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급자족라이프 Aug 11. 2018

삶의 방향

#9년 차 디자이너의 퇴사 일기_두 번째

나라는 인간은 83년 8월생이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 나도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올해 만 35세.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되어버렸다. 서른다섯. 이 단어를 쓰면서 서른다섯이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말했는데, 약 5초간 멈춰버렸다. 난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살았나... 여러 생각들이 스쳐가고 또 스쳐온다. 나이. 더 이상 나는 적은 나이도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닌데, 왜 이제야 인생에서 방황을 시작하는 것일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우린 어떤 삶을 살았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내에게 나는 참 평범하고 모자람 없이 나름 유복하게 자랐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북 김천의 소도시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보내고 나름 시내의 공부 잘한다는 고등학교에 유학을 가서 시내의 30년 넘은 아파트에서 누나와 자취생활을 하며 미술학원을 다니고 한 번의 실패 후 재수를 해서 원하던 미대에 진학해서 졸업하고 어렵지 않게 교수님 회사에 취직해서 8년을 다녔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라고 하면, 고3 때 미대 진학에 실패하고 집에서 1년 동안 혼자 공부하면서 재수를 한 시간이지만, 또 지나고 나니 그것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혼자 집에서 EBS 인터넷 방송으로 공부하고, 혼자 방에 이젤에 종이를 깔고 비너스 석고상을 구입해서 소묘 연습 끄적끄적. 수능이 끝나고 대구의 유명한 입시미술학원에서 두 달 정도 미대 입시 시험 준비를 하면서 쪽방 같은 고시원에서 살았던 그 시절. 그때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고, 참 심플하고 명확해서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참 심플한 대학이라는 목표


대학생활은 참 낭만적이었다. 특히 1학년 생활은 정말 좋았다. 2학년, 3학년, 4학년도 아쉬움이 남지만 나름 연애도 하고 알바도 하고 여행도 가고 고시원에서 나오지 않고 한 달 가까이 미드에 빠져서 폐인처럼 살아보기도 하고 총싸움(서든 어택) 게임에 빠져서 몇 날 며칠을 새다시피 하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 더 방탕하게 놀지 못한 게 후회된다. 대학생활도 순식간에 흘러가고 취업의 압박이 느껴졌던 시간도 잠시, 고맙게도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고 작은 웹에이전시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8년을 다녔다.


첫 회사는 사실 작은 가구점이었다. 지금도 그 가구점은 잘 살아남아서 마니아들은 알만한 회사이다. 지금은 명동에 건물을 산거 같다. 그 가구점에서(가구+소품점) 9개월을 정식 직원으로 일했었다. 그때는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1년 동안 휴학한 시간들이었는데, 우연히 놀러 갔던 홍대에서 그 가구점을 발견하고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다. 나는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가구점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가구와 소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9개월을 일하는 동안 참 여러 가지 많이 배웠었다. 특히 몸을 쓰는 노동을 많이 해서 살도 많이 빠지고 인생에 다시없을 복근이라는 것도 구경했었다.


9개월째 근무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가구점 안에서 통유리로 밖을 보는데 햇살이 너무 눈부셨다. 이런 날은 나가서 햇살을 받으며 그냥 걷고 싶었다. 하지만 가구점 안에서 창밖을 바라만 보는 현실이 그냥 감옥이었다. 그리고 그 날로 중국으로 출장을 가신 사장님께 전화를 해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첫 퇴사의 기억이다. 그때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에 퇴사가 마냥 좋았다. 퇴사해도 돌아갈 곳이 있고 일단은 쉬고 싶은 생각이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 퇴사는 마음이 편하다.


웹에이젼시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사실 퇴사보다는 빨리 돈을 모으고 싶었다. 디자이너로 실력을 키우고 다른 대기업이나 복지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것도 바랬지만 빨리 돈을 모아서 결혼하는 게 목표였던 것 같다. 결혼이 목표였다기 보다 뭔가 삶의 숙제 같았다. 아니면 삶의 세 번째 스테이지를 깰 수 있는 중간 보스 같은 느낌. 첫 번째 스테이지는 대학 진학, 두 번째는 취직. 세 번째는 결혼. 그럼 네 번째는 임신, 출산, 육아? 다섯 번째는 내 집 마련? 승진? 10억 모으기? 생각하면 참 웃프다. 여하튼 세 번째 스테이지의 중간보스 결혼을 위해 돈을 1억 모으자는 목표가 있었다. 2010년 1월 25일에 입사를 하고 2015년 3월 15일에 결혼을 할 때까지 사실 1억을 모으지는 못했다. 근데 결혼을 했고 내 집 마련도 했다. 인생은 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결혼 후가 더 재미있어진다. 결혼 직후에 신혼생활을 보내는 1년은 정말 순삭 되었다. 지금은 결혼 3년 차.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섰다. 신혼생활은 적응의 시간이었고, 나름 잘 적응했다고 자평한다. 그래, 나는 잘 적응했고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지난 시간이 재미있었다고 생각되면 잘 보낸 시간들이겠지. 중요한 것은 그 결혼생활의 적응기는 적응기대로 나름 만족했지만, 삶의 목표가 사라졌다. 세 번째 스테이지를 깼는데... 다음 스테이지가 열리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서 돈을 모으고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지 삶의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삶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걸 결혼하고 나서 생각하게 되다니...

아니, 그나마 이 시점에서 고민하는 것도 다행인가?

그리고 또 결론처럼 다가오는 질문.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2018년 4월의 바다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은 그 이후로 계속되었다.


어쩌면, 퇴사 후 생활은 저 바다에 홀로 헤엄치는 나를 상상하면 된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참 아름답구나,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마냥 아름답고 평온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저 바다를 헤엄쳐 나가야 한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거친 파도를 헤엄쳐서 가야 한다.


그전에, 그 알만한 대기업 이직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