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가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사람 많은 장소에서 발견했다면 그건 내 의지로 그 장소에 갔다기보다는 마땅히 그곳에 가야 하는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 학교에서 칼리지 페어가 있었다. 700명이 넘는 사람이 싸인업 했다는 이벤트는 체감 10만 명의 사람들로 가득했고 왕왕하는 말소리와 소음에 정신줄을 잡고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2부로 나눠진 행사의 1부가 끝났을 때 나는 내향형 초능력을 발휘해 교장실 앞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장소로 숨어들었다. 아— 평온. 그런데 잠시 후 나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조용한 곳으로 안테나를 세운 내향형 부모들이 하나 둘 교장실이 있는 건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내향형이 모여있는 모습은 재미있었다. 우리 - 그래, 우리라고 하자- 는 모두 혼자 서 있었고, 모두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안도하고 있었다.
누구도 스몰토크를 시작하지 않았고, 누구도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지 않았고, 누구도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나의 짧은 평온은 이제 곧 2부가 시작되니 이동하라는 방송을 마치고 복도를 지나가던 외향성 선생님의 "Everything alright?"라는 질문으로 끝이 났다. "Sure, yeah. Such an informative event! "라는 말을 시작으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고 2부 행사가 마련된 곳으로 나는 선생님과 함께 대화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내향형 인간이라서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 친절할 수 있고 얼마든 즐길 수 있으며 얼마든 주도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선택할 수 있는 경우라면 혼자서 조용히 구석에 있고 싶은 것뿐이다.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내면의 삐걱거림은 피곤함으로 남는다.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는 여지없이 길을 잃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것은 인간의 뛰어난 생존 기술 중 하나다. 그 기술 덕에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아 여기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어 적응은 하고 있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뒤로 물러서겠다는 나의 한결같은 선택은 어쩌면 나를 종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말 사회부적응자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위로라면 종국에는 우리 모두 죽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일 테고, 또 하나 굳이 위로를 찾자면 나는 "자발적" 사회부적응자라는 것일 테다.
잊지 않고 나를 불러주고 초대해줘서 고맙다. 그렇지만 나는 불리지 않아도 초대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냥 그래도 나는 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