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에필로그
* 주스웨덴한국대사관 앞-베르발드홀(Berwaldhallen) 정류장(2019.10월)
"최종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Team Kungsleden과 Team Småland가 50여 편의 발표를 하는 동안 받은 하트의 총계입니다. "
인사팀장의 말에 회의실 내는 침묵이 흘렀다.
"267대 294. Team Småland의 승리입니다."
회사가 유럽 최대의 배터리 생산업체로 성장하고 있는 스웨덴의 northspark로부터 기가팩토리 건설에 필요한 장비의 대규모 수주에 성공했기에 현지 진출에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고자 시작했던 두 팀 간의 경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회사는 경쟁을 시작하기 전 언급했듯이, Team Småland의 5명을 채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경쟁은 그렇게 했지만, 모두 다 채용하겠다'는 것은 현실에는 없는 것이었다.
박 사장이 말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2022.1월부터 시작했으니,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네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어요. 가장 큰 것은 northspark가 파산했다는 겁니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니, 거기 때문에 사람들을 채용했는데 망했다니?
https://youtu.be/wvGaC3NHrcU?si=jZjAEmHDBsppllt2
그렇다. northspark는 "자본 비용 상승, 지정학적 불안정, 공급망 차질, 시장 수요 변화 등 복합적 어려움에 부딪혔다"며 스웨덴에서 파산을 신청했다. 이 회사는 2016년 창립 뒤 140억 달러(약 19조 7000억 원) 이상을 투자받았지만, BWM과의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 계약 취소 등 잇따른 타격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northspark가 망하면서 유럽은 2030년까지 계획된 배터리 생산능력의 13%를 잃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유럽은 CAD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업체와 한국의 LZ에너지솔루션 등 아시아 배터리 제조업체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박 사장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두 팀이 남과 북에서 출발하여 스톡홀름을 향해 오면서 스웨덴 내 모든 주를 거치는 과정에서 얻은 스토리는 우리가 스웨덴 시장을 이해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계속 보고를 받으면서 이 프로젝트 이름을 단순한 사원 선발 프로그램이 아니라 '세대전쟁 in 스웨덴'이라고 바꾸었답니다. 4~50대가 주축이 된 Team Småland와 상대적으로 젊은 2~30대의 청년층이 주축이 된 Team Kungsleden가 입사라는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이 마치 전쟁하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시간을 두고 보니 Team Småland가 남쪽 끝인 스코네에서 출발하여 주로 스웨덴의 전통과 역사를 중심으로 탐험을 해갔다면, 상대적으로 젊은 2~30대의 청년층이 주축이 된 Team Kungsleden은 미국으로 치면 서부에 해당하는 광활한 미개척지인 북부를 중심으로 과학, 기술, 환경, 스타트업, 난민 등을 다루면서 자기 팀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5배 면적을 가진 스웨덴이 남쪽에는 전통이 북쪽에는 미래가 있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지요.
어느 순간 이 '세대전쟁'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그런 과거형의 전쟁이 아니라, 서로에게 지식의 안목을 넓히고 성장의 자극을 주는 오늘날의 선의의 경쟁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장년의 Team Småland가 찾아낸 전통이 새로운 성장의 근간이 되고, Team Kungsleden이 발표한 미래가 새로운 자극이 되는 거지요. 보물섬을 찾아가는 데는 정확한 기계적 방향인 나침반도 필요하지만 오랜 경험의 감도 필요하듯이 말이죠.
비록 northpark가 파산했다 해도 우리 회사의 스웨덴 시장 진출은 계속될 것입니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노키아의 파산이 핀란드를 스타트업의 성지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듯이, northpark의 파산은 스웨덴의 또 다른 발전의 양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은 아직도 각종 국가 지수에서 10위권 내 있는 모델 국가이거든요. 여러분이 찾아준 그 기록들은 우리 회사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Team Småland의 한 사람이 말했다.
"막상 마무리되니 시원섭섭합니다. 회사 입사라는 새로운 기회도 얻었고요. 물론 경쟁은 경쟁이지만 Team Kungsleden 팀원들의 기회를 뺃은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있고요. 저희는 양보할 생각도 있습니다."
Team Kungsleden에서 말했다.
"아니오. 저희가 스웨덴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선순환이 참 잘 돼있다는 것. 그래서 충분히 이번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경험을 얻었기에 굳이 회사에 매이지 않고 저희 나름대로 기회를 찾아보겠습니다. 여기에 Team Småland의 경험까지 얻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박 사장이 말했다.
"경험을 기회로 살리는 것, 젊은이들 다운 생각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Team Kungsleden 멤버들의 창업 자금을 지원하거나 또 다른 지원 방안이 있는지 살피면서 계속 연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의 여정은 그렇게 끝났다.
끝났지만, 다시 새로운 시작은
스웨덴의 가을날 아침처럼 은은히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며.
에필로그.
브런치북의 첫 작품인 '마누라 속이기'를 내고 한 가지 잊혔던 꿈이 생각났다.
스웨덴의 21개 주 모두를 돌고 나면 그 한 주 한 주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릴 적 꿈이었던 이원복 교수처럼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언감 생심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이렇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스웨덴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집해 놓은 몇 박스의 자료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마치 산티아고의 순례자 길을 걷듯이, 그것은 나에게 숙제와도 같은 일이었다.
언젠가 그런 글을 써야지.
그렇게 시작한 2022.1.1 이후 3년 9개월이 넘게 걸려 2025.10.4. 57편의 글로 마무리를 짓는다.
나에게는 숙제 같은, 그러나 너무 홀가분한 일이다.
지금까지 딱딱한 외교관의 글이라는 비아냥이나
깊이가 없다는 비전문가의 글이라는 비판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왔다면,
이제는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10.4. 우리 집 내 공부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