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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Dec 06. 2021

부치지 못한 당선소감

우체국이었습니다. 봉투에 빛깔 좋은 시를 곱게 넣어, 세상에 보내는 편지라 생각하고 부쳤습니다. 영수증은 종이로 달라고 했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호주머니 한켠에서 조그마한 영수증 하나가 계속해서 부시럭거렸습니다. 집에 와서는 영수증을 반으로 접어 두꺼운 김춘수 시전집 책 사이에다가 끼워 넣어놨습니다. 당선되면 꼭 선생님만큼 오랫동안 시를 사랑하겠다고, 당선이 되지 않더라도 시를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겨울이면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바다는 매번 달랐지만 저를 철썩 혼내기도 하고, 무심히 위로해주기도 했습니다. 시로 좌절해도, 다시금 시는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이불같은 파도. 나를 덮어주는 시. 그래서 시를 썼습니다. 가끔은 몸안이 온통 시로 가득 차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자연과 기억들이 어우러지며 문장들이 슬금슬금 나왔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제 손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문장을 쓸 때면, 저는 집 앞에 있는 어둡고 큰 공원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가끔은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를 보면 흐느꼈던  어깨가 보입니다. 고개를 숙이면 더렵혀진 신발도 보이고요. 매번 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시를 만나고 나서는, 어둠속에서 더이상 헤메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 이후로 시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겠지요. 정말 있는 힘껏 실컷 사랑할 것입니다. 저를 세상에 내보일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모든 시인님들. 부디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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