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거리, 시간, 속도 같은 것들이 아니다. 부상 없이 뛸 수 있는가.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달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직접 겪은 후 깨달은 것인데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달리기는 꾸준히 시간을 들여도 알아차리기도 힘들 만큼 느리게 실력이 향상되는 운동이다. 그래서 평소 뛰는 거리를 마일리지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적립이 아주 조금씩만 되는, 효율적이지 않은 마일리지. 그렇게 꾸준히 시간을 들이다 보면 자연히 더 오래, 더 멀리 뛰는 방향으로 훈련을 하게 되는데 이럴 때 몸의 반응에 귀 기울여 세심히 돌보지 않으면 금세 부상이 찾아온다.
첫 번째 부상
첫 번째 부상은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찾아왔다. 부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평소에 전혀 달리지 않던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무리하게 달리는 횟수를 늘렸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넘어 군의관으로 군에 입대한 후 같이 일하던 동료 군인들과 얼떨결에 함께 뛰기 시작했다. 산과 들과 바닷가를 달렸다. 자연을 보고 듣고 그 속에서 달리면서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황홀을 경험하였다. 나는 곧장 달리기에 빠져들어 누가 뛰자고 하지 않아도 매일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하체의 여러 관절에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체중의 부하를 견딜 수 없는 지경에 금방 다다르게 되었다. 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무릎, 허벅지 뒤쪽(햄스트링이라고 부르는 근육), 허리까지 통증이 생겼는데 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저릿하고 기분 나쁜 통증이 계속 올라왔다.
통증을 개선해 보려고 마사지도 해보고 각종 보호대(무릎, 발목)를 차고 뛰어보기도 했으나 효과는 잠깐일 뿐이었다.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볼수록 부상이 더 근본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투런>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달리기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통증으로 고생하는지, 병원에서 흔히 듣는 말처럼 달리기를 안 하는 것만이 정답인지, 저자는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 일상인 멕시코의 타라우마라 족을 취재하면서 우리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주장을 한다. 그는 수십 킬로미터의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게 된다.
<본투런> 덕분에 달리는 행위가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누구나 바르게 달리기만 한다면 오랫동안 달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관련 자료들을 더 찾아 읽기 시작했다. 수개월에 걸쳐 내 몸에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자세를 바꾼 후 나는 첫 번째 부상에서 벗어났다.
다시 또 부상
두 번째 부상은 2년쯤 꾸준히 달린 시점에 찾아왔다. 그쯤에는 10km도 거뜬히 달릴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어 있었고 일주일에 최소 3일은 달리던 시기였다. 운동량을 갑자기 늘리거나 코스를 변경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왼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묵직한 불편감 정도로 시작되었던 통증이 찌릿하고 불쾌한(첫 부상 때와 매우 비슷한) 통증으로 바뀌면서 나는 잠시 달리기를 멈췄다. 잠시 쉬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6개월을 넘어갔다. 몇 주간 충분히 쉬고 통증이 사라져서 다시 뛰면 몇 분 지나지 않아 통증이 그대로 다시 생겼다.
올바른 자세로 잘 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문제가 생기니 더욱 막막했다. 원인은 알 수 없는데 달리기를 못하는 시간만 길어져갔다. 이번에도 병원에서는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염좌, 염증, 타박상 등의 의학적인 진단명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책과 영상들을 찾으며 뛰는 자세를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트랙을 달리는 동안 영상을 찍기도 하고 땅에 가장 먼저 닿는 발부터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팔과 어깨의 움직임까지 꼼꼼하게 자세를 살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결국 찾아낸 원인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면에 닿는 양쪽 발의 방향이 달랐다. 오른쪽은 발끝이 정면을 바라보며 착지하는 반면 왼쪽은 바깥쪽으로 틀어진 상태로 지면에 닿았다. 시계로 비유하자면 오른발은 12시를 가리키며 착지했고 왼발은 10시를 가리켰다. 이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자세를 잡기까지는 트랙에서만 뛰면서 발 밑에 보이는 흰 선을 따라 두 발이 같은 방향으로, 최대한 12시를 향하도록 교정했다. 비대칭을 해결하고 무릎통증은 사라졌다.
또 또 또 부상
세 번째 부상은 최근의 일이다. 쌍둥이 육아 때문에 근 2년간 꾸준히 뛰지 못했다. 시간과 체력이 도저히 달리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육아 난이도가 다소 내려가고 스스로를 '러너'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뛰는 시간을 다시 늘리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났을까 오른쪽 골반부터 엉덩이, 허벅지 바깥쪽이 아팠다. 걸을 때마다 누가 옆에서 오른쪽 다리를 잡아당겨 찢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달린 이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통증이라 이번에도 당황스럽긴 하다. 다시 길고 긴 부상과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삶에도 부상 같은 일들이 빈번히 찾아온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통증. 지금 하고 있는 쌍둥이 육아, 특히 아픈 아이를 키우는 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므로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몸의 비대칭처럼 스스로 알아차리기 힘든 문제들도 찾아온다. 새로운 관점에서 세심하게 돌아보지 못하면 찾을 수 없는 문제들. 그런 작지만 치명적인 삐걱거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내 삶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봐야 한다. 내 자세를 영상으로 찍어보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뛰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스스로에게 자주 말을 걸고 대화한 내용을 글로 적는다.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생각한다.
부상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극복하면 결국에는 강해진다는 믿음도 함께 배운다. 달리는 자세와 삶의 자세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달리면 아프기 마련이다. 아프고 또 아프게 된다. 그래도 뛰는 것이 목표다. 오래도록 뛰는 것, 그 자체가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