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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옹 Jan 26. 2023

2023년 귀속 구정에 시댁에 가지 않았습니다.

부부상담을 받게 되기까지

이번 구정에는 아니, 올해 구정도 시댁에 가지 않았습니다.

명절에 처음 집을 나간 이후 끝없는 싸움에 지쳐갈 무렵 남편과 영화 'B급 며느리'를 봤습니다.

... 도움이 되지는 않더군요.

저는 쉴 새 없이 울기만 하고, 당시 남편의 심정까지는 제가 살필 여력이 되지 않아 마음대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제가 험한 말로 남편의 부모님을 비난하면 남편은 남편을 향한 공격으로 받았던 것 같아요. 이 싸움이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2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성향이 일단 다릅니다. 저 포함하여 남편과 남편의 부모님도 모두 다른 성향과 가치관이 있겠지요. 대한민국의 모든 시어머니가 다 똑같지 않습니다. 당연히 며느리라는 타이틀을 가진 개개인도 마찬가지겠죠.


상황을 제 기준으로 늘어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지겹잖아요. 판단하는 제삼자도 본인의 시선에서 사실을 왜곡할 수 있고요. 경험을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의 감정 외에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 기억해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아요.)


첫 단추.

남편과 아직도 다툴 때마다 나오는 단어입니다.

첫 단추를 잘 못 채웠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니 저에게는 그 단추가 너무 많거든요. 그렇게 느껴져서 화가 납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뭘 바꿀 수 있을까요. 모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을 겁니다. 모두가 잘해보려고 노력했고, 의식하지 못한 채 쌓이는 욕심과 감정들은 늘 문제를 일으킨 뒤에 수면 위로 올라오기 마련입니다.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는 바운더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마음속으로 조금 느끼고 있을 뿐 문제라고까지 생각지 못했어요. 늘 배려하고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좋고 싫은 것은 중요치 않고, 남들의 기분을 먼저 살핍니다. 전형적인 착한 00 콤플렉스로 보일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관계를 망치기도 합니다.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이의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까지 불편한 상황이 되면 내 잘못 같습니다. 죄책감은 늘 저를 따라다니고 저는 그 불편한 감정들을 제 힘으로 해결해 보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팡- 터지는 거죠. 그렇게 되면 터진 감정 파편을 맞은 사람들은 저를 원망합니다. 저는 설명할 수 없어요. 모든 걸 잘해보고 싶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남편과 결혼을 하면, 시부모님은 평생 가족이 됩니다.

작은 불만도 의견을 내지 않고 잘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남편과 싸우게 되었고요. 이 부분은 좀 뻔하지만 모든 뻔한 사연들이 모두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에 빌런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 속 나쁜 시어머니나, 악마 같은 존재가 있다면 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아들을 잘 키워내시고 평생을 열심히 사셨던 시부모님께서는, 저도 같은 도리를 다 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바운더리에 문제가 있는 저는 어디까지 선을 둬야 하는지 생각지도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남편에게만 표현합니다. 당시에는 직접적으로 싸우지도 않았어요. 온갖 것들이 핑계가 되었죠.


잘하다가 뒤집어지고, 잘하다가 나자빠지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징조가 있었지만 지혜롭게 해결할 방법을 몰랐던 저는 남편의 "(앞 내용 생략) 이럴 거면 나가." 한 마디에 그간 어렵게 땋은 밧줄을 끊어버리고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3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도 시부모님께 직접 대면하고 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박또박 말대꾸하며 제 할 말을 다 해버리고 싶기도 하고, 그냥 안 보고 사는 지금이 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득 찾아오는 슬픔과 죄책감이 저를 짓누릅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이 안쓰럽기도 하고요. 이렇게 살 수는 없겠죠. 절대 남들과 비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남들은 어떻게 산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해요.


흘러가 부서지는 문제들도 있지만, 절대로 잊히지 않는 바위 같은 문제들도 있을 겁니다. 수동 공격과 회피로 수년을 흘려보냈지만 이제 조금씩 용기를 내서 제 결혼생활을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집 나간 일이 있고 체력이 바닥날 정도로 매일을 싸우다가 우리는 부부 상담을 받기로 합니다.

시부모님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남편과 제가 싸움의 심판이 필요했고 해결사가 나타나 뿅 하고 답을 알려주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한 회에 11 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부부상담을 한 이야기는 다음에 편에 이야기 할게요.


모두 새 해 복 많이 받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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