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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Oct 11. 2024

당근마켓에서 거래 대신 정을 주고받은 이야기

나는 당근 매너 온도 43.3도로 한 번도 구매해 본 적은 없고, 가끔 판매만 하는 이용자이다.

가입 초반에는 주로 사용하지 않는 화장품, 생필품 등을 구매자와 만나서 거래하는 직거래를 했다. 그런데 거래가 쌓이다 보니 소득에 비해 만나는 날짜부터 시간, 장소를 정하고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번거로웠다. 그리고 당근마켓에 팔만한 물건들은 거의 다 팔아서 자연스럽게 직거래는 하지 않게 됐다.


그러면서 어플 내에서 거래 가능한 물품들만 거래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로 거래하는 물품들은 기프티콘이나 모바일 상품권, 쿠폰 등이었다. 그다지 필요하지 않거나 사용할 시간이 없는 기프티콘이나 모바일 상품권 등을 처리하기 너무 좋았다.


얼마 전, 이디야 아메리카노 쿠폰이 생겨서 팔기로 했다. 기프티콘이나 상품권을 팔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판매 이미지를 올릴 때 바코드를 꼭 지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두 번 판매해 본 것이 아니라 여느 때처럼 바코드만 잘라서 아래와 같이 이미지를 올렸다.

잠깐 다른 일을 하고, 당근마켓을 확인해 보니 2개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당근마켓에도 상도덕은 있다. 처음 연락한 사람에게 팔아야 하며 다음으로 연락한 사람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첫 번째로 온 메시지는 구매 의사를 밝힌 메시지가 아니었다.

어머나... 

기프티콘이나 교환권을 한 두 번 거래한 것도 아닌데 어이없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바코드 노출만 신경 쓰다 쿠폰 번호를 노출한 것이다. 

쿠폰 번호와 바코드는 동일한 역할을 한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사실에 당황스러워하며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구매 의사를 보내온 다음 분께는 쿠폰 번호가 노출되어서 판매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누군가 쿠폰 번호를 보고 사용했을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서이다. 이런 실수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였다.


교환권을 판매하지 못하게 돼서 약간의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실수를 알려주신 분에게 받은 감동이 훨씬 컸다. 서로의 얼굴도 모르고 거래하는 차가운 디지털 마켓에서 따뜻한 정도 느꼈다. 동시에 나도 기회가 생기면 정을 베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그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사용하지 않는 기프티콘을 판매하려고 당근마켓에 들어갔는데 올리기 전 시세 확인은 필수이다. 시세를 살펴보는 중 나처럼 바코드 번호가 노출된 발견하였다. 마침, 올린 지 얼마 안 된 같아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확인한 분은 이전의 나의 반응과 같이 매우 당황 + 감사해하며 복 받을 거라는 덕담도 전했다.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해 보면 일상 속에서 웃는 일은 꽤 있지만 미소 짓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한 번이라도 미소를 지은 날은 좋은 하루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날이 두 번이나 있었다. 별거 아닐 수 있는 일들이었지만 이런 게 작은 선순환이 아닐까? 다음에는 내가 먼저 정을 나누고 싶어졌다.

서로 미소 지으며 좋은 하루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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