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하려고 하는 것일까 안하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의 성장은 보통 차근차근 준비한 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갑자기 시작하게된 일에 달려있다는 글을 적기가 무섭게 갑작스런 조직개편으로 히스토리를 잘 알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도대체 세상은 날 얼마나 성장시킬 셈인지... 그만해도 될 것 같지만 무튼 그 프로젝트는 개발 협의도 진행되지 않았는데 시작부터 6개 이상의 팀이 얽혀있는 복잡한 일이었다. 이제 개발팀까지 붙게 되면 우리는 약 25678개의 팀과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팀이 얽혀있는 프로젝트는 보통 뭐랄까..일의 주인이 있지만 없다. 어떤 경로를 통해 내려온 미션인지 대부분은 알 수가 없지만 누군가가 총대를 매고 어떤 상황으로 인해 이 프로젝트의 당위가 부여되었음을 최초로 선포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은 선택하고 이의를 제기할 자유와 기회가 없다. 물론 있었다고 해서 변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어영부영 시작되어 버린 일은 타 부서에서 시작한 일이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우리 팀이 해결해야 할 일이 되어버리고 그것이 지연되거나 잘 굴러가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주최하게 된 부서의 책임 회피나 핑계거리로 쓰인다. 회사에서는 정말 멋진 것을 만들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주간 단위로 하게되는 보고에 무엇이라도 적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6개의 팀들은 같은 일을 하고있지만 놀랍게도 니즈와 바라는 것은 모두 다른데 오직 '보고 해야하는 니즈' 하나가 같아서 이 마저의 일을 같이 할 수 있게 되는 건지 싶다.
이 프로젝트도 역시나 그런 일 중 하나였다. 우리 팀이 주최하게된 미션은 아니였지만 잠깐 조직개편에 정신이 팔려있는 상태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팀이 멱살을 잡고 끌고나가야하는 일이 되어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한 프로젝트에 총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프로젝트라는 것이 그렇듯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들어야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의미있게 만들어야했다. 거기까진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지만, 불행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초점을 두는가에서 찾아온다. 우리 팀은 무언가의 의미에 초점을 두었던 반면, 대부분의 팀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받은 미션을 빠르게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것을 구현할 때 조금만 변주를 준다면 유저에게 회사 내에 속해있는 다른 서비스를 경험시킬 수도 있었고, 이익이 될 만한 행동을 유도할 수도 있었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선택에는 참여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이왕 만들 것을 잘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우리팀은 여러 의견을 냈다. 유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만든 것을 더 많은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반응은 무척이나 날서있었다. 말투는 무척 부드러웠지만 하고싶으면 우리 팀의 일도 너네 팀에서 가져가서 하라 정도의 반응이었다. 피곤했던 걸까? 다 같이 웨이트라도 해야하자고 하나 싶을만큼 무기력했다. 어떤 의견이 본인의 팀에서 해야할 일이 된다면 성급하게 선 긋기 바빴다.
물론 빠르게 구현을 하는 것이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긴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그런 프로젝트가 아니었고, 구현이 아닌 생산적인 일로 만들기 위한 논의가 정말로 싸그리 무시된다는게 슬펐다. '빠른 미션 수행'과 '우리 팀이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정리하는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팀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는 정말이지 이렇게 재미없는 일이 없을 수가 없다. 우리는 회의라는 것을 하려고 하기 위해하는 것인지 안하려고 하기 위해 하는것인지 가끔 아니 자주 의문이 든다.
가끔 다른 회사에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 할 때면 '어떤 회사에 가고싶은데?'라는 질문을 듣는다. 많은 회사에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네임밸류나 직급, 복지나 연봉에 관계없이 '의미'에 집중하는 회사에 가고싶다는 생각이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져서 합리화된 의미말고, 그 의미에 대해 진짜로 논의하고 토론하며 찾을 수 있는 회사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재미는 의미있는 프로덕트를 함께 만들어갈 때 생기는 것 같다.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다룬 패티맥코드의 책 <파워풀>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이 믿고 존경하는 동료들로 이뤄진 제대로 된 팀과 함께, 미친 듯이 집중해 멋진 일을 해내는 것."
넷플릭스에 다니고 싶다는 말은 아니지만 정말로 하나도 버릴 단어가 없는 문장이다. 자신이 믿고 존경하는 동료들, 제대로된 팀, 미친듯이 집중, 멋진 일. 해내는 것.
모든 단어가 소중하지만 결국 이 문장이 '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 처럼 이제 안하려고 하는 회의 그만하고싶다는 이야기를 길게 끄적여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