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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놀부며느리 Feb 06. 2024

아빠, 아무생각말고 치료에 집중해요

나는 스무살때 집을 떠나 대학생활을 했고 

스물넷에 고향에 돌아와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결혼식 입장 연습할때

아빠 손을 처음 잡아 봤다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아빠의 손이 너무 딱딱했고 

나는 평생토록 자식 키우느라 고생한 아빠 손을

처음 잡아 봤다는 것 

그 자체가 서러웠다. 


우리는 왜 이렇게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왜 그랬을까?


어차피 결혼이라는 걸 한다면 지금 내 옆에 

이 남자와 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 하나 지금하나 크게 달라질게 없다면

그냥 빨리 해버리자!

그 마음을 먹었던 건 

어쩌면 시댁 어른들의 표현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빠에게 사랑한다 말해본적도 없고 

들어본적도 없이 

스물 다섯이 되었는데 

남편을 만나는 동안 

우리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나에게 수십번도 넘게 사랑한다 말해주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거의 시부모님을 우리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도 나는 친정보다 시댁이 편하고 

엄마아빠보다 시부모님이 편할 정도로 참 희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아빠가 아프다고 한 날 

나는 내가 아빠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가 말을 듣지 않으니 화를 냈고 

전화도 띄엄띄엄하던 내가 

매일 같이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하루하루 달랐다. 


하루는 말이 괜찮아 졌다가 

또 하루는 정말 술취한 사람같았고 

티비에서나 보던 뇌경색환자의 어투였다. 


아빠는 의지가 강해서 

본인 목소리를 녹음하고 비교해가며

말하기 연습을 하는 중인지 

수시로 나에게 전화가 와서 어제랑 오늘이 

어떻게 다른지를 물었다. 


'아빠, 어제보다 완전 괜찮아 졌어'

'응? 그래? 허허. 다행이네. 좋아지는것같다'


이렇게 끊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더 심해 졌는데?ㅠㅠㅠㅠ' 하며 엄마랑 뒤에서

아빠 뒷담화(?) 를 까기도 했다. 


어쨋든 아빠는 매일 매일 입에 바람을 불어넣고 

말을 하고, 연습을 하더니 어느정도 괜찮은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5일 정도 만에 퇴원을 했고 

집으로 돌아와 

일상생활을 하는가 싶었다....



병원에서 약을 몇봉지 받아왔고

내가 준 건강식품도 한박스씩 끓어안고


그렇게 새 아침을 준비하는 듯 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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