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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07. 2024

반박이 두려워서 주절대지 말 것

사실 비평을 쓴다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비평까지 가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재미가 있다, 없다는 얘기를 내놓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약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누군가는 내 글에 반박할 것이다. 솔직히 내가 써놓고 봐도 반박이 쌉가능이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무서워할 것 없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까? 절대 안 되지. 장이 얼마나 맛있는데.


우선 생각한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뿐이다. 완벽한 글에도 누군가는 반박하니까. 싸우자고 들어오니까. 희진 언니의 고매한 정신을 생각하자. 그래 XX 맞다이로 들어와.


두 번째, 유념한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나중에 반박당할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는다. 글은 글이다. 반박은 그다음 단계의 일이다. 그걸 미리 걱정하며 쓰는 것은, 초등학교 막 입학하면서 나중에 대학 다닐 때 하숙해야 되나, 자취해야 되나 걱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생은 스텝 바이 스텝.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누군가 내 글을 조목조목 반박해서 공개적으로 쪽팔릴까 봐 걱정할 필요는 별로 없다. 그 정도의 열광적인 반응이 오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영혼을 갈아 넣은 글에 '좋아요' 정도 있어도 감동받아서 눈물 글썽한 게 현실. 만약 내 글에 정성스러운 반박문이 달린다면(그냥 악플 말고), 일어나서 조상묘가 있는 쪽으로 절 한번 박는다. 조상신이 도운 것이니까.  



그러므로 글을 쓰는 우리의 자세는 이러해야 한다. 비판을 미리 걱정하며 쫄지 않는다. 쫄아있는 필자는 혼내는 엄마 앞에서 쭝얼대는 애처럼 주절거리게 된다. 그래서 글이 없어 보인다.


한편 비판이 '무서워서'라기보다 '못 견디게 싫어서' 의식하는 사람도 있다. 완벽주의 성향의 필자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답은 같다. 일단 글은 좌중의 눈길을 잡아끌어야 하고, 그러려면 명료해야 한다. 글에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명료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심플하게 말하는 것이다. 내 글의 빈틈이 싫어서 중언부언 여러 논리를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쓰면 나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겠지만, 글에 힘이 떨어져 읽히지 않는다. 혼자만 만족하는 글이 되고 만다. 정 무언가를 덧붙이고 싶다면 먼저 글의 논지를 힘 있게 제시하고, 그 뒤에 단서를 붙이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1.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액션 시퀀스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보다 다소 약하다는 것, 서사의 유려함의 측면에서 <3000년의 기다림>에 못 미친다는 것을 제외하면 조지 밀러 최고의 작품이다.


2.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조지 밀러 최고의 작품이다. 다만 그의 전작들을 모든 측면에서 압도하지는 못한다. 액션 시퀀스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조금 더 낫고, 서사의 유려함은 <3000년의 기다림>이 다소 앞선다.


더 힘이 있는 쪽은 몇 번인가? 2번이다. 시작 부분에서 하려는 말을 한숨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을 쓴다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최고작인 이유에 대해 더 길게 설명하고, 반박에 대한 재반박에 해당하는 단서 부분은 뒤로 보낸다. 그러면서 말하려는 바에 무게를 싣는다.


비판이 두렵거나, 명제의 완벽성을 너무 의식하는 필자는 2번처럼 쓰지 못한다. 어떤 반박도 불가능한 100% 완벽한 명제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100% 보다 단순한 90%가 낫다.



그러나 1번과 같이 글을 쓰는 태도가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므로 학문적 글쓰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기에는 불리한 측면이 있다. 반대로 끈기 있는 독자군을 향해 글을 쓴다면 이런 노하우를 덜 신경 써도 좋다.

또한 명료하 힘 있게 쓰라고 해서, 과장하거나 낚시해서는 안 된다.


어떤 스킬이든 절대적인 것은 없다. 취지를 이해하고 익혀, 내 글의 밸런스를 조정하는데 이용할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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