직장인 평균 월급보다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참 부러운 일이다.


신은 내게 돈 말고는 다 주었다. 붕어빵을 찍으면서 팥만 뺀 것과 비슷하다. 괘씸하지만, 그래도 팥이 없다는 것 외에는 상당히 양호하게 찍어 주었으니 감지덕지다. 덕분에 나는 평생을 팥 대신 무엇으로 내 속을 채울까 고민하며 살아왔다.


퇴직금을 야금야금 쓰며 지내는 동안, 1.5편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에세이, 또 한 권의 작품집을 썼다. 이것밖에 못하다니 아쉬웠는데, 달리 보면 이만큼이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시간이 주어지면 정말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스스로에게 줄 수 있었다. 혼자 속으로 상상했던 것만큼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은 좀 부끄럽다. 대신 집에 쌓여 있던 게임들을 왕창 클리어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와도 매우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많은 음악을 들었고,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온갖 장소를 방문했다. 아름다운 1년이었던가? 때때로 아름다웠다. 그거면 괜찮지 않나. 어떤 1년도 온전히 아름다울 수는 없다.


누가 갑자기 내 책을 2만 권 정도 사주지 않는 한, 이제 곧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될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저녁과 주말에는 글을 쓸 수 있는 환상의 직장을 슬슬 찾아보고 있다. 잘 쉬었고, 잘 놀았고, 잘 비웠고, 또 잘 채웠다.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에는 또 어떤 희한한 문장이 쓰여 있을까. 우주여, 위대한 신비여, 적당히 합시다.


하루 지났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뉴 이어-


2023. 12. 2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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