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는 하루

by 강상록

알람이 아직 울리지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잠깐 헤아려보다가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임을 깨닫고 기분이 안 좋아진다. 심지어 남들은 대부분 쉬는 토요일이다. 이불속에서 한참을 뒤척거리다 마지못해 일어난다.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고 물을 갈아준다. 강아지들은 내가 이불을 옆으로 치우고 일어나는 작은 소리도 바로 알아차리고 달려온다. 나를 이렇게 한결 같이 반겨주는 존재는 없다. 물론 밥 때문일 수도 있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어찌도 잘 먹는지. 강아지들이 밥을 먹는 오도독 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다.


두 아이가 각자의 방에서 깨어나 엄마, 아빠를 부르고 낑낑거린다. 방문을 빼꼼 열고 인사를 한다. 안녕 잘 잤니? 아직 누워서 뒹굴거리는 아이들의 팔다리를 주물럭거리고 간지럽히니 깔깔거리며 좋아한다. 다시 밖으로 나와 강아지들의 밥그릇을 치우고 강아지 한 마리에게 약을 먹인다. 밤새 더럽혀진 배변패드를 정리한다(강아지들은 패드를 깔아놓으면 알아서 배변을 가린다).


출근 준비를 한다. 씻고 머리를 만지고 면도를 하고 옷을 고른다. 토요일 아침은 차가 많지 않아 출근하기에는 좋지만 출근을 안 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토요일은 늘 환자가 많다.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가 10명, 15명 점점 늘어나면 불안하고 신경이 쓰여 집중이 어렵다.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걸로 불평하고 싫은 소리를 하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보니 신경이 곤두선다. 4시간 동안 나름의 내적 고통을 견디고 퇴근한다.


집에 돌아와 바로 라면을 끓여서 점심을 해결한다. 라면을 먹을 때는 찬 밥을 같이 먹는 걸 좋아하는데 마침 남은 밥이 많아서 전부 말았다. 아마 어른들(엄마, 할머니, 장모님)이 봤다면 왜 또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냐고 한소리 하셨겠지만 나는 라면이 진짜 좋아서 먹는다. 매일 먹을 수도 있다. 세상 모든 라면을 먹어보고 싶다. 아무래도 '엄마 경력'이 있는 분들은 라면으로 식사하는 걸 마음 편히 두고 보기가 어려우신 모양이다.


아이들은 낮잠을 자고 있다. 오전 내내 아이들에게 시달리며 고생한 아내는 아이들과 같이 자고 있다. 다행히 내가 점심을 먹는 동안은 아이들이 깨지 않았다. 점심을 급하게 해치우고 예약되어 있는 강아지 진료를 위해 동물병원으로 출발한다. 강아지 한 마리는 아토피피부염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고 한 마리는 만성 장염(단백 소실성 장병증)으로 약을 먹어야 한다. 아픈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픈 강아지를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무 사료나 먹여서도 안되고 한동안은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 정부청사 옆에 있는 공원으로,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드넓은 잔디가 펼쳐진 곳이다. 강아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인데도 쌍둥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근래 1년쯤은 한 번도 데려오지 못했다. 잔디에서 강아지를 뒤따라 달리고 나면 몸이 너무나 힘들지만 오늘은 큰맘 먹고 강아지들을 데려왔다. 맘껏 뛸 수 있도록 리드줄을 평소보다 긴 줄로 바꾸고 나도 같이 달린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인지 기분은 좋지만 몸은 아우성이다. 제발 그만 뛰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강아지들의 발을 씻긴다. 강아지 발을 씻기는 일은 아주 귀찮은 일이다. 그냥 비누칠하고 물로 헹구면 그만인데도 왜 그렇게 하기 싫은지 모르겠다(발이 4개나 있어서 그런 걸까). 강아지가 스스로 화장실에 들어가 발을 닦고 나와 수건을 꾹꾹 밟아 물을 닦는 상상을 한다.


바로 다음 일정이 이어진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간다.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눈치를 무시하지 못했다. 아이는 할머니와 즐겁게 놀고 저녁도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덜 익숙한 공간이고 부모님도 나보다는 아이에 대해서 잘 모르시니 우리 집에서보다 신경 쓸 일이 많다. 아이가 노는 동안 다른 방에서 책도 보고 조금이라도 쉬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챙겨 온 책은 꺼내지도 못했다.


하루가 끝나간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늘 나를 위해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한다. 요즘은 다 이런 식이다. 할 일이 이어지고, 일을 마치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되어있고. 나를 위한 일이 꼭 필요한 건지부터 고민해 본다. 나는 하루동안 아빠로서 보호자로서 의사로서 아들로서의 역할을 했다. 역할의 완성도나 만족도(타인의 만족도)와는 상관없이 일단은 모두 해내긴 했다. 이렇게 사는 건 나를 잃어버리는 일일까,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일까. 강아지들이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이 우리 집을 떠나는 그날까지 이런 날들이 계속되는 걸까. 그렇게까지 생각하기에는 내 하루가 너무 짧고, 피곤할 뿐이다.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을 재우고 한두 시간쯤 내가 원하는 나만의 일을 할 생각을 한다. 베이스기타를 연습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작정이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들이다. 기억에 남을 특징이 전혀 없는 하루 같지만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날은 이렇다. 하루가 모여 내가 된다.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