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홈쇼핑에서 염색제가 나오면 주문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저기에 해당 사항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염색을 멈추고 자연인으로 사는 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현재 내 머리의 60% 정도를 흰머리가 점령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반은 유전, 반은 스트레스라고 말을 해야 하나. 친정집에서는 나 그리고 오빠와 막내가 흰머리가 많다. 그런 나를 아버지가 마음 아파하며 바라보곤 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나서 그 슬픔으로 흰머리가 더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다.
내가 염색을 멈춘 이유는 민감한 피부타입인 나의 건강과 관련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스운 건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보다 "우리가 벌써 그럴 나이는 아니지, 염색을 안 하고 할머니처럼 다닐 그런 나이는 아니지 않나." 라면서 나보다 더불 편한 기색을 비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감 안 되는 타인들이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말들을 들었던 때가 벌써 몇 년 전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나의 흰머리 덕분에 에피소드 부자가 되었고, 그에 따른 희로애락 또한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까지 흰머리의 이미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50줄에 들어선 나는 그 대열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게 된다면, 그 첫 번째 소재가 흰머리는 아니기를 바랐다. 왜냐면 그동안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서 받은 상실감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하지만 그동안 저장해 준 글을 정리하면서 보니까 어두운 문장만 있지 않았고 시작은 어수선한 감정이었다면 나중에는 마음의 결이 정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도 읽어봐 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흰머리를 소재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발행되는 글은 읽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공감이 되기도 하고 공감이 전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흰머리를 유지하면서 살기로 결심하고 염색을 멈춘 2019년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상황을 나의 관점으로 정리했기에 지극히 주관적인 ‘나만의 염색 해방일지’ 임을 미리 말해 두고 싶다. 현재는 나의 탈 염색 선언을 지지해 주는 가족과 지인들 덕분에 검은 머리의 사람들 틈에서 보통사람으로 평화롭게 공존 중이다.
그냥 흰머리로 살아남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