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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Mar 29. 2024

고객님 요즈음 스트레스 많으신가 봐요?

계기와 자각ㅡ2019년

" 고객님 요즈음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봐요? 새치가 많이 보이네요"


“아 그런가 보네요. 요즘 신경 쓸 일이 좀 많긴 해요”


나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미용실 스탭과 나눈 말이다. 그때는 단순히 스트레스 영향인가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 김실장은 대표님보다 흰머리가 많으면 어쩌누~~ 자기 관리에 너무 소홀한 거 아닌가?"


긴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윗분이 나를 보면서 던진 말이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 눈이 마주쳤을 때는 저분이 나의 머리를 쳐다본다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나와 눈이 자주 마주쳤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시선이 맞추질 때마다 미소를 지었던 나와는 다르게 그분은 나의 머리색을 살피고 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영광까지 누리게 나는 당황해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당연히 나의 입도 함께 얼어붙어서 아무 답변도 할 수도 없었다.


도로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 나

머리를 자꾸만 만지고 있는 나

그런 나를 보듬어주지 못하고 있던 나


대표님은 신경 쓰지 말고 업무에 집중하라고 나를 다독여주셨고 동료들도 똑같은 말로 거들어 주었지만 별일 아니라던 그 새치가 그때부터 별일이 되어 나의 주변을 서서히 맴돌기 시작했다.   


그게 한 번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분의 시선은 계속해서 나의 머리색을 살피기까지 했고, 어느 날은‘김실장은 염색은 안 할 건가?’ 라며 던진 말이 마치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동료의 눈동자들마저 가세해서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들 속에서 발생되는 불안과 불편함은 키 작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급기야는 복사기 종이 출력소리까지 마치 스트레스 스트레스라는 메아리로 들려오기까지 했다.     


아마도 흰머리라는 단어를 자각하고 의식하게 된 시점이 그때부터였던거 같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업무에 집중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머리색 한방에 커리어가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게 그런 말을 듣기 전에 알아서 염색을 하면 그만이었을 것을 나는 어쩌자고 그분이 말하는 용모단정의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이 돼버린 것일까?        


사실 나는 피부가 민감한 체질이다. 염색 화장품 등 여러 과정을 경험하고 나서야 일반적이지 않은 체질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염색을 하면 눈이 시리고 두피가 따가운 것은 기본이었고 화장품은 역시 피부에 맞는 제품을 고르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자기 관리 소홀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고통을 참으며 염색과 화장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나의 노력과는 달리 흰머리라는 복병에게  발목을 잡히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없이 맑은 날인데도 우울했고,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도 귀에 들어 들어오지 않았으며, 모든 것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 별일 아닌 별일이 나의 일상과 사회생활을 침략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나는 마음의 창문을 꼭꼭 닫아버렸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마음구겨져가고 있었다.   

    

마치 결재를 반려당해
 결재판안에서
납작해진 서류처럼 말이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흰머리로 살아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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