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밥 주는 이야기

by 강상록

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오면 차를 주차하고 트렁크를 연다. 트렁크에는 고양이 사료와 종이컵이 있다. 종이컵 한가득 고양이의 밥을 담는다.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작은 정원 같은 공간이 있는데 나무와 풀이 있고 사람들이 잠시 앉을 수 있는 벤치가 몇 개 놓여있다. 정원 구석에 서있는 소나무 아래 어딘가쯤, 오직 나와 아내와 고양이만 알고 있는 비밀장소에 종이컵을 내려놓는다. 가끔은 밥을 기다리는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시선을 뒤로한 채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빈 종이컵을 치우고 출근한다.


4년이 다되어가는 고양이 밥 배달. 근 2년 사이에는 비나 눈이 심하게 오지 않는 한 하루도 빠짐없이 밥을 배달했다. 조금은 특별한 매일의 배달.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집 앞 산책 중 우연히 고양이 네 마리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고양이들이었고 네 마리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앞, 사람이 다니는 인도 위에서 천진난만하게 뒹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쳐다보곤 했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나 불안해 보였다. 발에 밟히거나 채이지 않을까 싶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해코지를 하거나 잡아서 다른 곳에 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고양이들은 아파트 일층 화단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사는 듯했는데 아내와 나는 매일 고양이들을 보러 나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근처를 어슬렁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이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었는데 여름이라 기온이 높고 습해 며칠 만에 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이 밥을 다 먹지도 않을뿐더러 남은 밥을 치우는 사람도 없으니 파리는 늘어만 갔고 일층에 사는 주민들의 불만도 폭주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지 못하도록 경고문을 붙였다. 천진난만한 고양이들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밥을 주고 싶었겠지만 일층에 사는 사람들의 고충 역시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의 밥 배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파리떼가 모두 사라지고 고양이들도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져 갈 무렵 나와 아내는 조심스럽게 다시 사료를 가져다 놓기 시작했고 벌레가 생기기 전에 치웠다. ‘당일 배식‘의 원칙을 세우고 주로 날이 저물면 밥을 놓고 아침이 되면 치웠다. 그렇게 매일 반복했다. 물론 놓아두는 장소도 남의 집 앞 화단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곳과는 거리가 있는 지금의 정원으로 옮겼다. 어디에 밥을 두어도 아기고양이들은 잘도 밥을 찾아먹었다.


네 마리의 아기고양이들이 모두 살아남지는 못했다. 사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세 마리, 두 마리, 눈에 띄는 고양이 수가 줄어들더니 한동안은 아예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가 크면 사는 터전을 옮기기도 한다는데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와 아내는 고양이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 죽은 고양이가 되는 것 같았다. 고양이들은 그저 사라질 뿐이었다.


고양이를 잊을만하면 새로운 고양이들이 다시 나타나서 밥 배달을 오래 쉬는 경우는 없었다. 어느 순간 밥을 먹는 고양이들이 바뀌고, 새로운 얼굴이 보이고, 누군가 새끼들을 낳고, 천진난만한 고양이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나무에 오르고 장난을 쳤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또다시 사라졌다.


지금 밥을 주는 고양이는 우리와 오랫동안 얼굴을 보고 있다. 사람들이 검은 털에 하얀 무늬를 가진 고양이를 흔히 ‘턱시도’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하는데 지금 만나는 고양이를 우리는 ‘시도’라고 부른다. 밥을 주는데도 나름의 요령이 생기기 시작해서 시도가 오랫동안 우리 옆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수분이 더 필요해서 물도 가져다 놓는데 고여있는 물은 잘 먹지 않아서 습식 사료를 주곤 한다. 습식 사료는 수분 함량이 많아 잘 상하고 하루 만에도 벌레가 생기므로 특히 여름에는 더 늦은 시간에 주고 아침 일찍 치운다. 겨울은 고양이들에게 더 혹독하다. 물이 다 얼어서 의외로 수분 섭취가 어려운 계절이다. 우리가 따로 물을 챙겨줘도 얼어버려서 먹지 못한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우리는 큰 손난로를 바닥에 한 장 깔고 그 위에 밥과 물을 놓았다. 어찌어찌 두 번의 여름과 겨울을 잘 버텨낸 시도는 여전히 우리가 주는 밥을 먹고 있다. 그 사이 시도가 몇 번 낳은 아기고양이들을 데려와서 같이 밥을 먹기도 했지만 아기고양이들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고양이를 돌보며 계절을 느낀다. 봄이 왔으니 여기저기서 아기고양이들이 태어나겠구나. 꽃이 피면 꽃 사이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꽃구경을 할지도 모르고 나비를 잡으러 뛰어다닐지도 모른다. 여름은 벌레와의 사투를 해야 하는 계절. 조금만 잘못하면 고양이밥이 벌레밥이 되어버린다. 민달팽이와 콩벌레는 고양이 사료를 좋아한다. 가을은 신기할 정도로 벌레들이 자취를 감추는 계절이고 고양이가 밟는 낙엽소리 때문에 둔한 우리도 고양이가 몰래 다가왔음을 알아차리곤 한다. 겨울은 혹독한 계절. 따뜻한 집 한 채를 지어주고 싶은 계절이다. 눈이 많이 오면 고양이 발자국을 찾는 소소한 재미가 덤으로 있지만 고양이들은 발이 많이 시릴 것이다.


생명을 돌보는 일의 가치도 배운다. 오직 인간을 위해 지은 아파트라 할지라도 많은 생명이 함께 산다. 나무도 풀도 벌레도 새도, 고양이와 쥐도 각자의 공간을 차지한다. 고양이밥을 주고 난 이후부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작은 생명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밥을 빼앗아 먹으려 종이컵에 붙어있는 민달팽이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풀이 많은 곳에 놓아준다. 오가는 길,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바닥을 보고 걷는다. 부엌 창가에 들어온 무당벌레는 종이나 손가락에 올라오도록 유인한 후 창밖으로 날려준다. 모기와 초파리를 살려주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커가는 중이다. 내가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 따뜻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느낌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살다 죽을 고양이들에게 밥을 줘서 생태계를 교란하나? 라는 생각도 가끔 하지만 고양이 농장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집 앞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 돌보는 정도니 괜찮겠거니 한다. 길에 사는 고양이들은 원래부터 자연의 섭리대로 살지도 못한다. 어쩌다 길에서 태어나 살다 죽게 되었는지 모르는 불쌍한 이웃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양이 밥 주는 일상은 늘 뿌듯하고 배부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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