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여야 들리는 것들

by 강상록

<듣지 못하게 된 것>

"째째!"

첫째 아이가 요즘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다. 어느 날 동네에서 산책을 하다가 비둘기를 보고 '짹짹이'라고 알려줬더니 새만 보면 짹짹이라고(아이의 발음으로는 '째째'라고) 외친다. 한 번 그렇게 말하기 시작하더니 새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짹짹이가 되었다. 부리와 날개가 있으면 짹짹이다. 그림책에 나오는 참새, 까치, 독수리, 부엉이, 심지어 타조까지 전부(그래도 닭은 꼬꼬라고 부른다).


어느 날 집 앞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데 아이가 또 "째째!"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새가 있는 쪽으로 가볼까 하고 둘러보았으나 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도 나무에도 눈에 보이는 새는 없는데 아이는 무엇을 본 것일까. 아이가 다시 "째째!"라고 외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새소리가 들린다. 종알종알 대화하는 듯한 소리. 진짜 짹짹거리는 소리였다.


집 앞일 뿐인데도 다양한 새소리가 들린다. 아이처럼 가만히 새소리를 들어본다. 가장 많이 들리는 '짹짹'소리는 참새의 소리이려나? '찌르르르'하고 마치 곤충처럼 길게 우는 소리도 들린다. 그 사이사이에 캔뚜껑을 따는 것 같이 '딸깍'하는 특이한 새소리도 섞여있다.


아이는 알아차리는 새소리를 나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새롭게 듣는 것>

나는 새소리대신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이 입에서 나오는, 아직은 모호한 단어에 늘 귀를 기울인다. 아이가 새소리를 듣고 새라고 알 수 있을 만큼 컸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의미 있는 소리들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도 감격한다. 감격이라는 단어보다는 더 깊고 가슴 뭉클한 감정이다. 아이의 세계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더 많은 세상의 소리를 알게 되고, '짹짹이'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이도 언젠가는 새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새를 좋아하는 어른이 된다면 남들은 듣지 못하는 새소리를 민감하게 듣고 구별할지도 모르지만, 새소리를 듣고 무슨 새인지 구분하는 어른이 어디 흔할까? 어느 쪽이든 좋고 나쁜 것은 없지만 아이의 "째째!"라는 외침은 그리울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는 어떤 소리를 듣지 못하고 또 새롭게 듣게 될까. 옆에서 종알대는 아이의 소리는 매년 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아이의 소리가 아닐 때쯤이 되면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그가 진짜 전하고 싶은 마음을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늘 같은 자리에 있고 익숙해지면 으레 그렇게 되곤 하니까. 오늘도 곳곳에서 들리는 새소리처럼 말이다.


귀를 기울여야만 들리게 된 것들에 다시 귀를 기울여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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