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거나 말거나, 별일이 있거나 말거나, 여전히 시간은 잘도 흘러갔고 흰머리를 곁에 두고 술 먹은 다음 날 나는 정확하게 오십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족도가 커서였는지는 몰라도 흰머리도 그렇고 나이 오십이 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다. 마흔아홉에서 오십 사이에서 생겨나는 온도 차이쯤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가 듯 뭐 대수일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흰머리로 생겨나는 불편한 경험과 사회 속의 학습된 선입관 사이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나이 탓이라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나이는 나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채 숫자만 커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너무 빠르게 감기는 감정의 속도로 마음속에는 멀미도 찾아왔다
내 흰머리가 무슨 바이러스도 아니고 그저 다른 모습일 뿐인데 왜 내가 주저하고 피하고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 역시 흰머리는 처음이라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하나둘씩 찾아오는 불청객들 때문에 평온했던 생활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면역력이 없었던 나였기에 마음에 틈이 생겨도 방어를 할 수 없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해서 찾아도 봤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그 미로속에서 오도 가도 못했던 나는 결정을 하기로 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에 예방접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살아보기로 하고 모월 모일 모시에 나는 드디어 회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