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휴가를 당했습니다
공상이 망상에 가까워질 때가 있습니다. 글은 수십 페이지를 써 내려가면서도, 꿈속의 일처럼 현실에서는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해지지 못한 부끄러움이 나를 고립시킵니다. 주변의 누구도 나의 고립을 알지 못합니다. 우물 속으로 가라앉는 나를, 그 일은 철저히 내 안에서만 벌어집니다.
용기를 내어 올려왔던 작은 조각들, 관계를 위해 기울였던 관심과 정성 역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머지 것들에 함께 휩쓸려 버립니다. 관계를 잘 이어가지 않는 사람의 고독은, 이름 붙일 수 있는 병보다 오래갑니다. 그 고독의 증상은 의외로 무감각에 가깝습니다. 외로움을 또렷하게 느끼지 못하는 대신, 정보와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립니다. 탑은 점점 높아지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바깥의 기척은 차단되고, 안쪽에서는 설명만 늘어납니다.
현실세계에 비교적 견고한 문받침이 있어 나오는 법을 잊지는 않습니다. 다만 안전하다고 믿는 구조물 속에 머물러 있을 뿐. 프로이트 이후 ‘자아가 현실을 견디기 위해 사용하는 완충장치’라는 말은 ‘경계에 선 사람’에게 사용하기에는 거칠고, 애매모호합니다. 무너지는 쪽도, 적응하는 쪽도 아닌 채 경계에 서 있으며, 안과 밖을 동시에 의식하는 자리에서 완충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둔하고 방어라는 말은 지나치게 단정적입니다.
보호받고 있다기보다는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에 가깝습니다. 덜 닫힌 문의 틈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표면을 잘 싸고 있는 ‘침착함’의 외피는 혼란이 새나가지 않게 잘 눌러줍니다. 침착함과 조용한 혼돈은 이제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습니다.
나는 침착함을 연기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가장 오래 연습해 온 기술입니다. 침착함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택해 온 결과에 가깝습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몸에 남지 않았을 것이기에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계획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오르는 사다리’ 같은 것입니다. 확언과 몰입과 증명할 수 없으나 존재하는 힘을 믿는 내게, 존재를 드러내는 유형의 것은 이런 무형의 것들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헛수고하는 나의 의지
면역체계는 어느 순간부터 연쇄적으로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 몸은 사소한 자극에도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을 테고, 그 긴장은 대부분 의식되지 않은 채 반복되었을 것이다. 나의 의지와 생각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세세히 알아차리기에는 지나치게 무심했고, 동시에 필요 이상으로 강했다.
작년 8월부터 시작된 이석증은 올 3월까지 끈질기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었다. 2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난파선 위에서 언제 육지에 닿을지 모른 채 뱃멀미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이석증이 이렇게 자주 재발할 수는 없어요.”
이석치환술을 하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말이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회복이 너무 느려요. 걱정이 됩니다. 하던 일을 조금 줄이시는 것이 좋겠어요.”
한의사의 말이었다. 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조금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일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님을.
나의 몸은 스트레스를 흡수하는 스펀지에 가까웠고, 나의 의지는 몸의 신호를 가볍게 무시한 채 항로를 정하는 단독 항해자 같았다. 이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작동 방식에 가까웠다.
존재의 네 개의 기둥을 믿든 믿지 않든, 우리는 보이지 않는 힘과 구조적인 제약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들은 여러 이름의 법칙으로 불리고, 언제나 진리에 가까운 얼굴과 임시적인 얼굴을 동시에 지닌 채 작동한다.
그 힘은 내게 빛남과 억압을 동시에 주었다. 완성도를 밀어 올렸지만, 그 완성을 세상에 내보이는 통로는 스스로 좁혀왔다. 나를 가장 자주 거스르고 억압한 존재는 언제나 나였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드러내기보다, 내부에서 더 단단하게 붙들어 두는 쪽을 택해온 삶. 그 선택은 어쩌면 말로 드러나지 못한 채 내 가슴 안에 멍울처럼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몸이 감당하지 못한 몫을 의지가 대신 떠안아 만들어낸 무형의 것들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업적이나 성취라기보다는 몸이 감당하지 못한 세계를 대신 지탱하던 구조물에 가깝다.
과도하게 예민한 감각
통제 가능한 질서
견디는 법을 미리 만들어 두는 능력
드러내지 않는 성실함.
무형의 것은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대신 버텨준 것이다.
몸이 쉬지 못할 때 의지가 대신 서 있었고, 면역이 흔들릴 때 사유가 버팀목이 되었고, 회복이 느릴 때 의미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러므로 만들어진 무형의 것은 잘못된 결과가 아니다. 다만 너무 오래, 너무 성실하게 혼자 서 있었을 뿐이다. 그런 의지에게 나는 섣불리 내려오라 말할 수 없었다.
고독하게 정제된 내면의 도서관은
일상적인 소음을 잘 견디지 못해 예민한 감각을 안으로 소급하며, 오랜 시간 사유의 탑을 쌓아 만든 것이다. 세상에 발표되지 않았거나 인정받지 못했지만, 머릿속에는 수십 권의 책과 수만 개의 문장이 완벽한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무형의 서’가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육체가 무너지는 중에도 의지가 쉼 없이 지어 올린 차갑고도 정교한 성채일 것이다.
경계인의 시선이라는 비극적 특권은 장편을 썼던 그 시선,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선상에 세상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관조의 능력일 것이다. 나는 건강할 때조차 죽음의 냄새를 맡고 그것을 언어로 치환해 왔다. 이 시선은 때론 통찰을 주지만 동시에 평범한 일상의 행복에서 나를 소외시키는 억압으로도 작용했을 것이다.
실패하지 않은 증명에 대한 집착과 자부심은 몸이 신호를 보낼 때조차 단독 항해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혹은 ‘나는 버틸 것이고, 넘어져도 결국은 일어설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의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기준, 내게 굴복하지 않는 나’라는 차가운 자부심. 그것이 몸을 깎아 얻어낸 무형의 훈장일 수 있다.
언어로 명명된 고통의 데이터베이스는 아픈 순간에도 끊임없이 사유했다. 고통을 그냥 당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포획하여 소유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세상을 나만의 언어로 재정의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싶었다.
운수 좋은 날
12월 31일. 의혹을 털어내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공모전에 쓸 주제를 머릿속에 굴리며 요가원을 빠져나왔다. 겉으로는 침착하고 평온하지만, 머릿속은 늘 바쁘게 움직였다. 감각은 예민하게 미쳐 돌아가는데 얇은 외피하나로 예민한 감각을 감싸 안으로 안으로 소급했다.
찾아간 영상의학과 의사는 오랜 시간 영상을 봐온 이의 피로함과 알듯 말듯한 표정이 함께 있었다. 좌측 딱딱하고 다소 큰 형태의 혹 위에 초음파 기기는 오래 멈춰 있었다. 힐끗 의사의 표정을 살폈다. 알 수 없음. 그러나 멈춰 선 손으로 알 수 있었다. 양 쪽 겨드랑이를 번갈아 오가던 손은 필요한 모든 사진을 촬영했는지 급하게 곁을 떠났다.
침착한 이들의 표정을 잘 알았다. 말을 아끼고, 눈으로 말하는 이들을 잘 알고 있었다. 의사는 당일 조직검사가 가능한 병원과 암센터를 추천해 주었다.
“암인가요?"
"혹이 이렇게 빨리 자랄 수도 있나요?"
"암이라기엔 혹의 크기가 너무 큰 건 아닌가요?"
라는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고저 없는 음성, 군더더기 없는 말투로 상품에 대해 묻는 사람처럼.
받은 소견서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거대한 저에코 결절’, ‘미세석회화 관찰’, ‘임파선 비대’, ‘Category4’ 이는 ‘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를 시사했다.
2025년 12월 31일의 마지막을 암 소식으로 마무리하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결절이 만져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중요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들을 처리하며, 요가수업을 계속했다. 모르고 있을 때 나는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른 병원들은 예약일이 늦었고, 31일 ‘운수 좋은 날’처럼 당일 나를 봐준다는 병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암인지 아닌지 모르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요가 선생님들의 배려로 '실체는 있으나 진단되지 않은 병'으로 <강제 휴가 중>입니다. 이미 받은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으니,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그들의 고마운 마음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입니다. 기다리는 일을 가장 잘 하는 줄 알았는데, 가장 힘든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소리글님이 문틈으로 안에 있기는 하냐고 소리쳐 주셔서 근황 전합니다. 어려워서 하루에 한 쪽 읽는 책도 있지만, 쌓아두고 읽는 재미가 좋습니다. 어제는 산에 오르고, 내일은 명상하러 갑니다. 혹시 제 안부가 궁금하셨다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