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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잘라주는 남편

by 작은물방울
돈가스 잘라주는 남편.jpg 돈가스 잘라주는 남편





짧게 주어진 점심시간.
길 가다 보이는 음식점을 가리키며 신랑이 말했다.


“저기 가자.”


차를 빠르게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니, 메뉴판에는 돈가스가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넣자마자 음식이 금방 준비되었다.
그렇게 우리 차례가 되어 접시를 받아 들었다.


나는 ‘건식이방(건강하게 먹자)’ 참여 중이라 식단 인증을 위해 앱을 켜고 있었다.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오후 12시 27분.
그냥 평범한 점심시간이었다.


신랑은 빠르게 나이프와 포크를 챙겨 오더니,
자신의 돈가스보다 내 접시부터 당겨왔다.
한 줄로만 툭툭 자를 줄 알았는데,
한 입 크기로 예쁘게 잘라 놓는다.


손이 더 가는 일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그 장면이 우연히 식단인증하는 내 카메라에 찍혔다.


잘 잘라진 돈가스를 집어먹으며, 문득 오래전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결혼하고 3~4개월쯤 되었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지금도 크게 싸운 적은 없지만,
그때 신랑은 정말 많이 지쳐 있었다.


그날 집은… 말 그대로 난. 장. 판.


나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은 미니멀라이프 책도 읽고, 정리 프로그램도 보다 보니 조금씩 나아졌지만,
그때의 나는 ‘어지럽혀진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신랑이 부엌과 마루 사이, 난장판의 한가운데에서
내 두 팔을 잡고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초롱이 몇 살?”
(내 애칭은 초롱이다.)


갑자기 나이를 묻길래
‘서른두 살이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신랑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초롱이 네 살! 따라 해 봐. 초롱이 네 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순히 따라 했다.


그 말의 의미를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가 집안일을 너무, 정말 너무 못해서
신랑이 ‘네 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리고 그 화를 얼마나 참았으면,

그런 농담 같은 말을 했을까 싶다.


‘혼자서도 잘해요?’

나는 그 반대였다. ‘혼자서는 못해요’ 쪽.


엄마는 늘 말하셨다.

“집안일 잘하면 나중에 일만 하게 되니까 안 시키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거의 전략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 네 살부터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정도는 다닐 수준이라고 신랑은 말한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나이를 물으면
요즘은 “그냥 네 나이로 살아”라며
내 진짜 나이를 불러준다.


어쩐지 네 살이 편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신랑은 늘 나를 챙긴다.
어제처럼 돈가스를 잘라주는 일도,
매일 같이 자연스레 몸에 밴 배려도.

서툴렀던 나는 조금씩 자라서,


이제는 마흔이 넘었지만, (진짜 급성장)
그는 여전히 나를 다정하게 돌본다.


그걸 생각하니
한 입 크기로 잘라진 돈가스가
괜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p.s.: 릴스에 유머러스하게 다니는 영상이 있는데,

세상에는 엄마 같은 부인이 있고 딸 같은 부인이 있다고 하던데,

제는 딸 같은 부인인가 봅니다. (철이 더 들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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