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지나야 알게 되는 것

by 강상록

해가 갈수록 강아지들이 느려진다. 산책만 나가면 말처럼 달리던 푸들도, 황소처럼 줄을 끌어대던 비숑도 이제 그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지 않는다. 내가 뛰면 따라 뛰지만 뛰고 싶어 안달인 모습은 더 이상 없다. 강아지들은 평균 수명의 절반 정도를 살았다. 벌써 이렇게 몸의 변화가 보일 때인가? 일곱 살 강아지를 처음 키워봐서 잘 모르겠다. 슬플 뿐이다.


그들의 시간이 우리보다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이별을 떠올리는 날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과거를 돌아보며 그리워할 때도 많아진다. 처음 강아지들을 데려오던 날에는 혹여나 부서지기라도 할까 봐 품에 꼭 안고 왔다. 나와 아내는 이렇게 연약해 보이는 생명을 우리가 잘 돌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기대했다. 바닷가에 살 때는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나가 맘껏 뛰어다녔다. 집에 돌아오면 강아지 몸에서 모래가 끝도 없이 나왔다. 등산도 했고 달리기도 했다. 뛰는 걸 좋아하는 푸들은 내 옆에서 3km씩 같이 달리고도 힘이 넘쳤다. 벚꽃길을 걸었고 호수 둘레를 달렸다. 새를 구경하고 고양이를 만났다. 행복했다.


강아지가 아팠을 때조차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밤새 기침과 구토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강아지 옆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더 일찍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미안해하던 기억. 며칠씩 입원하면 하루에 한 번 면회를 가서 부들부들 떨던 강아지를 안아주고 오던 기억. 퇴원할 때 받는 진료비 영수증을 보고 애써 태연한 척하던 기억까지도.


지금 돌아보면 가슴이 저릿할 만큼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그때는 어떻게 느꼈을까.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그때도 생각했겠지만 그만큼 정성 들여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나의 많은 행복이, 행복이었어야 했던 일들이 행복인 줄 모른 채 지나갔고 잊혔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인데도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기만 한 건 아닐까.


과거를 곱씹고 미래에 기대어 사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기다리던 미래가 막상 와도, 그때에도 나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오늘을 다시 그리워하겠지. 그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결국 매일의 '오늘' 속에 행복들이 숨어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물론 그걸 깨달았다 해도 현재에 만족하고 소중함을 느끼기란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느리면 느린 대로 걷는 강아지들을 보는 것도 행복이었음을 깨닫는 미래가 분명히 올 것이다. 강아지들이 산책을 나가기도 벅차 집에 누워만 있거나 어쩌면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과거의 행복을 그리워하지 않으려면 오늘을 사랑해야 한다. 느리게 걷는 강아지들. 천천히 냄새를 맡고, 조용히 걷고, 새와 나비를 쳐다보다가도 한 번씩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을 사랑해야 한다. 훗날, 느리게라도 걷던 강아지들을 그리워하며 '그때가 좋았던 거구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나는 오늘을 충분히 느끼고 사랑할 것이다. 느린 강아지를 돌볼 것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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