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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급자족라이프 Aug 07. 2018

떠날 준비가 되어 있나?

#어느 9년 차 디자이너의 퇴사 일기

"떠날 준비가 되어 있나?"



나에게 질문을 해 본다. 


지금 있는 지역이나, 다니는 회사,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안정적인 삶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가? 


2010년 5월, 서울 자취방으로 이사를 왔다. 그전에는 학교가 있던 경기도 안산에서 살다가 취직을 1월 25일에 하고, 3개월 정도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안산에서 서울의 신사역 근처의 회사까지 출퇴근을 했다. 너무 힘들어서 서울의 보증금 4500만 원짜리 원룸 빌라에 전세로 들어가면서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8년 동안 한 회사에서 웹디자이너에서 영상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자취방을 한 번 더 이사를 했고, 2014년 6월에 신혼집을 구해 내 생에 첫 집을 매매해서 이사를 갔다. 2017년 12월까지 잘 다니던 회사를 이직해서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그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라고 하면 대충 짐작 가는 그 회사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은 너무나 좋아했고, 나도 이제 효도의 끝을 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회사를 이직하고 열심히 수원으로 출퇴근을 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내가 신혼집을 걸어서 5분 거리에 잡았기 때문에 9시까지 출근이면 집에서 8시 55분에 나와도 됐었다. 하지만 이직한 이놈의 대기업은 자율 출퇴근이라는 허울 좋은 제도가 있었지만, 출근버스가 아침 7시면 끝났기 때문에 나는 6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늦어도 6시 40분에 집에서 나서야 7시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갈 수 있었다. 출근하면 7시 40분 즈음. 하지만, 퇴근은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 일이 있으면 10시~11시. 갑자기 보고자료 준비가 생기는 금요일이면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택시 타고 서울 집으로 왔다. 그러면서 잘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조금씩 생겼던 거 같다.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같이 살고 있는 아내와 많은 얘기를 이 시기에 나누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 질문을 서로에게 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을 나누었다. 하지만, 이직 후에는 퇴근 후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배가 부르니깐 동내 산책을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내 마음속에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는데... 힘들어서 그랬는지 아내에게 말해 버렸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



결혼을 2015년 3월 15일에 하고, 그해 가을. 아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너무 힘들다고 고민을 얘기했다. 당시 아내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회사에 고용되어 있었는데, 정규직이 되고 싶어 했지만 회사에서는 힘들다고 프리랜서 계약을 연장하는 식으로 가자고 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내가 벌고 있으니깐 쉬면서 디자인 포트폴리오도 준비하고 시간을 좀 가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내는 나의 응원(?)에 탈력을 받아 회사를 그만뒀다. 아내는 떠난 준비가 되어 있었나 보다. 하지만 1개월 정도 쉬다가 못 견뎌해서 다시 그만둔 회사를 들어갔다. 그리고 1개월 정도 일하다가 도저히 여기는 아닌 것 같다며, 진짜 그만뒀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첫 회사에서 8년을 내리 다녔는데, 아내는 회사를 총 5곳을 이직을 한 것 같다. 나보다 퇴사와 이직에 관해선 대선배이며 엄청난 경험을 한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떠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었나 보다. 8년 동안 한 회사를 다닌 건 초, 중, 고, 대학교 통틀어 제일 오래 한 곳에 머물렀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큰 불만사항이 없었던 회사였기에 오래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대기업은 차원이 달랐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하게, (여기서 편하게는 정신적으로 편하게이다.) 전 회사를 다녔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기존 8년 다닌 회사는 야근도 많고 주말에도 종종 출근해서 근무를 했었다. 대기업은 시간은 정말 철저하게 기록되고 교통비를 가장한 야근비도 챙겨주고 나름 삼시 세끼도 공짜로 주고 좋았는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내 나이 올해 36세. 이제는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살아보고 싶은 시간이 된 것(!) 같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이 자리에 철퍼덕 털썩 주저 않아 버티기 신공으로 5년, 10년 눌러앉아버릴 것만 같다. 아니다.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다. 떠날 준비는 마음의 결심이 섰을 때가 완성이 되는 것 같다. 난 떠날 준비가 되었다. 


이곳은 내 자리가 아니다! 떠나자.



서울살이 9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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