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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홍 Dec 31. 2021

나는 인간인데 당근과 채찍으로만 일해야할까?

<도쿄R부동산 이렇게 일 합니다>를 읽고

눈을 뜨고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출근하여 사무실 책상 앞에 앉는다. 사무직 종사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아니. 이제는 눈을 뜨자마자 책상 앞에 앉는다. 코로나 시대의 사무직 종사자의 삶은 이런 것이다. 일과 삶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고들 한다. 아마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며 일과 일하지 않는 공간과 시간이 분명하지 않아졌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일과 삶의 경계는 과연 공간과 시간만의 영역일까? 여기에는 어디까지를 일로 볼 것이고 삶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달려있다. 일과 삶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 반영되어있다는 뜻이다.


갑자기 보여주는 내 재택근무 환경,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침대 위험하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 이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일을 많이 했었다. 잘 하고 싶은 마음과 빨리 배우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일과 삶이 분리 되어있지 않는 시절이었다. 빠른 속도로 체력과 심력이 떨어졌다. 행복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무렵에 나는 완벽히 소진되었고 자연스럽게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시키게 되었다. 일을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마치고 남은 시간에 먹고 마시고 놀며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지치고 힘들다는 감정이 무의미하다는 감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일과 삶을 분리 시켜야할지 분리시키지 말아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한창 유행하던 때였다.



나는 확실히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 할 때의 내가 제일 멋지고 재밌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있는 고유한 에너지를 써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기쁨이 있었다. 실제로 몰입하며 일 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것은 사실이었고, 일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나 어떻게 일을 잘 할 수 있을까와 관련된 고민들을 나누는 것이 어떤 가십이나 드라마 이야기보다 흥미로웠다. 물리적으로는 가장 좋은 시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을 분리해서 나의 삶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일을 함으로써 만들고 나눌 수 있는 좋은 영향력과 메시지를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 알리며 삶을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다면 그 누구보다 일과 삶이 하나였던 사회초년생일 때의 나는 왜 불행했던 것이었을까. 그 이유는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조직 안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더라도 일을 하면서 생기는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먼저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것을 은근슬쩍 요구했다. 승진하고 연봉이 올라 경제적, 사회적 풍요가 생기는 '그 때'가 되서야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고 하며, 주변의 갖은 예를 들며 그 것만이 정답이고 당연한 루트인 것 처럼 이야기했다. 결론은 늘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내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이며, 조직 문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내 역량이 부족한 탓으로 끝났다. 찜찜했지만 다들 그런 방식으로 잘 살고 있기에 왜 나만 찜찜한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 괴로웠다. (실제로 '그 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어보였다.) 결국 그렇게 대충 합리화하고 일하는 과정이 날 계속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내가 적지 않은 시간동안 인정받기 위한 일을 함으로써 주변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그냥 똑같은 일을 재미없게 한다인 것이 슬펐다. 연기와 가면쓰기에 영 소질이 없는 나는 그 메시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정확하게 전달 되었을 것이다. 나는 재밌고 멋있게 일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자꾸만 찌질해져야 했다.



내가 진짜로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떻게 일을 하고 싶은지 아직도 완벽하게 알진 못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최소한 나는 1) 나와 내가 있는 사회에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싶고, 2) 일의 결과만큼이나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개인이 개인 그 자체로써 존중받으며, 3) 나의 가치관에 따라 목소리를 낼 수 있고 4) 그 것이 헛되지 않게 내 일에 직접 반영되는 것을 느끼며 5) 마음이 동하여 즐겁고 재밌게 일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보상이나 연봉, 직책과 같은 나만 비대해지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 것을 스스로 알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회사에서 인정으로 받은 승진이나 연봉, 업무 숙련도와 같은 것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었다. 조직 내의 문법과 구조를 벗어나게 되면 사실 나는 더 자유롭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다양성을 존중받는 곳에서 나의 가치관을 지키며 자유롭지만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다. 아직도 그렇게 일하는 곳과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없을까를 찾고있으며 그런 조직에 대해 늘 갈증이 있다.

도쿄R부동산의 일하는 방식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고 잘 일할 수 있는 조직의 모습과 비슷해서 반가웠다. 일단 이 조직에 인정이라는 개념이 없다. 누구나 평등하고 동등하게 일한다. '거리와 공간을 더 재미있고 생기있는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같은 목적의식 아래 조직에서 다 같이 일하지만, 일을 만들고 진행하는 방식과 시/공간, 인간관계, 업무내용에서 자유롭다. 자신이 진행하는 일과 방식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공유한다. 감각적인 사람들이 모여 개인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부동산을 소개하고 콘텐츠를 만든다. 개인전으로 일하고 보수도 일을 따낸 만큼 가져가는 구조이지만 조직의 브랜드와 팀의 사이트가 잘 운영되어야 개인도 잘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누구나 팀에 대해 적극적으로 열성적으로 일한다. 겸업을 하더라도 더 일을 잘하기 위한 일 들을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회사는 이를 장려한다. 책에서는 <프리 에이전트 스타일> 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개인으로서 일하는 것과 팀으로서의 일하는 것의 장점만 가져온 업무 방식이라고 한다. 마치 야구선수와 같다.



도쿄R부동산이라는 조직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사실은 창업자나 대주주의 욕심을 핑계로 한 회사의 성장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대우하지 않으며, 정말로 같은 목표를 즐겁게 이루어가기 위한 동료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흥미롭고 부러운 지점이었다. 실제로는 이렇게 느슨한 구조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익을 내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어떤 목표 달성을 위해 경영진이 지시하거나 미션 전달을 위한 회의 등을 전혀 진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다. 성과에 관계없이 월급을 주고 직원을 가둬둠(?)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이 드는 일반적인 회사와는 다른 경영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 보인다. 가치관은 서로 다르지만 행복하게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은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일을 떠나 삶의 여정을 함께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나는 한 때 조직 안에서의 괴로움이 커서 자주 혼자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현재 내가 하는 일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혼자보다 함께할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고 더 풍성해진다는 것을 안다. 내가 믿는 이러한 가치들에 공감하고 함께 믿으며 존중받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조직아래서라도 얼마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다니엘 핑크의 <드라이브>에서는 일하는 동기에 대해 1.0 세대는 생계와 생존를 중심으로, 2.0세대는 당근과 채찍을 중심으로, 다가오는 3.0세대에서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의욕과 자발적인 동기부여로 진화되고 있다고 하는데, 내 주변의 대부분의 기업 문화와 개인의 가치관들도 아직 2.0 세대에 머물러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그래도 점점 다른 형태의 회사와 조직을 만드는데 도전하는 멋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아지고 있고, (모베러웍스가 쓴 프리워커스라는 책도 꼭 리뷰할 것이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다 보니 개인의 개성을 마음껏 알리고 드러내는 것을 업으로 일을 하는 크리에이터들도 많아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직과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이 생각해 보아야하고 답이 없는 어려운 분야이지만 일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확실함으로 나도 꼭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고민해보고 도전해보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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