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태이 Sep 11. 2022

<Ep.8> 자기만의 책상

버지니아 울프와 동료들

 8. '자기만의 책상' 이 있습니까 ? 

 




  현재 쓰고 있는 책상을 갖게 된 건 4년 전쯤의 일이다.


  이사를 하면서 식탁을 주문해야 했는데 나는 테이블에 다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세라믹 식탁을 하나 주문했다가 다시 원목 테이블을 거금을 들여 주문 제작을 했다. 세라믹 식탁은 취소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사유로 취소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다소 의도한 바가 있었다. 그러니까 애당초 취소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저지른 일이었다. 어른이 되어 저지른 몇 개 안 되는, 나의 깜찍함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지 이미 백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여성들이 식탁에서 자기 일을 한다.


무조건 테이블을 사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테이블 하나 들이기 위해서 공간, 취향, 가족 간의 인정 같은 게 필요하다는 걸 너무 잘 안다.      


  특히 가족 간의 합의에 있어서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지가 여기 반영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한다.


사람들에겐 양보할 수 있는 안건과 포기할 수 없는 안건이 있다.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포기가 안 되는 것들도 있다. 내겐 테이블이 바로 그것이었다.      




  글태이와 현태이로서의 생활을 고백한 후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한 동료분은 ‘태이 님의 24시간을 관찰해보고 싶어요.’라고 하셨다. 지금처럼 사는 게 가능하냐는 뜻이었다.


한 인친님도 ‘이렇게까지 하면서 글을 쓴다고?’라고 하셨다. 분명히 감탄 아닌 질문이었다.      


  작년 어느 하루, 내게 중요한 것들을 종이에 주르륵 적어놓고 우선순위를 매겨봤다. (할 짓이 없어서 해봤다.) 갈등 끝에 (누가 시키지도 않은 엄숙한 갈등이었다) 모두 추려내고 마지막에 두 개가 남았다.  


마지막 순간에 도깨비가 나타나 하나만 고르라고 할 때 내 대답은 뭘까? 아직도 그 순위는 치열한 공방 중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는 거다.

인생이란 자전거와 같다’고 하는 비유가 있다.


이쪽 또는 저쪽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며 가야 한다는 뜻이다. 무난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도 서운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건 그 모든 것에 어느 정도만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공한 사업가들의 추천 책으로 자주 등장하는 ‘원씽’이라는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뷰에 따르면 내가 말하는 그런 의미를 담은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나에 오랜 시간 매진하는 동안 그것이 무엇이든 깊어지고 뾰족해질 것이다. 둥글어지는 것보다 뾰족해지는 게 더 나은 건지도 아직 내 마음은 공방 중이다.


하지만 지금 하는 걸로 보자면 점점 뾰족해지는 쪽으로 내 삶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      



  집안의 어느 장소도 내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순간에도 이 책상만큼은 분명히 내 것이다. 그런 영역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는 걸 나는 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 책상도, 책상만큼의 방도 허락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안다. 책상은커녕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느냐고 질문을 받는 이도 있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런 이를 피해 숨죽이면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적는 이가 있을 거라는 것도 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몰래 홀로 적어 내려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불편해할 거라는 걸, 물론 안다. 내가 그랬듯이.      




  이 무용한 일을 왜 하는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다.      


  생활이 아니다. 돈이 아니다. 나 자신이 유용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서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일을 홀로 하면서 '언젠가는'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게 기만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내가 나를 이해하는 데에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글을 적어 내려가며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을 수십 번 고친다. 그건 나를 고치는 경험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이 비단 글쓰기 자체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원래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여성의 글쓰기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에 한 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 바로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할 용기"다.

  이 글을 쓰고 보여주는 게 나에겐 용기다.


  하지만 요즘 같아선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동료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의 글쓰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동력 역시 동료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겐 든든하게 자신을 조력해주는 남편 레너드가 있었지만 그뿐인 건 아니다. 아주 친밀하게 교류하던 모임이 있었고, 연인이자 친구였던 비타도 있었다.


그녀가 이렇듯 고독하게 혼자서 쓰지 않았다는 건 부러운 일이자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도저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도 확신할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동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묻혀 나도 그럭저럭 하루를 굴리게 된다.

그 후에야 비로소 하루가 주어졌음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내 현실 속에서는 주변에 어떤 것이든 쓰는 친구들이 없다. 있었으나 그만 쓰거나, 이제는 멀리 사라졌다. 내가 지금처럼 뭔가를 쓴다는 걸 아는 이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말하는 동료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건 바로 여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네모난 창 밖의 당신 말이다.


오늘도 당신에게 기대어 이 글을 적는다. 그리하여, 이 글을 다 지운다면 다섯 글자가 남는다.

고맙습니다.  



-220906. 끝.-



항상 읽어주시고, 얘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석을 핑계로 감사하다는 말씀 한 번 더 나눕니다.


--------

@tae.i22 에서 더 자주 소통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