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흰머리를 맞이하기 위해서 늘 다니던 미용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나를 담당했던 스탭이 퇴사를 했단다. 나도 모르게 '아~ 또 설명을 해야 하는 건가?'라고 혼잣말을 해야만 했다. 왜냐면 새로운 분에게는 그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다시 설명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 스탭 : 고객님 염색하실 거지요?
- 나 : 아니요~~~
- 스탭 : 네에?
- 나 : 머리 컷만 하려고요
- 스탭 : 염색하는 거 아니고요?
- 나 : 네
- 스탭 : 아니 왜요? 흰머리가 이렇게 많은데~~~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그분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기 말만 하면서 흰머리는 옳지 않은 선택이라는 듯 나에게 염색에 대한 동의를 계속 이끌어내려 애를 썼다.
- 나 : 왜 꼭 염색을 해야만 하는 건가요?
- 스탭 : 네^^ 제가 보기에는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 나 : 그럴 나이요? 그럴 나이의 기준은 뭘까요?
- 스탭 : 그게 아니라 고객님은 아직 젊으시잖아요~~~
그분의 직업정신에 인내심을 가지고 두피가 예민해서 염색에 대한 불편함이 있어서 그런거라고 또다시 나의 생각과 상황을 설명을 했다.
- 스탭 : 그래도 고객님이 부럽네요
- 나 : 제가요? 뭐가요? 왜요?
- 스탭 : 저랑 비슷한 나이신 것 같은데 그런 결심을 하신 게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 나 : 대단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 스탭 : 아니에요. 저도 사실은 미용사지만 흰머리가 많아요. 염색이 불편해도 저는 아직 그럴 용기까지는 없어요.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니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요. 혹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나는 새로운 스태프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그렇게 결심한 계기까지 한참 동안 설명을 해야만 했다. 나의 설명을 다 듣고 난 그분은 무작정 염색만 권했던 게 미안했던지 갑자기 맥락 없는 말에 친절함을 입혀서 이렇게 말했다.
- 스탭 : 흰머리가 원래 손질이 잘 안 되는데 손님의 흰머리는 말을 참 잘 듣네요.
- 나 : 그런가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 손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의 상황이 생각이 나서 피식 웃으면서 혼잣말을 해보았다.
나는 누구의 말을 잘 듣는 편이 아닌데~~~ 말 잘 듣는 흰머리라니~~~ 그래 착하다. 나의 흰머리야~~~ 너라도 말을 잘 들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